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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영어숭배 정책" vs "방향은 긍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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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영어숭배 정책" vs "방향은 긍정적"
  • 박정아 자유기고가
  • 승인 2008.02.14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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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교육 프로젝트’ 들여다보니

교육계 찬반 논란 가열… “갈라지는 대한민국”

 인수위 “5년내 영어 공교육 기초 다지겠다”
“영어 이렇게까지 강화해야 하나” 반발많아
 기존 교사 활용 잘해야… 평가 방법도 중요
 현직교사 VS 영어전용교사 ‘지상 논쟁’까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난 30일 발표한 ‘영어 공교육 프로젝트’는 사교육 시장으로 쏠린 영어수요를 공교육으로 돌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육과정과 교육환경, 교원확충 등 공교육의 3대 축을 향후 5년간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는 대수술을 한다는 게 핵심이다.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영어 격차’가 벌어져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겠다는 것. 영어 공교육 강화를 제2의 청계천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반드시 실현시켜 사교육비를 경감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인수위의 각오다.

이번 프로젝트는 영어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전용교사’를 2010년부터 초·중·고교 현장에 투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인수위가 개최한 공청회에서 일부 교사들이 현실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교육계 내부에서도 찬반이 대립되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영어 공교육 프로젝트 어떤 내용 담았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영어 공교육 프로젝트는 일단 2012년까지 중, 고등학교에서 영어전용수업을 하는 내용이다. 현재 초등학교 3·4학년은 주당 1시간,5·6학년은 2시간씩 영어수업을 받고 있다.

하지만 3·4학년은 2010년, 5·6학년은 2011년부터 주당 3시간으로 늘어난다. 방과 후 학교 등을 활용하면 매일 영어수업도 가능하다는 게 인수위의 판단이다.

인수위는 초등 3학년 이상 전체 8만개 학급 중 영어로 영어수업이 가능한 학급 비율을 2009년 72%로 끌어올린 뒤 2011년에는 100%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이는 2011년부터 모든 초교의 영어수업이 영어로만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고교의 경우 2010년 중3, 고1 학생을 대상으로 영어만 사용하는 영어수업이 이뤄진다. 이어 2012년에는 전체 학년으로 확대된다.
 
또 실용영어 등 회화수업 비중을 중학교 50%, 고교 70%까지 각각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듣기·읽기 위주의 기존 영어수업에 말하기·쓰기를 보완하고, 영어수업에서 실용영어·회화·작문 영역의 비중을 늘리도록 할 계획이다.

회화 중심 수업이 정착되려면 중학교 1만 1500명, 고교 1만 1000명의 교사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풀이 위주의 수능 영어를 대체하기 위해 실용영어가 강화된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이 도입된다.

평가내용 중 기존 수능 영역인 읽기·듣기는 등급제로 평가하고, 새로 추가되는 말하기·쓰기는 학교 수업만으로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합격·불합격 여부만을 평가할 방침이다.
 
상시적으로 운영되는 평가시험은 올해 중2 학생들이 고3이 되는 2013년 듣기·읽기 영역에 한해 첫 실시되고,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고3이 되는 2015년부터는 말하기·쓰기 시험도 추가된다.

또 하나는 영어도서관, 전용교실을 확충한다는 내용이다. 인수위는 영어친화형 교육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각 시·군·구에 어린이 영어도서관을 운영해 영어 사교육 부담을 흡수하고, 도서관 영어학습시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영어도서관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또 각급 학교의 유휴교실은 영어전용교실로 리모델링할 방침이다. 영어전용교실은 학기 중에는 재량활동시간·방과 후 학교를 위한 공간으로, 방학 기간에는 영어캠프 등 정규수업 외 영어프로그램을 위한 공간 등으로 각각 활용된다.

영어에 능통한 교원을 확충하기 위해 내년부터 ‘영어전용교사 자격제도’가 도입돼 2013년까지 5년간 2만 3000명이 신규 채용된다. 이 중 초등학교에 1만명, 중·고교에 1만 3000명이 각각 배치된다.

영어전용교사는 테솔(TESOL) 등 영어교육과정 이수자와 영어권 국가 석사학위 이상 취득자, 교사자격증 소지자, 전직 외교관, 상사 주재원 등을 대상으로 구술면접을 거쳐 선발한다. 선발자는 최대 6개월의 연수프로그램을 거쳐 계약직 교육공무원으로 채용된다.

또 현직 영어교사들을 위한 심화연수제도도 마련된다. 올해부터 해마다 3000명의 영어교사들이 6개월간 국내·외에서 집중적인 재교육을 받는다. 이와 함께 영어에 능통한 대학생·주부·해외교포 등을 ‘영어전용 보조교사’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지나친 영어숭배 정책” vs “방향은 긍정적”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영어 공교육 실행방안’에 대해 교원단체의 반응도 크게 엇갈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논평을 내고 “‘영어교사 심화연수 제공’,‘교원 양성기관 영어교육 과정 개편’,‘5조원 예산 확보’ 등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나온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교총은 “그러나 기존 영어교사와 구별되는 ‘영어전용교사제’는 영어교사 양성·자격·임용 체계에 혼란을 줄 것”이라면서 “학교 현장에 무리없이 적용되도록 ‘영어전용강사’,‘영어전용기간제교사’ 등으로 명칭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새 정부가 5년 내 모두 해결하겠다는 과욕보다 영어 공교육의 기초를 다진다는 자세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전교조는 이날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실행방안은 교육의 계층화를 심화시키고 학부모의 사교육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교조 현인철 대변인은 “인수위가 수요과 공급, 규제완화의 시장 논리만을 적용해 전국 3만여명의 영어 교사에게 불안감과 소외감을 유발하고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시장중심의 교육정책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에서 개최된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 실천방안 공청회’에 대해서도 일부 교육단체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이 단체들은 “이번 공청회가 인수위의 교육정책에 ‘쓴소리’를 냈던 단체들이 토론자로 선정되지 못한 ‘그들만의 공청회’가 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는 인수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인수위가 편파적인 밀실 공청회로 국민의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면서 “새 정책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나타낸 단체들의 발언권을 철저히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 윤숙자 회장은 “이번 공청회에서 인수위는 발제문도 공개하지 않고 공청회 하루 전인 29일 별도의 장소에 토론자들을 불러 의견을 조율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면서 “모든 단체들이 참석할 수 있는 ‘전국 순회 공청회’를 개최해 여론을 수렴하라.”고 주문했다.

◇영어공교육 성공하려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영어 몰입교육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려면 교사 충원 등 체계적인 준비를 거쳐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효율적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내실 있는 영어교육을 위해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교사 △말하기 듣기 중심의 교재 △학교 및 국가 수준에서 영어능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고교 영어교사 1만4701명 가운데 영어로 수업 진행이 가능하다고 응답한 교사는 60.3%, 실제로 영어로 수업을 하고 있는 교사는 28.4%뿐이다.
 
전국 2159개 고교에 배치된 원어민 교사도 652명에 불과해 이들만으로 영어수업을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교 학급당 평균 학생 수는 33.1명인데 교사 1명이 이 인원을 대상으로 말하기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내실 있는 영어강의를 위해서는 회화 능력을 갖춘 1만여 명의 교사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인수위는 테솔(TESOL) 같은 영어교육자격증 소지자나 해외교포 등 영어에 능통한 자원에게 교사 문호를 개방해 영어전용교사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연간 15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영어강의 능력이 없는 교사에게 문법, 어휘, 독해 강의를 맡기는 등 업무를 분담해 기존 교사를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서울대 권오량(영어교육) 교수는 “영어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의 실태부터 조사해야 한다”며 “교사의 정확한 발음과 문법을 강조하기보다 영어는 의사소통의 도구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영어교육을 개혁하려면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의 교육과정을 다시 설계하고 영어 교과서도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현재는 단원별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영역이 있지만 말하기 부분은 2쪽에 불과하고, 수업시간에도 영어 테이프를 듣거나 따라 읽는 것이 고작이다.

말하기와 듣기 교육을 강화하려면 말하기 중심의 교재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너무 높은 수준의 말하기 능력을 요구하면 영어유치원이나 조기유학 등 영어 사교육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많다.
 
따라서 국가 수준의 영어능력평가나 교내 영어 말하기 평가는 최소한의 의사소통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것. 현재 3학년부터 시작하는 초등 영어교육이 저학년으로 확대되는 만큼 초중고교의 학년별 말하기 듣기 능력 기준을 개발하고, 수준별 수업과 수준별 평가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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