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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미중 무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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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미중 무역전쟁
  • 윤관 기자
  • 승인 2019.01.14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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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 위기는 이념과 말이 해법이 될 수 없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윤관 기자)

일본의 패망은 1931년 만주사변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일본은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의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에서 촉발된 대공황은 제1차 세계대전 승전의 역습이다. 미국은 전승국으로서 경제 번영의 길에 들어섰다. 문제는 전쟁이 끝나자 과잉 생산을 소비할 시장이 없어진 것이다. 기업의 대량 도산과 농산물 가격이 대폭락했고, 뉴욕 주식 시장의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됐다.
 
조선 이외에 별다른 식민지가 없었던 일본은 수출이 감소하고,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경제 불황이 몰아쳤다. 위기의식을 느낀 일본은 새로운 식민지 확보가 급선무가 됐다.
 
또한 세계 열강은 일본을 아시아의 헌병이 아닌 제국주의의 새로운 경쟁자로 여겨 집중 견제에 나섰다. 특히 일본의 잠수함과 보조 함대 보유를 제한한 런던 해군 군축 회담은 일본 군부를 자극시켰다.
 
위기감이 고조된 일본 군부의 결론은 만주 침략이었다. 1931년 관동군을 앞장세워 만주 일대를 점령하고 그 이듬해 만주국을 수립했다. 일제는 몰락한 청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를 허수아비 왕으로 데려와 일제의 괴뢰국 수장으로 삼았다.
 
이제 다음 목표는 중국 대륙이 됐다. 당시 중국은 국민당 정부와 공산당 그리고 각 지역의 군벌로 분열돼 일제의 침략을 막아낼 겨를이 없었다. 일제는 1937년 루거우차오에서 중국군과 충돌하며 총공격에 나섰다.
 
특히 난징 대학살은 수십만명의 무고한 중국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대참극이었다. 분열된 중국도 정신을 차렸다. 국민당과 공산당은 제2차 국·공 합작을 통해 항일전쟁을 전개했다.
 
국민당 정부는 충칭으로 수도를 옮기며 항전 의지를 불살랐다. 우리 임정도 중국 국민당 정부를 따라 충칭으로 이전했다. 중국 공산당은 특유의 유격전과 지구전으로 항일 투쟁에 집중했다.
 
미국과 영국은 러일전쟁과 달리 중·일 전쟁에서는 중국의 손을 들어줬다. 미영의 군사 원조는
중·일 전쟁을 장기전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일제는 또 하나의 무리수를 뒀다. 바로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결국 일제는 1945년 원자폭탄 두 방을 맞고 패망했다.
 
2019년 전 세계는 미중 무역전쟁의 후폭풍으로 불안에 떨고 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이에 도전하는 중국이 서로 충돌하면서 세계 경제는 먹구름이 꼈다. 대미·대중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불상사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리가 1930년대의 일본과 같이 제국주의의 전철을 밟을 일은 없겠지만 대공황의 직격탄을 맞고 경제 불황의 늪에 빠졌던 일본처럼 미중 무역전쟁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대한민국 대표 캐시카우인 반도체 수출이 급감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반도체마저 급변하는 수출한국의 명성은 옛 노래가 될 수 있다. 글로벌 경제 위기는 이념과 말이 해법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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