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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기 폭파사고,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이름이여’... 통한의 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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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기 폭파사고,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이름이여’... 통한의 31년
  • 이현이 기자
  • 승인 2018.11.29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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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이현이 기자)

-31주기, 재수색·재조사를 촉구하는 ‘남겨진 이들’
-우리 정부의 조작된 사건인가, 북한 공작원의 테러사건인가
-방송사에서 찾아 온 ‘기체 잔해’... 정부는 뒷짐!

 

1987년 11월 29일, 대한한공(KAL)858기가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중 미얀마 안다만 해역에서 사라졌다. 탑승객과 승무원은 총 115명, 그들은 그날 전원 실종됐다.

KAL858기 사고가 올해로 31년을 맞았다. 그러나 31년동안 115명중 단 한명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정부는 말했다. 비행기 폭파로 ‘전원 사망’이라고. 그러나 남겨진 가족은 시체도 유품도 없는 사건이기에 ‘사망’이 아닌 ‘실종’이라고 말한다.

31년째 가족의 가슴에 멍울과 억울함으로 이어지는 그날. 1987년 11월 29일 KAL858기 안에서는 무슨일이 있었고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안기부가 앞장선 사고 조사... “식인상어 많아 시신 없어”
사건은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발생했다. 비행기 사고라면 국토교통부(당시 교통부)가 나서야 하지만, 이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안전기획부(안기부) 소관이었다.

사건 발생 다음날인 11월 30일, 사고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당시 대한항공 조중훈 회장은 태국 방콕에서 “KAL858기 사건은 테러”라고 발표했다.

정부에서는 이를 ‘북한 공작원에 의한 공중테러폭파 사건’으로 규정하고 폭파범으로 김승일(하치야 신이치)과 김현희(하치야 마유미)를 지목했다. 김승일은 체포 당시 현장에서 독약을 삼켜 죽었으며, 김현희는 살아남았다.

당시 사고조사는 안기부와 외교부 주도로 이뤄졌으며, 국토부는 배제됐다. 그들은 열흘가량 사고지역을 조사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사고지점도 정확히 대지 못하고 산악지역에서 일주일, 바다에서 사흘동안 조사하다 빈손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안기부는 “사고가 발생한 바다에 식인상어가 많아서 시신을 찾을 수 없고, 수심이 깊고 물살이 급해서 기체도 찾을 수 없다”고 발표했다.

한편, 당시 보상금문제에 안기부 직원들이 동원, 실종자 가족들과의 합의가 아닌 반협박으로 이뤄졌다. 사건에 빨리 종지부를 찍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김현희는 누구인가?
안기부는 김현희를 바레인에서 체포해 즉각 한국으로 데려왔다. 그날은 대통령 선거 하루전인 12월 15일이었다. 사고조사는 오로지 범인으로 지목된 김현희의 진술에 의해 이뤄졌다.

그리고 북한 공작원임이 맞는지가 정확하지 않은 김현희의 일방적인 진술에만 의지해서 ‘북한의 소행’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북한에서는 이를 반박하는 성명서를 여섯 차례 발표했지만 남한에서는 이를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김현희가 진술한 주소지는 이미 북한에서 소멸된 주소였으며, 적십자회담에서 화동으로 사진에 찍혔다고 발표한 인물은 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기부는 나중에 시인했다.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대책본부 총괄 팀장인 신성국 신부(청주교구)는 “만일 김현희가 북한테러범이 사실이라면 안기부에서 신원을 조작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테러범의 경우에 관례상 당연히 사형언도를 내려야함에도 남한정부에서 칙사 대접을 받는 것 역시 납득할 수 없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한편, 김현희는 지난 2012년 TV조선에 출연해 ‘자신을 진짜 범인으로 믿어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 앞에는 단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고, 추모제에도 참석한 바 없다.

그리고 경찰의 보호아래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두환 집 앞을 찾은 실종자 가족들 그리고 ‘기체 잔해’

사고 발생 31년이 지난 오늘(29), KAL858기 폭파 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 집 앞을 찾아 정부의 재수색과 재조사를 촉구했다. 그리고 한 방송사가 최근 미얀마에서 가져온 기체 잔해를 공개했다.

이날 오전 KAL858기 가족회와 사건진상규명대책본부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인근에서 제31주년 추모제를 열었다.

묵념으로 시작한 추모제에서 가족회 김호순 회장은 "당시 전두환 정권은 기체는 찾아주지도 않고 희생자 가족을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소복을 입혀 반공 궐기대회에 이용했다"며, "가족들은 31년간 한 서린 세월을 살고 있다"고 규탄했다.

임옥순 부회장도 "사건의 진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지는 것을 보지 못한 채 남편 곁으로 가면 남편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두렵다"며 눈물을 흘렸다.

또 "이 사건은 정권에 의해 언론에 의해 외면당한 사건"이라며, "KAL858기 실종 사건의 진실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서 가족회는 성명서를 통해 "최근 미얀마의 안다만해상 지역에서 KAL858기로 보이는 기체 잔해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사고 발생 당시 전두환 정권은 탑승자 115명의 유해·유품들을 단 하나도 찾지 않았고, 동체 잔해 수색도 하지 않았음이 증명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항공기 사고의 주무 부처인 국토부는 사고조사에서 배제됐고 안기부와 외교부 주도로 사고조사가 이뤄졌다"며, "정부는 왜 사고조사를 하지 않았는지, 어떤 공작이 있었는지 이제는 모두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한 "전 전 대통령은 무지개 공작을 기획해 KAL858기 사건을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 당선을 위해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가족회는 정부에  ▲국토부가 기체 잔해를 회수·검증하고, 전면적인 사고 재조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줄 것 ▲김현희와 실종자 가족들간의 공개 토론회 마련 등을 요구했다.

 

한편, 이 자리에서 신성국 신부는 최근 한 방송사가 수거한 KAL858기로 추정되는 기체 잔해를 공개했다. 공개한 잔해는 랜딩기어 부분으로 추측했다.

신성국 신부는 “이 기체 잔해는 지난 1996년 미얀마 사고지역에서 발견됐고, 현재까지 잔해 일부가 보존되어 있음을 확인했다”며, “당시 미얀마 정부는 우리 정부에 연락을 취했으나, 우리 정부 관계자 2명이 현지를 방문해 '필요없다',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안다만해역의 사고지역에서 KAL858기로 추정되는 잔해들이 발견된 만큼 국토부는 민관공동조사단을 구성해 전면적이고 철저한 사고지역의 수색과 조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추모제를 마친 희생자 가족들은 전 전 대통령에게 항의문을 전달하려 했지만, 경찰에 가로막혔고,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과 협의 끝에 전 전 대통령 자택 앞으로 이동한 가족회 대표 3명은 굳게 닫힌 문틈 사이로 항의문을 전달했다.

 

이날 이 자리를 찾은 가족회는 “오직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내 남편, 내 아들, 내 딸, 내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어떻게 사고를 당했는지 알고 싶고, 알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3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남겨진 이들의 통한의 눈물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KAL858기 폭파사고 일지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소속 858편 보잉 707기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중 오후 2시 1분 인도양 상공에서 사라짐. 8시 40분 서울 도착예정이던 858기는 탑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실은 채 실종.
11월 30일
정무 외무부 제2차관보 등 현지조사반 급파. 바레인측은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대 수색, 육상수색작업 진전 없음. 관계당국 및 KAL858기 측 인도양과 뱅골만 상공에서 공중폭파 가능성 시사. 당시 홍콩측은 기체내부 문제로 추락가능성 시사, 미국측 역시 추락가능성 시사.
12월1일
아랍 에미레이트 주재 한국대사관, 남한 입국이 금지된 요주의 인물인 ‘하치야 신이치(김승일)’와 ‘하치야 마유미(김현희)’ 2명이 바그다드에서 탑승하여 아부다비에서 내렸다고 정부에 보고. 검거한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마유미가 연행 후 조사 중 음독자살을 기도했다고 발표. 수색구조반은 추락지점인 밀림을 수색했으나 수색작업 진전 없음.
12월2일
당시 청와대 비행기에서 내린 2명의 추정인물이 북한계로 추정언급, 대북한 안보체제 강화와 선거방해 책동에 대한 엄단 지시. 정부 재판관할권과 신병인도 요청.
12월4일
김현희 회복
12월5일
3명의 수사요원 파견, 바레인 수사 간접지원 및 정확한 신원과 행적 등 수사방향과 범인 인도 합의. 치안본부는 ‘미야모토 아키라’를 배후인물로 추정.
12월7일
정부는 북한의 88올림픽 방해 책동으로 사건 분석.
12월9일
정부, 현지조사단 철수 결정(KAL858기는 실종 처리) 당시 KAL858기 유족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침묵시위.
12월11일
KAL858기 잔해로 추정되는 물체 발견. 방콕측은 신빙성이 희박하다고 반박.
12월15일
김현희 신병인도. 일본측 음성조사결과 김현희는 북경어권 출신. 즉, 조선족일 가능성 시사. 미국방성은 발견된 잔해추정물체가 KAL858기의 잔해가 아니라고 보고.
12월16일
대통령 선거 실시. 김현희 신상확인 조사 본격착수(안기부 주관), 북한 테러공작임을 확증적으로 표현.
1988년 1월15일
김현희 TV기자회견. 본인이 KAL858기 폭파범이며 북한 김정일의 사주로 88올림픽 방해, 선거분위기 혼란 야기, 남한내 계급투쟁 촉발을 목적으로 KAL858기를 폭파했다고 발표.
1월21일
미국, 대북한 제재조치로 테러국으로 단정. 북한외교관과의 교류지침 철회, 북한인의 미입국 제한 강화, 세계의 규탄유도를 위한 상징적 대응 발표.
2월4일
일본 조청련, 김현희의 자필선서문은 안기부의 조작이라고 기자회견. 미국, 88올림픽 개최시기에 맞춰 팀스리리트훈련(한미연합훈련) 실시에 대해 협의.
2월11일
한·일 정부 UN안전보장이사회 소집 요구, KAL858기 폭파사건 북한 규탄 논의. 2월17일 UN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채택 거부
2월22일
북, IOC위원 경질.
1989년 2월3일
서울지검, 김현희에 대해 6차례 조사(88.12.2~89.1.23) 결과 발표. △살인죄 △항공기폭파치사죄 △국가보안법 적용하여 불구속 기소.
1990년 3월27일
대법원 사형선고
4월12일
김현희 특별 사면 조치
1991년
6월2일 수기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 발간, 사건당시 진술과 80여곳 엇갈리는 내용
1996년
미얀마 어선에 의해 기체 잔해 발견. 미얀마 정부가 한국 정부에 이를 알림. 그러나 한국정부는 인도를 거절 함.
1997년
12월28일 김현희 전직 안기부 요원과 결혼, 개명.
 

신성국 신부의 기고문 中

전두환과 노태우 군부정권 아래서 수많은 국민들이 억울하게 살해됐다. 안기부와 보안사, 경찰에 의한 의문의 죽음, 고문에 의한 죽음, 조작간첩으로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전두환 정권 말기에 발생한 858기 사건도 안기부가 관여됐다.

지금까지 안기부가 ‘김현희는 북한 테러범’이라고 주장하면서 제시한 물증들은 모두 가짜로 확인됐다. 2005년도에 안기부 수사 발표문을 토대로 검증작업을 한 결과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2008년부터 올해까지 검찰의 수사기록도 검증 결과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에 관련된 수사기관의 기록들은 오히려 안기부가 조작했다는 증거물로 채택될 것이다. 자기들이 만든 거짓의 올가미에 걸려든 것이다, 국정원이 현명하다면 하루빨리 양심선언을 해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

진실은 영원히 덮을 수 없다.

[사진=시사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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