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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20초짜리 ‘킬리만자로 표범’ 조용필이 없었다면 햇빛 못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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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20초짜리 ‘킬리만자로 표범’ 조용필이 없었다면 햇빛 못봤다
  • 박지순 기자
  • 승인 2008.03.11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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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백구’. 어느 음악인 동호회 사이트에 올라온 신청곡 제목이다. 조용필의 골수팬이나 열혈 매니아가 들었다면 ‘분개’할 수도 있는 개그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킬리만자로의 백구’라는 개그를 보며 한국사람 대부분이 조용필이라는 이름을 떠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은 조용필의 위대성을 대변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조용필의 8집 음반(1985.11.) 수록곡이다. 이 곡이 음반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사연을 들으면 조용필 음악의 위대성을 다시금 알 수 있게 된다. ‘김희갑과 콤비를 이룬 양인자가 작사했다.

양인자는 10대 때부터 등단 작가가 되기 위해 신춘문예에 숱하게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 순수문학 작가는 되지 못했지만 대중음악 작사가로 대성한 인물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로 시작해 장시를 읊조리듯 긴 독백이 반복된다. 연주 시간이 5분 20초에 이른다. 85년 무렵의 가요 시장을 생각할 때 너무나 긴 곡이었다.

조용필의 팬들 중에는 ‘80년대가 좋았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이 말은 진실이지만 모든 진실을 말 하는 것은 아니다. 80년대 이후에는 80년대의 조용필과는 ‘또 다른 조용필’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용필의 진실은 80년대 이후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용필의 진실은 현재 진행형으로 매순간 진화하고 있다.

어쨌거나 80년대의 조용필은 좋았다. 내 놓는 음반마다 가요차트를 휩쓰는 히트곡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고 음반은 불티나게 팔렸다. 그러나 가요사에 있어 조용필이 이룩한 미증유의 대중적 성공은 한편으로 그의 예술성을 상당 부분 질식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용필은 지구레코드라는 자본의 힘에 철저히 종속당하고 있었고 거기에 예술인의 법적 권리에 대한 무지가 보태졌다. 자본의 논리는 5분 20초짜리 노래를 원치 않았다. 5분 20초면 짧게 두 곡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85년에는 조용필이 불러 히트 안 하는 노래가 드물 때였으니 지구레코드가 긴 노래 한 곡보다 짧은 노래 두 곡에 승부를 거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조용필이 들고 온 ‘킬리만자로의 표범’ 마스터 테잎을 듣는 순간 지구 사장은 ‘이 노래 틀림없구나’ 싶었다고 전한다. 불후의 명곡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조용필이 아니었다면 이 노래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아찔한 생각이 든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훌쩍 흘러버린 22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되레 젊게 변모했고 조용필은 지금도 이 노래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지난 9일 춘천 고슴도치섬에서 있은 콘서트에서도 조용필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불렀다. 스튜디오 녹음과 달리 건반만의 연주로 위대한 탄생 멤버들이 조용필에게 경의를 표하듯  물러나 있었고 마지막 허밍 부분에서, 시야를 가리는 울창한 숲 사이로 햇빛이 강하게 내리 비치듯 모든 멤버가 연주에 참여하는 극적인 장면은 조용필이 위탄 멤버에게 경의를 돌려주려는 것으로 보였다.

위탄의 연주 역량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우선 조용필 뒤 양쪽에 카메라 삼각대 모양으로 두 건반을 배치해 무대가 안정되고 품위 있어 보였다. 베이스와 기타의 동적인 연주로 산만해 보일 수 있는 무대 분위기를 잡아 주는 천칭 같다고 할까.

최희선의 기타와 이태윤의 베이스는 ‘모나리자’에서 극한에 이른다는 인상이다. 특히 ‘...추억만을 간직한 채... 이토록 아쉬워...’에서의 베이스와 기타의 상호 상승작용은 부산 앞바다를 유유히 나는 갈매기와 바닷바람의 조화를 보는 듯하다.

갈매기는 날개를 고정시키고 있으면서도 기류를 타고 고도를 떨어뜨리지 않는데 기타는 베이스를, 베이스는 기타를 완만하게 붕붕 띄워준다. 드러머가 심벌을 ‘탁, 탁, 탁, (강하게) 탁!’ 치는 순간은 갈매기가 갑작스레 솟구쳐 올라가는 장면이 연상되면서 환상적인 느낌이 든다.

‘모나리자’를 들을 때마다 그렇지만 춘천에서도 ‘음악을 창조하는 일은 천지조화에 참여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진지하게 음미할 수 있었다.

최희선의 기타는 속도감이나 연주음의 날카로움이 외국의 유명 기타리스트와 닮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집에 돌아와서 음반꽂이를 유심히 보니 ‘크리스 임펠리테리’였다.

임펠리테리 음반을 오랜만에 들어 보게 됐고 연주의 정교함면에서는 최희선에 비하면 임펠리테리는 ‘어려’보였다. 최희선은 틀림없이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태윤. 과연 그가 제정신인가, 이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신내림 받은 무당이 굿을 하듯 이태윤은 신들린 베이스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베이스 줄 위에서 무당춤을 추고 스피커를 통해 관객의 가슴에 진동을 쾅쾅 울리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기자가 가장 경탄해 마지않는 곡은 ‘어제 오늘 그리고’다. 정규 7집 음반에 들어 있는 곡도 수작이지만 ‘어제 오늘 그리고’의 라이브 맛을 알면 귀에 잘 들어오지 않게 된다. 말을 지어내고 근사하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라이브 3대 명반, 5대 명반’이라며 목록을 외우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기자는 목록을 외우지 못해도 한 번씩은 전부 들어본 음반들이다. 그러나 이글스의 ‘Hell freezes over’가 라이브 최고 명반이 아닌가 싶은데 특히 ‘the last resort’의 정규음반 수록곡이 건조한 느낌이라면, 동 음반 라이브 곡은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개울물이 얼굴에 와 닿는 신선하고 감각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어제 오늘 그리고‘의 라이브 곡은 찌릿 찌릿 전기에 감전되는 듯 듣는 이를 흡입하는 그 이상의 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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