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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탄생 100주년 특집]주말에 가볼만한 곳... 시인의 언덕 & 윤동주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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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탄생 100주년 특집]주말에 가볼만한 곳... 시인의 언덕 & 윤동주 문학관
  • 최민정 기자
  • 승인 2017.12.15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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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최민정 기자) 여기 한 남자의 탄생이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운 섬세한 감성을 가진 소년으로 성장해 저항 속에서 소멸되어간 이름.

우리는 이 이름을 애국지사, 저항시인 등의 수식어로 기억한다. 하지만 거시적인 수식어 보다 조금은 더 행복한 삶을 아니 조금은 덜 불행한 삶을 살다 소멸되었어도 좋았을 그 이름. 바로 윤동주 시인이다.

오는 30일은 시인 윤동주가 탄생한 날로부터 꼬박 100년이 되는 날이다. 서울권에 위치한 윤동주를  만날 수 있는 곳을 주말에 가볼 만한 곳으로 선정해보았다.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시인의 언덕은 고즉넉한 분위기와 어울려 윤동주 시인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 입학 2년 만에 기숙사를 나와 종로구 누상동에서 후배 정병욱과 함께 하숙을 시작했다. 경복궁 서쪽 누상동은 지금 서촌이라 불리는 지역에 있다. 서촌에는 윤동주뿐 아니라 시인 이상과 화가 이중섭의 집도 있었다. 윤동주가 하숙을 했던 곳은 소설가 김송의 집이었다. 화가 박노수와 이상범의 집도 서촌이었다. 지금 서촌에 문화예술인들이 몰려들고 있는 게 어쩌면 이런 전통을 잇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머물던 시인은 종종 효자동길을 따라 인왕산에 올라 시상을 다듬곤 했다. 눈 아래 펼쳐지는 식민지 경성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와 민족의 앞날을 생각했을 것이다. 시인이 오르던 인왕산 자락에 '시인의 언덕'이 있다.

시인의 언덕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윤동주 문학관을 만날 수 있다.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서 만든 곳이다. 느린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도와주는 가압장처럼, 우리 영혼에 아름다운 자극을 주는 시인의 작품을 기념하는 공간을 만들었단다. 그의 시처럼 순백색 외관은 맑은 날이면 더욱 아름답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중앙의 낡은 우물이 눈에 들어온다. 시인의 생가에 있던 우물을 옮겨온 것이란다. 이 우물 옆에 서면 그가 다니던 학교와 교회 건물이 보였다고 한다. 아마도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이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눈물겨운 그의 탄생일이 있는 12월. 윤동주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시상에 젖어보는 것은 어떨까?

 

 

시인 윤동주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항일운동 혐의로 인한 투옥과 이른 죽음은 그를 영원한 저항시인, 청년시인으로 남게 했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4년간 다녔던 연희전문(지금의 연세대학교) 교정과 주변에서 지금도 시인이 남긴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1년 11월, 졸업을 앞두고 있던 윤동주 시인은 자신이 그때까지 써놓은 시 가운데 18편을 뽑고 거기에 '서시'를 붙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의 시집을 엮었다. 그리고 3부를 필사해서 1부는 자신이 갖고, 다른 1부는 같이 하숙하던 후배 정병욱에게 주고, 나머지 1부는 연희전문 은사인 이양하 교수에게 주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윤동주의 시가 일제의 검열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출판 보류를 권했다. 이듬해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오른 시인은 결국 자신의 시집이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옥사하고 만다. "조선인 유학생을 모아놓고 조선의 독립과 민족문화의 수호를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된 지 1년 반 만의 일이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유고시집이 되어 시인 정지용의 발문을 달고 1948년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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