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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藥으로 둔갑한 毒’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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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藥으로 둔갑한 毒’이었다
  • 이현이 기자
  • 승인 2018.12.20 1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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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이현이 기자)

-국가재난 참사로 인정하라!
-피해자 단계규정을 폐지하고 전원 보상하라!
-관련 기업과 기관을 엄벌하라!

 

살을 에는 추위가 찾아온 지난 7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청와대 앞에 모였다. 지난 2011년,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이 밝혀진 지 7년이 넘어섰지만, 그들은 아직도 ‘받지 못한 답변’을 가지고 있어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들은 어떤 억울함을 갖고 있나? 무슨 답변을 원하는 것인가? 무엇이 그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나?

긴 싸움의 시작은 지난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8월, 연간 60만개가 팔리던 가습기살균제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갓 태어난 아기와 함께 생활한 방에서 하루종일 가습기살균제를 넣은 가습기를 가동했었다”며 망연자실한 산모는 “내가 내 아이에게 독약을 먹이고 있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당시 서울의 한 병원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으로 임산부들이 사망한 것을 시작해 산모와 유아 등이 원인 불명으로 잇따라 목숨을 잃었다. 이에 정부는 역학 조사 결과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고 밝혔다.

이후 7년여만에 6000여명의 피해자가 신고됐으며, 그중 1335명이 사망했다.

 


‘아이에게도 안심’? 그런데 알고보니...

가습기살균제 사용은 한마디로 ‘그릇 닦는 세정제를 미세한 분자로 나눠 흡입하는 행위’다. 애초에 만들어지지 말았어야 할 가습기살균제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가습기살균제는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이 1994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후 SK케미칼뿐 아니라 옥시, 애경 등의 기업에서도 SK케미칼로부터 원료를 공급받아 가습기살균제를 생산 판매해 왔다. 국내에서 시판됐던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원료물질 대부분은 SK케미칼로부터 원료를 공급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되는 원료물질은 폴리헥사메틸렌 구아니딘(PHMG)과 염화 에톡시에틸 구아니딘(PGH)이거나 유사 성분으로 구성됐다. PHMG와 PGH는 유독물질로 구분되며, 살생 소독제로 사용되는 물질이다. 즉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더불어 논란이 된 CMIT와 MIT 또한 자극성과 부식성이 커 일정 농도 이상 노출 시 피부와 호흡기, 눈 등에 강한 자극을 줄 수 있다. CMIT와 MIT는 기존에 일반 화학물질로 분류되다가 가습기살균제 사건 이후인 2012년 환경부가 유독물질로 지정, 사용을 전면 금지시켰다.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되는 이들 원료는 고농도로 폐에 노출되면 감기나 폐렴 증상이 발생하고 간질성 폐렴으로 진전돼 폐가 딱딱해져 호흡곤란이 발생한다. 폐 손상은 회복이 불가능하며 고착성 폐 기능 저하로 폐를 이식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당시 국내에서 흔히 사용하던 초음파 가습기도 가습기살균제 흡입을 돕는데 한몫했다. 초음파 가습기는 초음파를 발생시켜 물 분자 사이의 수소 결합을 끊어서 물 분자들을 효과적으로 기화시키는 원리로 만들어진다.

결과적으로 인체 세포를 죽이는 가습기살균제를 초음파 가습기에 넣으면, 초음파에 의해 작은 입자로 쪼개진 미세한 입자가 폐를 통해 혈관으로 들어가 퍼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국민은 약 17년동안 이 물질들을 마시고 있었다.

가습기살균제는 만들어지지도 사용되지도 않았어야 했다.

 


단계의 갈림길에 선 피해자들, ‘전원 보상’을 외치다

원인 모를 폐 질환으로의 사망이 이어지자 정부는 역학조사와 동물 흡입 독성 실험, 전문가의 검토를 통해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임을 밝혀냈다.

당시 동물 흡입 독성 실험은 실험용 쥐에 해당 살균제를 한달간 흡입하도록 한 것. 가습기살균제를 흡입한 쥐에서 폐 손상으로 숨진 피해자의 증상과 부합한 증상을 발견했다는 소견이 나왔다.

이로써 2011년 11월 11일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한빛화학) ▲세퓨 가습기 살균제(버터플라이이펙트)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용마산업사) ▲홈플러스 가습기 청정제(용마산업사) ▲아토오가닉 가습기 살균제(아토오가닉) ▲가습기 클린업(글로엔엠) 등 가습기살균제 6종에 대해 강제 수거명령이 내려졌고, 다른 제품도 사용을 금지하도록 했다.

이후 2013년, 정부는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 구제 법안을 상정하고 피해조사에 나섰다. 1차 조사결과 361명을 시작으로 2018년 12월 현재 4차 조사까지 6000명이 넘는 피해자를 확인했다.

피해자들은 정부가 지정한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정부가 만든 단계로 피해 등급이 나뉘었다. 피해 단계는 가습기살균제와 앓고 있는 질병의 인과관계를 조사해 메겨졌다.

1단계 ‘피해가 거의확실’, 2단계 ‘가능성 높음’, 3단계 ‘가능성 낮음’, 4단계 ‘가능성 거의 없음’, 판정 불가 단계는 ‘증거 불충분 등의 사유로 판정할 수 없음’으로 나눴다.

그렇게 나뉜 단계에서 1~2단계에 해당하는 피해자는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3단계부터는 보상을 해줄 수 없다는 정부의 방침도 나왔다. 1~2단계 피해자는 총 피해자 6040명중 468명(7.7%)이다.

이렇듯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보상을 받거나 그렇지 못하는 부류로 나뉘게 됐다. “같은 피해자인데 정부가 만든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4단계를 받았다”는 전신질환 피해자는 억울함과 질병의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피해자 단계규정 폐지와 전원보상’을 주장하고 있다. 피해규모와 증상은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에도 정형화된 증상 외엔 보상을 거부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폐 섬유화로 사망한 피해자 A씨는 사망 전, 4단계에 해당한다는 의료진의 판단으로 유가족은 보상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시사캐스트는 추후, 정부의 피해자 구제에 부족하거나 불합리한 부분은 무엇이며 각 기업들의 보상을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 추가 취재를 이어갈 예정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사진=시사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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