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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와 문재인 캠코더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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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와 문재인 캠코더 인사
  • 윤관 기자
  • 승인 2018.09.09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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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만 갖는다고 민생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윤관 기자)

독립협회는 구한말 망국의 길을 걷던 조선을 구하기 위한 지식인들의 마지막 저항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은 일제에 의해 을미사변이라는 참변을 당해 고종이 신변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난갈 정도로 나라 꼴이 엉망이었다.
 
갑신정변의 주역인 박영효는 미국으로 망명한 옛동지 서재필의 귀국을 요청했다. 서재필은 갑신정변 당시에는 혈기 넘친 어린 청년이었지만 이제는 미국에서 신식 공부를 한 지식인으로 성장했다. 죽음을 피해 황급히 도미했던 서재필로서는 12년 만의 금의환향이라고 볼 수 있다.
 
서재필은 개화파 정부의 지원을 받아 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창립했다. 독립협회는 조선의 자주독립을 원했다. 청에 대한 사대의 상징물인 영은문 터에 독립문을 건립했다. 또 청의 사신을 접대하던 모화관을 수리해 독립관으로 개칭했다.
 
이들은 민중 계몽에 앞장섰다. 내용은 교육 진흥, 산업 개발, 미신 타파, 자주 독립이 주를 이루었다. 백성은 독립협회의 활동을 지지했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조선의 새로운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고종도 독립협회의 활동을 지원했다. 고종은 경운궁으로 환궁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박정양 내각을 구성했다. 박정양 내각은 독립협회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헌의 6조 채택을 실현했다.
 
하지만 기득권층 보수 관료들은 독립협회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독립협회의 성공은 곧 자신들의 몰락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한심한 군주 고종을 이용하기로 했다, 보수 관료들은 귀가 얇고 권력 의지만 강한 고종에게 독립협회가 제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할 것이라고 모함했다.
 
권력의 화신 고종은 분노했고 즉각 독립협회 해산과 주요 인사 체포를 명했다. 독립협회도 만민 공동회를 개최해 저항했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은 대한제국 판 정치깡패인 보부상을 동원해 만민 공동회를 습격시켰다. 이들이 충돌하자 명분을 가진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독립협회를 강제 해산시켰다.
 
독립협회는 하루아침에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독립협회의 해산이 보수층의 계략이라고만 볼 순 없다. 독립협회 인사들이 친일과 친미 성향을 가져 러시아 견제에만 치중했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특히 일본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일제의 침략에 이용된 면도 적지 않다. 국제 정세에 어두운 조선 지식인의 실상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독립협회는 갑신정변에 이어 의욕이 현실 정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대표적인 실패작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는 ‘캠코더’로 상징된다. 문재인 대선 캠프, 코드 인사, 더불어민주당 출신을 일컫는 말이다. 세 인재풀에는 시민단체 인사가 다수다. 시민단체는 자발적 단체다. 그만큼 자신들의 영역에 자부심과 열의가 대단하다. 하지만 전문성 부족과 이념적 편향성을 지적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독립협회가 국제정세에 어두워 일제의 침략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이용당한 역사적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의욕만 갖는다고 민생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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