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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뉴스] 소록도의 봄, '치유의 섬'으로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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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뉴스] 소록도의 봄, '치유의 섬'으로 탈바꿈
  • 권지나 기자
  • 승인 2016.04.01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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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100년 역사' 고스란히…"한센병은 낫는다"

(시사캐스트, SISACAST= 권지나 기자)고흥반도 남쪽 끝의 녹동으로부터 500여미터 거리에 있는 소록도에도 봄이 찾아왔다.

소록도의 유래를 살펴보면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전해진다.

소록도는 일제시대 1916년 일본이 한센인들을 강제 이주시켜 집단 수용하고 각종 악랄한 인권유린이 이뤄졌으며, 참담한 역사의 현장으로 회자되고 있다.

현재는 국립소록도 병원이 위치하고 있어 많은 수의 한센인이 기거하면서 치료와 정상인으로 돌아가는 사회 복귀의 길을 걷고 있다.

주차장에서 내리면 소록도 병원까지 나무 데크가 이어져 있으며 이 길은 병원과 공원으로 연결된다.

소록도의 구 소록도갱생원 검시실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정관 수술과 시체 해부를 했던 곳으로 소록도의 인권 유린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 곳에서 사망자는 가족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우선 검시 절차를 마친 뒤에야 장례식을 거행할 수 있었으며, 시신은 구북리 뒤편의 바닷가에 있는 화장터에서 화장됐다.

건물 내부에 수술대와 검시대, 세척 시설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감금실 곳곳에는 감금됐던 환자들이 쓴 시와 글 등이 전시돼 있다.

감금실은 1935년 제정된 조선나예방령 제6조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8조의 규정에 따라 설치된 일제강점기 인권탄압의 상징물로 붉은 벽돌과 육중한 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과 북 두 건물이 회랑(回廊)으로 연결된 H자 형태로 방은 철창이 설치돼 있고 각 실의 한쪽 마루바닥을 들어 올리면 변기가 나오는 형무소와 유사한 구조로 돼 있다.

한센환자들은 조선나예방령에 따라 직업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이동의 자유 등을 박탈당했으며, 소록도에 수용된 환자들은 원장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변론의 기회조차 없이 이곳에서 감금, 감식, 금식, 체벌 등의 징벌을 받아야했다.

또한 강제노역이나 온갖 가학에도 굴종케 하고, 부당한 요양소 운영에 대한 저항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장소로 활용됐다.

아울러 일제 말기에는 부당한 처우와 박해에 항거하던 환자들이 무수히 이곳에서 사망했거나 불구가 됐으며, 출감시에는 예외 없이 정관절제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해방 이후 이곳은 격리실 또는 보호실로 불렸으며, 1973년 이후 내부를 일부 개조해 신체부자유자의 가정사로 한동안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 2004년 2월6일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7호로 등록됐다.

또한 한센인들의 피땀으로 조성된 중앙 공원은 1936년 착공, 3년 4개월동안 조성해 1940년에 완공하고 당시 공원 이름을 '부드러운 동산'이라 했다

공원 조성에는 소록도에 수용되어 있던 한센인 환자 6만명이 강제 동원됐으며, 득량만과 완도 및 소록도 주변 섬에서 암석을 채석해 옮겨오고,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관상수를 반입해 조성했다.

중앙공원 중앙에는 미카엘 대천사가 한센균을 박멸하는 모습을 형상화 한 구라탑(求癩塔)이 서 있다.

현재는 소나무와 황금편백 그리고 향나무, 후박나무, 삼나무, 팽나무 등 장 손질 된 관상수가 소록도를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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