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0:55 (수)
최익현의 서원철폐론과 민생亂
상태바
최익현의 서원철폐론과 민생亂
  • 윤태현 기자
  • 승인 2018.12.16 23: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생을 외면한 위정척사의 역사적 과오를 잊지 않기를

(시사캐스트, SISACAST= 윤태현 기자)

구한말 위정척사파의 거두인 최익현은 흥선대원군이 매우 싫었다.
 
대원군은 민생 안정을 위해 대대적인 서원 철폐를 단행했다. 당시 서원은 선현 제사와 성리학을 연구하는 사립 교육기관으로서의 본연의 기능 대신, 지방 기득권층의 근거지로 각종 면세 특혜를 누리며 지역 농민들을 수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최익현과 같은 보수 유생들은 이에 반대 상소문을 계속 올리며 서원 철폐 철회를 강력히 촉구했다.
 
<고종실록> 고종 10년 11월 3일 기사에 따르면 호조 참판 최익현이 다시 상소문을 올려 만동묘와 서원의 복구 등을 청했다.
 
최익현은 서원의 장점에 대해서 “옛날의 교육은 집에는 숙(塾)을 두고 마을에는 상(庠)을 두며 주(州)에는 서(序)를 두고 나라에는 학(學)을 두어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배움에 있어서는 정밀하지 않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위로는 윤리가 밝아지고 아래로는 백성들이 화목하게 지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아조(我朝)의 성균관(成均館)이 옛날의 국학이며 향교(鄕校)도 옛날의 주서(州序)이고 서원은 옛날의 숙상(塾庠)이다”라며 “500가(家)에 한 개 ‘상’이 있은 뜻을 미루어 보면 만호나 되는 고을에 겨우 한두 개의 서원을 둔 것은 소략이 매우 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익현은 “모의하지 않았는데도 널리 설치하게 되자 겹쳐서 제사 지내는 것을 혐의쩍게 생각해 이미 세운 것까지 함께 폐지하고 천이나 백에 열이나 하나만 남겨둔다면 학교에 관한 옛 제도와는 크게 어그러지며 창건한 본래의 뜻을 크게 잃게 될 것이니, 교육이 해이되고 풍속이 퇴폐해진 것을 이웃 나라에서 듣게 할 수는 없다”고 강변했다.
 
최익현은 훗날 항일의병장으로 명성을 떨친 보수 유생의 대표주자다. 하지만 이 상소문을 보면
그가 서원의 본래 기능과 장점만을 강변하고 있다. 서원이 백성을 괴롭히며 국정 문란의 책임이 있다는 진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최익현은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늘 오늘날의 서원은 실효는 없고 폐단만 있다고 해 마땅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도 매우 그렇지 않은 것”이라며 “양이 남아 있으면 예도 회복될 가망이 있는 것이니, 서원을 철폐하면 어찌 학문이 영원히 폐지될 한탄이 없겠냐””라고  까지 지적했다.
 
정치는 백성의 삶을 위해 존재한다. 학문과 예의도 백성의 삶보다는 후순위이며, 수단에 불과하다.
 
최익현이 간과한 것은 민생이다. 예의와 명분을 중시하던 위정척사세력은 서원이라는 기득권이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였다. 그들에게는 예의와 명분은 구실에 불과했다. 서원이 누렸던 각종 특혜를 빼앗은 대원군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정적이었다.
 
서원철폐에 적극 반대했던 최익현, 결국 대원군을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근대화라는 시대 정신은 외면했다. 우리 역사에서 근대화 지연은 일제 식민지라는 치욕을 앞당겼다.
 
21세기 대한민국 정치권은 위정척사 이상으로 이념과 명분을 중시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민생보다 더 중요한 정치는 없다. 민생을 외면한 위정척사의 역사적 과오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