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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은 3대 국제회담과 미북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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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은 3대 국제회담과 미북 정상회담
  • 윤관 기자
  • 승인 2019.01.20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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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전 우리의 운명이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분단의 비극을 맞이한 불행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윤관 기자)

제2차 세계대전 중 한반도의 독립을 논의한 3대 국제 회담이 있다.
 
첫 번째는 한국의 독립을 최초로 약속한 카이로 회담이다.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처칠 영국 수상, 장제스 중국 총통이 만나 일본의 식민지 독립과 인도차이나에 대한 신탁 통치 등을 논의했다.
 
카이로 회담은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지만 ‘적당한 시기’와 ‘적절한 절차’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이 들어가 훗날 미국과 소련의 군정을 초래했고, 한반도 신탁통치안이 대두되는 원인이 된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좌지우지된 순간이다.
 
1945년 2월 연합국은 승전을 눈앞에 두자 얄타에서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엔 미국과 소련, 그리고 영국이 참가했다. 3국 정상은 유럽과 동아시아에서의 전쟁 수행 및 전후 처리를 논의했고, 태평양 전쟁의 조기 종전을 위해 소련이 對日전 참전을 확정했다.
 
얄타회담은 미국의 전략적 실책이 두드러진 대표적인 회담이다. 일본 본토 진입을 앞두고 막대한 희생을 우려한 미국이 소련군의 참전을 허용함으로써, 한반도 분단의 씨앗을 제공했다.
 
소련군은 전쟁이 막바지에 달한 8월 초에나 일본군과 전투를 치루면서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차지하는 큰 수확을 얻었다.
 
마지막은 1945년 7월 포츠담에서 미국, 영국, 소련, 중국 등 4대 강국 정상이 모여 한국의 독립을 약속한 카이로 선언 이행과 일본 영토 제한, 일본의 무장 해제 및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촉구했다.
 
하지만 일본은 패색이 짙은데도 불구하고 포츠담 선언을 거부했고, 인류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인 원폭 세례를 받았다. 소련군도 만주로 진격하자 무조건 항복했다.
 
결국 패전국 일본의 식민지로 독립한 한국의 운명은 외세에 의해 분단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군의 무장해제라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우리 민족은 남북 분단을 당했고, 6·25 전쟁의 참화를 겪으며 현재까지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불행을 안고 있다.
 
조만간 미국과 북한의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북한은 지난해 6월 제1차 미북 정상회담을 가진 후, 미국은 先비핵화를, 북한은 先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하며 상대방을 굴복시키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대한민국의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것은 북한 비핵화의 현실화와 한반도 평화다.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면 우리는 핵 위협의 인질로 살아야 한다. 74년 전 우리의 운명이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분단의 비극을 맞이한 불행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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