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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 용정을 닮은 '동주'의 촬영지, 고성 왕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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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 용정을 닮은 '동주'의 촬영지, 고성 왕곡마을
  • 권지나 기자
  • 승인 2016.06.01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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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권지나 기자) 영화 <동주>는 북간도의 용정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강원도 고성 왕곡마을에서 촬영한 장면이다. 왕곡마을은 북방식 한옥 문화재 마을이다. 바다와 가깝지만 산골 마을인 듯 고즈넉하다. 영화에 나오는 정미소, 우물 터, 그네 터 역시 그대로다. 하루 묵어가며 별을 헤아릴 만하다.

별 '헤는' 소년들의 동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 <서시>의 도입부다. 그의 시어는 한없이 영롱하다. 그래서 더욱 그가 살던 동네가 궁금하다. 윤동주는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기까지 용정에서 살았다. 영화 <동주>는 용정 시절 윤동주의 모습을 그리며 시작한다. 윤동주와 송몽규, 문익환 세 친구의 성장기다. 흑백 화면에 잡힌 마을은 북간도 용정인 양 자연스럽다. 실은 강원도 고성의 왕곡마을이다.

고성 왕곡마을(중요민속문화재 235호)은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한 함부열이 간성에 은거했고, 그의 손자 함영근이 왕곡마을에 뿌리내렸다. 현재의 집은 19세기를 전후해서 지었으며, 강원도 북방 가옥 형태인 양통집이다.

추위를 견디기 위한 구조로, 가장 큰 특징은 ㄱ 자형 집의 날개 쪽이다. 부엌과 붙은 외양간에 해당한다. 집안에서 대청마을과 이어져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여물을 주기에 편리하다. 기와지붕은 급격히 기울였는데, 눈이 자연스레 흘러내리게 하기 위함이다. 집의 기단을 높인 것도 눈이 쌓여 고립되는 걸 막으려는 의도다. 눈과 더불어 북서풍을 대비했다. 일조량을 높이려고 입구 쪽은 그늘이 지는 담장과 대문을 두지 않았다. 반면 뒤쪽은 북서풍을 막기 위해 삼면으로 담장을 길게 쌓았다. 이런 면면이 여느 중요민속문화재 마을과 다른 개성을 만든다. <동주>의 이준익 감독이 "북간도의 집성촌과 주거 형태를 갖춰 촬영 장소로 최적이었다"고 손꼽은 이유다.

입구의 대문과 담이 없는 마을

왕곡마을은 야트막한 봉우리 다섯 개가 둘러싼 길지다. 그래서 행정구역상 이름은 다섯 봉우리를 뜻하는 오봉리다. 마을은 북쪽 오음산에서 발원한 왕곡천 주변에 자리한다. 윗마을에는 양근 함씨가, 아랫마을에는 강릉 최씨가 집성촌을 이룬다.

7번 국도에서 왕곡마을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다. 예전에는 주로 죽왕면 죽왕교차로에서 송지호 서쪽을 따라 들어섰다. 먼발치에서 마을 전경을 조망할 수 있고, 지금도 사용한다. 7번 국도가 생긴 뒤에는 국도 변에서 송지호를 지나 진입한다. 이때는 저잣거리가 먼저 맞이한다. 점심나절 가벼운 식사를 하는 곳이다. 저잣거리의 초가를 지나면 비로소 왕곡마을이다. 첫인상은 시간이 정지한 마을이고, 두 번째는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다. 실상은 동해에서 1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마을 탐방은 왕곡천 좌우의 샛길로 방향을 잡는다. 차량은 마을회관 앞에 주차장에 둔다. 마을회관 건너편에는 왕곡마을보존회가 있다. 마을 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돌아보거나 정보를 얻은 뒤 출발한다. 대부분 제일 먼저 찾는 장소는 큰상나말집이다. ㄱ 자형 안채와 행랑채로 구성된 집이다. 외양간으로 뻗은 기와가 북방식 집의 특징을 드러낸다.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의 집으로 나왔다. 동주와 몽규가 용정을 떠나기 전, 가족과 기념 촬영하던 장면이 어린다. 큰상나말집은 왕곡마을의 다른 집처럼 앞에 담장이나 대문이 따로 없어 마당이 훨씬 넓어 보인다.

큰상나말집 행랑채 앞쪽 길가에는 옛날식 펌프가 있는 우물 터가 있다. 동주와 몽규, 익환 등이 목물하는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옛날 마을이 간직한 일상 풍경이다. 큰상나말집에서 좀더 올라가면 고성함정균가옥(강원도 문화재자료 78호)이 있다. 함부열의 21대손 함정균 씨가 사는 집이다. 골목을 걷다 보면 집집마다 항아리 굴뚝이 눈길을 끈다. 초가로 불이 옮겨 붙는 걸 방지하고, 열기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한다.

동주와 몽규의 아지트, 왕곡정미소

<동주>의 주요 촬영지인 왕곡정미소 역시 그대로다. 마을회관을 지나 남쪽 끝자락에 가깝다. 왕곡정미소는 영화에서 동주와 몽규의 아지트였다. 동주가 홀로 앉아 시집을 읽기도 하고, 그들의 잡지를 만들기도 했다.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할 거면 문학이 무슨 소용이 있니?"라는 몽규의 말이 동주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던가. 열린 문틈으로 햇살이 스밀 때는, 마치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정미소는 광복 뒤 현재 마을회관 자리에 지었다가, 1953년경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외관은 예스럽지만 반듯하다. 안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다. 먼지 쌓인 쿰쿰한 공간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동주> 촬영 전후로 옛날식 방앗간 기계를 재현했다. 기둥에는 <동주>의 사진을 걸어 영화와 비교하며 돌아볼 수 있다. 금세 소리를 내며 돌아갈 것 같은 정미기는 실제로 도정이 가능하다. 영화를 촬영하며 한 차례 가동했고, 이번 어린이날에 시범 가동할 예정이다. 왕곡마을보존회는 마을 논에서 난 벼로 주말마다 정미소를 열 계획이다. 정미소 맞은편은 그네 터다. 동주와 몽규가 그네 타던 장면이 떠오른다.

왕곡마을은 현재 37가구가 산다. 빈집은 숙박 시설로 활용한다. 비수기에는 집 한 채가 2만 5000~5만 원 선으로 저렴하다. 토요일마다 월별 절기 체험이나 짚공예 체험 등도 진행한다. 큰상나말집 마당에서는 5~10월 매주 토요일 오후 6시에 <왕곡풍류음악회>가 열린다. 한옥에서 음악회의 풍류를 즐길 수 있다.

왕곡마을에서 하루 묵어갈 때는 송지호를 연계한다. 송지호둘레길은 송지호철새관망타워를 출발해 왕곡마을과 송호정을 잇는다. 왕곡마을에서 송호정 쪽으로 송지호를 끼고 걸어볼 만하다. 철새관망타워에는 자전거 무료 대여소가 있다. 국토종주자전거길을 가볍게 달려도 좋다.

왕곡마을과 송지호를 돌아보고 내려오는 길에는 고성8경의 2경 천학정에 멈춘다. 송림이 우거진 기암절벽에 바다를 보며 자리한 정자다. 망망한 푸른 바다, 바위에 부딪쳐 울리는 파도 소리, 가지를 드리운 100년 노송이 고성 여행의 마지막 쉼터로 알맞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고자 한 시인의 삶 또한 반추해봄 직하다.

글, 사진 : 박상준(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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