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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로 새로 지정되는 문화재 9건,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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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로 새로 지정되는 문화재 9건, 무엇이 있을까?
  • 이선진 기자
  • 승인 2016.08.30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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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이선진 기자)

문화재 9건이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고창 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인간 세계를 교화하는 석가여래를 중앙에 두고 좌우에 동·서방의 정토를 다스리는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를 배치한 3불 형식이다. 임진왜란·정유재란 이후 황폐해진 불교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신앙적으로 크게 유행한 형태다. 1654년 벽암각성(1575~1660)의 문도가 주축이 돼 수조각승 해심을 비롯한 조각승 15인이 만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3불상이다. 이 시기 불교조각의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통통한 양감이 강조된 인간적인 얼굴이다. 단순하고 기백 넘치는 주름 표현을 통해 조선 후기 불교조각이 추구한 평담(平淡)하고 대중적인 미의식을 잘 담아내고 있다.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은 흙으로 형태를 만든 뒤 그 위에 삼베를 입히고 칠을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 일정한 두께를 얻은 후 조각해 만든 건칠불상이다. 엄숙한 상호(相好), 당당하고 균형 잡힌 형태, 탄력과 절제된 선은 석굴암 본존불 등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의 양식 계통을 따르고 있다. 불상의 바탕층을 방사선탄소연대 측정한 결과도 이와 유사한 기원후 770~945년께다. 이르면 8세기 후반, 늦어도 10세기 전반에는 제작됐으리라는 추정이다. 보물 제999호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930년께)과 함께 우리나라 건칠불상의 시원적 작품이다. 중요한 조각사적 의의를 지닌다.

‘고창 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일괄’은 삭발한 승형의 지장보살상과 제왕형의 시왕(十大王)으로 구성돼 있다. 제8 평등대왕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해 1654년 3월 당시 불교계를 대표한 벽암각성의 문도가 주도한 불사임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석가여래삼불좌상을 만든 해심 등 15인의 조각승이 모두 참여했다. 본존인 지장보살상은 통통한 얼굴과 아담한 형태미가 두드러진다. 시왕상은 지옥중생을 심판하는 사실적인 연출과 함께 고색 찬연한 채색이 돋보이는 17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명부조각이다.

‘양산 금조총 출토 유물 일괄’은 경주가 아닌 양산 북정리에서 발견된 신라 고분군이다. 신라 고분 문화의 전파와 계보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경주에서 발견된 귀걸이와 금제 팔찌 등과 양식을 비교하면 삼국시대 6세기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누금세공으로 귀갑문을 아로새긴 금제태환이식(金製太環耳飾) 귀걸이는 신라 최고의 금속공예품으로 평가되고, 금제조족(金製鳥足)은 국내에서는 유일한 것이어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톱니모양의 금제팔찌, 은제 허리띠, 청동제 초두(鐎斗) 등도 경주 이외의 지역에서 발견된 사례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 유물이다. 초두는 술·음식·약 등을 끓이거나 데우는 데 사용한 그릇이다.

‘부산 복천동 출토 금동관’은 신라권에서 출토된 관 가운데 매우 이례적인 형태다. 주실인 11호분의 피장자 우측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5~6세기 신라 경주를 중심으로 한 출자형(出字形) 금관과 달리 대륜(臺輪)에 나뭇가지 모양의 입식(立飾), 즉 머리에 얹는 관의 둥근 밑동 부분 위에 세운 장식이 연결돼 있다. 부산 동래 지역의 고유한 형태를 반영한 것으로 특히 입식이 모여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점은 경주 교동 출토 금관과 유사하다. 입식 끝이 하향하고 있는 점, 구슬 장신구인 영락(瓔珞)이 없는 대륜에 물결무늬를 그려 넣은 부분, 혁대를 조여 관을 쓰는 장치가 있는 점 등은 5~6세기 신라관의 계보와 가야의 관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로 가치가 크다.

‘정조 어찰첩’은 정조가 1796~1800년 좌의정 등 고위직을 역임한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이다. 300통에 달하는 다양한 내용의 어찰이 날짜순으로 6첩 장첩돼 있다. 내용은 대부분 정사(政事)와 관련된 것들이어서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사료다. 일반적인 서간문의 격식과는 다른 부분들이 있다. 발신자인 정조의 편지에는 발인일자가 없으나 수신자인 심환지는 수신한 일자와 시간을 기록해 후대에 남길 목적임을 알 수 있다. 어찰에 사용한 지질이 다양해 긴급한 사안에는 지질이나 격식을 따지지 않았음도 알 수 있다. 한글과 이두식 표현, 속담과 구어 등 실용적 문체를 구사한 점도 주목할 부분으로 조선 시대 서간문의 형식을 연구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자료다.

‘조선경국전’은 정도전(1342~1398)이 조선 초기인 1394년 국가경영 통치전범을 마련하기 위해 조선의 건국이념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에 대한 기본방향을 제시한 서적이다. 개인적인 편찬물이기는 하지만, 조선건국의 중심에 있었고 실질적으로 조선건국의 이념을 창안한 책임자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후 ‘경제육전’, ‘육전등록’ 등 법전의 편찬단계를 거쳐 조선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의 편찬에 모체가 됐다. 조선전기의 간본으로는 이 책이 유일하다는 점에서도 조선의 출판과 법전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묘법연화경 권5~7’은 1470년(성종 1) 세조비 정희왕후가 차남인 예종이 죽자 이미 고인이 된 세조와 장자인 의경왕(덕종) 그리고 예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왕실판본이다. 조선전기 왕실판본의 사례로서 간행시기와 동기가 분명하며 보존상태 또한 양호하다. 전래되는 같은 초기 인본이 극히 희소하기에 귀중하다.

‘묘법연화경 권4~7’은 태종의 넷째 아들인 성녕대군이 14세에 요절하자 그의 장인으로 인순부윤 직에 있던 성억이 성녕대군과 대군의 모친인 원경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경전이다. 당대의 명필로 불린 성달생과 성개 형제가 서사한 법화경을 저본으로 해 판각한 책판에서 인출한 것으로 전 7권 가운데 권4~7이다. 이 책은 보물 제1196호 묘법연화경(통도사 소장)과 동일한 간행본으로 같은 판본에서 찍어낸 것이다. 이번에 지정 예고되는 대상은 판면의 상태가 선명하고 다른 발문이 없다는 점에서 1422년 판각 즉시 인출한 초인본으로 추정된다. 조선 초기의 불교사 연구와 인쇄술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문화재청은 이들 9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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