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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를 외면한 선조와 주권자 국민의 6·13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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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를 외면한 선조와 주권자 국민의 6·13 선택
  • 윤관 기자
  • 승인 2018.05.21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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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인재(人材)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인재(人災)를 만든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윤관 기자)

인재 등용은 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의 의지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가 될지 아니면 만사(萬死)가 될지 여부는 권력자의 안목과 의지에 달려있다.
 
조선을 임진왜란의 비극으로 내몬 선조 또한 인재 등용에서도 함량 미달의 안목을 보여 혼란을 자초했다.
 
<선조실록>에 따르면 선조 9년 1576년 2월 15일 박순 등이 “이이(李珥)가 시골로 돌아가려고 하니 상께서 만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주청했다.
 
하지만 선조의 생각은 달랐다. 선조는 “그(이이)가 교격(矯激)스러운 것 같으니 인격이 성숙된 뒤에 쓰는 것도 해로울 것이 없겠다. 그리고 그가 나를 섬기려 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의 뜻을 꺾을 수 있겠는가?”라고 거절했다.
 
앞서 박순은 경연(經筵) 석상에서 정철·유성룡·김우옹의 인품이 훌륭하다고 천거했었다.
 
선조는 박순에게 이르기를, “사람을 뽑는 데는 충후(忠厚)하고 노성(老成)한 사람을 주로 해야 하고 교격스러운 사람들을 뽑아서는 안 된다. 경이 일컫는 것을 보면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때마다 내 마음이 상쾌하지 못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후일 유성룡은 임진왜란의 위기를 극복한 명재상으로 이름을 남겼지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무능한 군주 선조의 눈에 들지 못한 것 같다.
 
박순도 이에 지지않고 “상께서 분부하신 뜻을 신이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이는 의논이 화평(和平)하여 교격스러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돌아가는 것을 질병 때문이고 또 한가히 지내면서 독서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이는 무능한 군주와 탐관오리들이 망친 조선의 병을 정확히 집어내 ‘십만양병설’과 ‘수미법’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했던 현자(賢者)였다. 하지만 선조는 이이를 ‘교격’이라는 표현으로 격하시켰다.
 
6·13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향후 4년간 지방자치를 실현한 대리인들을 뽑는 선거다. 정치인들은 흔히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인재를 가려낼 수 있는 눈을 갖지 못한다면 선조와 같이 외침을 자초할 수 있다.
 
국민이 인재(人材)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인재(人災)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주권자 국민의 선택이 중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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