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캐스트

편집 2018.12.13 목 17:26
실시간뉴스
상단여백
HOME 칼럼/인물 칼럼/인물
대의명분론에 빠진 서인과 2018년 한국 민생“민생보다 더 큰 명분은 없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윤관 기자)


자영업자 폐업과 실업자 문제가 심상치않다. 사진제공=뉴시스
임진왜란의 징후를 제대로 읽지 못한 서인은 광해군 시절 야당의 지위에 있었다. 광해군이 북인과 함께 전후 복구를 적극 추진하자 서인은 집권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 위기에 빠졌다.
 
서인은 역전의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역시 ‘반정’밖에 없었다. 반정을 위한 명분을 찾기로 했다.
 
마침 광해군이 명·청 교체기에 중립외교를 펼쳤다. 당시 명나라는 곳곳에서 발생한 반란과 임진왜랑 당시 무리한 조선 원조로 국력이 급속히 약화됐다. 이 틈을 타 여진족은 영웅 누르하치를 중심으로 통합해 후금을 건국했다. 강성해진 후금은 명을 공격했고, 명은 임진왜란 당시 원조해준 것을 이유로 조선에 원군을 요청했다.
 
광해군은 현명한 군주였다. 중원의 새로운 패권국이 후금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고, 명에 원군은 보내되 후금과의 전투는 최대한 회피하는 전략을 세워 후금과의 친선을 도모했다. 조선은 광해군의 현명한 중립외교로 중국발 안보 불안을 해소하며 전후 복구에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서인에게는 정권 장악의 최대 명분을 얻는 호기가 됐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성리학 절대주의에 빠진 조선의 지식인에게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저버리는 무례한 행위로 판단됐다.
 
마침 광해군이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인목대비를 폐위시켰다. 서인은 명을 배신하고 친족을 죽이는 광해군을 폐위시킬 명분을 얻었다.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이른바 ‘인조반정’을 일으킨 것이다.
 
서인은 집권 후, 광해군의 모든 정책을 바꿨다. 먼저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폐기되고 친명배금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후금과의 관계는 단절됐다. 후금은 조선 침략의 명분을 얻었다. 후금의 태종은 광해군의 복수를 천명하며 조선을 침략했다. 정묘호란이 터진 것이다. 서인은 대의명분론에 매몰돼 왜란이 끝난 지 불과 30년도 안 돼 다시 외침을 초래한 것이다.
 
다행히 후금이 화의를 맺고 철군했지만 이는 뒤에 올 비극의 전초전에 불과했다. 후금은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조선에 군신 관계를 압박했다. 서인 정권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조선 조정은 일전불사를 외치는 주전론과 외교적 해결을 내세우는 주화론으로 분열됐다. 문화적 우월감 의식에 빠진 서인은 오랑캐 청과의 일전에서 승리를 자신하며 청의 요구를 거부했다.
 
청의 인내력은 여기까지였다. 청 태종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재침략했다. 청은 신속히 군대를 움직여 강화도를 차단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 갖혔다. 무력한 조선의 저항은 끝났고, 인조는 삼전도의 치욕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조는 군주로서의 체면을 잃었지만, 백성은 생명을 잃었고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 조선의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인은 정권을 잃지 않은 것이다. 전란의 책임을 져야 할 서인이 정권을 장악하며 백성의 삶을 더 고달프게 만들었다.
 
추석 민심이 애사롭지 않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북관계 개선에 몰두한 여권은 연일 문 대통령 칭송에 매몰됐다. 하지만 경제 상황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자영업자 폐업과 실업자 문제가 심상치않다. 민생 회복이 더 필요한 시기다. 민생보다 더 큰 명분은 없다.

윤관 기자  lehymc@naver.com

<저작권자 © 시사캐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윤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