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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정신 고스란히 녹아있는 한국선승의 대표 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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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정신 고스란히 녹아있는 한국선승의 대표 도량
  • 박지순 기자
  • 승인 2008.03.04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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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보종찰 조계총립 ‘송광사’

16국사, 효봉·구산등 고승대덕 가장많이 배출한 사찰
불교 가르치는 강원·수도 선원, 규율 율원등 모두갖춰

대웅전·범종각·승보전·자장전 둘러싸고 빈공간 눈길
경내로 들어가면 정갈하고 기품있어 ‘감흥 절로’
스님들 참선 시간 잘지켜 ‘스님 사관학교’로 유명

“송광사에는 불교 정신이 아직 살아 있다.” 기자가 지난 9월 28일 전남 순천의 송광사를 찾았을 때, 한 스님이 한 말이다.
 
그 스님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기자의 요구에 “한국 선승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 바로 송광사이고 한국 불교계에서 세속에 물들지 않은 유일한 곳”이라고 힘주어 설명했다. 송광사는 ‘명문가’를 자부한다.

송광사는 승보종찰(僧寶宗刹)이다. 불(佛), 법(法), 승(僧)을 불교의 세 가지 보배라 한다. 이중 ‘승보’는 부처의 가르침을 받들어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배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송광사는 승보 사찰 중에서도 으뜸인 종찰로 불린다. 고려시대 타락한 불교를 정화시키고자 ‘정혜결사’운동을 펼친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한 16국사와 효봉, 구산 큰스님을 배출한 것은 승보종찰로서의 송광사의 위상을 그대로 말해 준다.

또한 송광사는 총림(叢林)이다. 총림은 본래 우거진 숲을 뜻하는데 불교에서는 가르치는 강원(講院)과 수도하는 선원(禪院), 교리를 규율하는 율원(律院)이 모두 설치된 사찰을 이른다.

송광사를 겉으로만 보면 엄격한 불교정신을 찾기가 쉽지 않다. 송광사를 둘러싼 조계산의 풍경은 아름답고 송광사 경내를 거닐며 보게 되는 광경들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늑하고 우아하며 고풍스러울 뿐만 아니라 운치 있고 낭만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광사는 절 입구에서부터 여느 절과는 ‘다르구나’하는 인상을 받기 시작한다. 순천역에서 내리면 송광사 입구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1시간 20분 정도 버스를 달리면 절 입구에 내린다. 송광사 정도의 규모를 가진 절들은 거의 예외 없이 본사(本寺)까지 이르는 길이 깔끔하게 포장이 돼 있다.

한국에서의 불교는 종교이기 전에 전통과 문화로 자리 잡아 유명한 절들이 자연스럽게 관광지로 인식된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신자와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차가 드나들기 편하도록 흙길이 아스팔트길로 바뀌게 된 것이다.
 
기자가 10여 년 전 해인사와 화엄사, 통도사, 관촉사 등을 찾아 갔을 때는 절에 이르는 길이 모두 흙길이었지만 최근에 다시 가보니 모두 포장이 된 채였다. 먼지가 날리고 신발에 진흙이 묻던 자연의 흙길을 걷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송광사는 버스가 멈추어 서는 곳까지만 도로 포장이 돼 있고 바로 흙길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조금 걷다보면 말끔한 포장도로가 나오겠지 했지만 흙길이 이어졌다.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다.

단순히 흙길이어서가 아니다. 산사로 통하는 길을 걸으며 어디에서도 인공이 가해진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길가에 돌 하나, 나무 가지 하나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다. 길옆에 계곡도 흐르는 물이 만들어 놓은 모양 그대로다.

자연의 길을 15분 정도 걷노라면 매화와 산수유 향기가 은은하게 풍기는 우화각(羽化閣)에 이른다. 우화각은 연못 위에 지어진 누각으로 세상과 송광사를 연결하고 있다.

우화각 왼편으로는 연못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가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다 발을 잘못 디뎌 연못에 빠져도 나쁠 건 없다. 연못에는 ‘선(禪)’을 향한 엄격한 전통이 면면히 흐르고 있어 한 번쯤 빠져 보고 싶은 곳이기 때문이다.

물 위에 맑게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물 안에 나와 물 밖의 나를 함께 느낀다. 진정한 자아는 누구인지, 무엇이 나의 허상이며 무엇이 나의 실상인지 나도 선승이 되는 듯하다.

우화각을 건너고 천왕문을 지나 송광사 경내로 들어가면 한 눈에 정갈하고 기품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50여동의 많은 건물은 여러 차례 화마(火魔)를 입어 지어진 연대가 다양하고  배치가 자유로운 편이지만  모두 전통 가람의 건축양식을 존중하고 있다. 자유로움 속에 통일과 질서의 이미지가 공존한다.

넓은 송광사 경내에서 기자의 시선을 집중시킨 곳은 대웅전과 범종각, 승보전과 자장전이 둘러싸고 있는 빈 공간이다.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절에서는 빠지지 않는 탑도 없고 부도나 석등도 없다.

이에 대해 법명을 밝히기를 사양한 한 스님은 기자에게 “송광사의 지형이 무거운 석물(石物)을 세우면 잘 가라앉는 성격이어서 전통적으로 석탑을 세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송광사의 많은 건물들이 석재가 포함돼 지어진 점을 생각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웅전 앞의 넓은 공간은 불교의 공(空) 사상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유형의 건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다름 아닌 빈 공간이다. 공간을 함부로 채워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무(無)의 공간은 가시적 건조물과 대비를 이루며 인간의 집착을 경계한다. 법당에서보다 뜨락을 거닐며 자신을 돌아보기가 쉽다.

송광사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직선과 곡선의 조화다. 엄격함 속의 온화함이라 표현하면 될 것이다. 건물의 모든 기둥은 위아래로는 직선이되 몸통은 원형이다. 처마는 언뜻 직선으로 곧게 보이지만 양끝이 얌전하고 유려하게 휘어져 올라간다. 이것은 송광사만의 특징이랄 수 없고 한국 전통 건축의 공통점이다.

송광사 대웅전 앞 공간은 전체적으로 반듯한 직사각형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그 주위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은 솜사탕처럼 둥글다. 둥근 나무들이 있어 각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건물 지붕의 뾰족한 모서리에서 풍겨지는 따가운 인상이 완화되는 것 같다. 

송광사는 대웅전을 기준으로 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 대웅전 뒤편으로는 높은 계단이 나오며 직각으로 한 층 높은 곳에 수선사, 설법전, 국사전, 하사당 등의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돌담을 깎아지른 듯이 쌓았는데 솟구쳐 올라가는 돌담과 달리 하나하나의 돌들은 참 둥글다. 마음이 편안해 짐을 느끼게 된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직선과 곡선, 엄격함과 온화함의 대비는 송광사 특유의 ‘정신’으로 반영된다. 국사전은 송광사의 건물로는 유일한 국보(제56호)다. 국사전 왼편에 있는 하사당은 보물 제263호로 지정돼 있다. 기자는 송광사의 양해를 얻어 국사전과 하사당을 볼 수 있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승려들이 참선, 수행하는 곳이라는 이유다. 

전통사찰에서 국보 유물은 가장 확실한 ‘수입원’임에도 송광사는 오직 수행처로만 삼아 세속인의 발길을 끊어 놓은 것이다. 수입원이 아니더라도 ‘배려’의 차원에서 공개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참 융통성이 없어 보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선검일여(禪劍一如)’을 좇아 ‘스님 사관학교’로 통하는 송광사이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송광사의 스님들은 참선 시간을 칼 같이 지키기로 유명하다. 기자의 인터뷰 요청도 참선 시간에는 가차 없이 잘라 버린다. “5분이라도 늦으면 선방의 기강이 안 선다”고 말한다.

수행정진에서는 추상같지만 생활에서는 큰스님과 행자가 구분이 없다. 큰스님이 절 마당을 쓸고 밭에서 돌을 캐고 김을 매고 배추를 뽑고 거름을 나른다. 겸손한 솔선수범이 엄격함에 권위를 높여 주면서도 부드러움도 심어주는 듯하다.

석가모니 시대의 공동체 정신을 고스란히 되살리고 있는 송광사, 꼭 한 번 찾아 볼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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