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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과 이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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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과 이상득
  • 윤태현 기자
  • 승인 2018.01.28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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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멀리한 양녕대군과 정치에 올인한 현대판 ‘대군’의 노년은 천지차이”

(시사캐스트, SISACAST= 윤태현 기자)

역사는 조선시대 최고의 자유인으로 태종의 장남이자 세종의 맏형인 양녕대군을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양녕대군은 태종의 뒤를 이을 세자였지만 각종 악행과 방종으로 폐세자 신분으로 전락해 조선 팔도를 유랑하며 평생을 한량으로 보냈다.

태종은 양녕 대신 세종을 선택했고, 세종의 왕권 강화를 위해 생전에 양위하며 정사에 관여했다. 태종은 쫓겨난 비운의 세자 양녕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6권, 세종 1년 12월 28일 무술 4번째기사에 보면 태종의 염려가 그대로 드러난다.

태종은 “‘양녕이 광주(廣州)에 있으면서 조금도 뉘우치는 마음이 없고, 이제 또 밤을 이용해 두 사환을 거느리고 담을 넘어 어느 사람의 집에 들어가, 그 사람의 첩(妾)을 빼앗으려다가 그 집에서 굳게 거절하였다 하니, 어찌하였으면 좋겠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허조가 아뢰기를 “순(舜)이 상(象)을 봉했었는데, 혹 말하기를 내쳤다 했나이다. 양녕이 광주에 있으면서 매사냥을 좋아해 자주 원야(原野)에 나가는 것이 심히 옳지 못한 일입니다. 신은 그의 출입을 금지시켜 자신이 깨닫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압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그대로 두다가 죄에 빠지면 비록 보전하려 한들 될 수 없을까 염려됩니다”라고 답했다.

태종은 “나의 염려하는 것이 꼭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전에 매 세 마리를 주었다가, 내가 이미 두 마리는 거두어 들였는데도 반성할 줄을 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국가에서 그의 늠록(?祿)을 감소시켜 그의 생을 곤고하게 하고, 또 수직하는 사람에게 명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해야만 겨우 보전할 것이나, 나 죽은 뒤에도 오히려 이와 같다면, 국가에서 법에 의거해 죄를 청하게 되면 주상인들 어찌 보전해 줄 수가 있겠는가. 그 담을 넘어갈 때 따라간 두 명 사환은 크게 징계해 다음 사람에게 경계가 되도록 하라”고 하명했다.

하지만 양녕은 태종의 경고와 철저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누리며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조선 시대 평균 수명에 비하면 상당히 장수했다.

요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일가들이 검찰 수사에 표적이 됐다.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전 의원은 MB 정권 당시 ‘만사형통’이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초실세로 불리우던 인사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검찰 수사 대상에 자주 등장했다.

스스로 국왕의 자리를 박차며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양녕에 비해 이상득 전 의원의 말로는 비참한 듯 하다. 정치를 멀리한 양녕대군과 정치에 올인한 현대판 ‘대군’의 노년은 천지차이다. 정치의 비정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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