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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이 전하는 강원도 산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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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이 전하는 강원도 산불의 역사
  • 윤태현 기자
  • 승인 2019.04.14 1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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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역사의 기록 분석을 통해 산불 발생 지역의 특징을 명확히 파악해 대비책 마련을 권해본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윤태현 기자)

조선도 강원도 지방의 화재로 많은 피해를 봤다.
 
<성종실록> 성종 20년 3월 14일 기사에 따르면 강원도 관찰사 이육이 통전의 세금을 양양부에서 받도록 해 주기를 청했다.
 
강원도 관찰사 이육(李陸)은 “2월 24일에 산불이 나서 양양부(襄陽府) 주민 2백 5호와 낙산사관음전이 연소되고, 간성 향교와 주민 2백여 호가 일시에 모두 탔는데 오직 사람과 가축은 상하지 아니했고 민간에 저장한 곡식이 모두 재가 됐으니, 청컨대 통천(通川)의 전세(田稅)를 옮겨 받아서 주도록 하소서”라고 청했고, 성종은 이에 따랐다.
 
<중종실록> 중종 19년 3월 19일 기사는 “강릉 대산 등에 산불이 일어나다”라고 기록했다.
 
“강릉(江陵)의 대산(臺山) 등에 산불이 일어나 번져서 민가 2백 44호를 태웠고, 경포대(鏡浦臺)의 관사(官舍)도 죄다 태웠는데 주방(廚房)만이 타지 않았으며, 민가의 소 한마리와 말 한마리가 타죽었다.”
 
<중종실록>, 중종 19년 4월 4일 기사는 중종이 강릉의 산불에 대해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백성들의 진휼을 명했다고 전한다.
 
“어제 강원도 감사의 서장(書狀)을 보니 ‘강릉땅에 산불이 바람을 따라 일어나 퍼져서 민가 2백 40여 호를 태웠는데 그 불이 일어난 까닭은 아직 잘모른다’고 했다”며 “산불일지라도 민가가 이처럼 이웃으로 번져 불탔으니 큰 재변(災變)으로서 내가 매우 놀랍고 두렵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중종은 “감사의 서장에는 이미 도사(都事)를 시켜 가서 살피고 진휼(賑恤)하게 했다고 했으나, 각별히 진휼할 것을 감사에게 하유(下諭)하고 아울러 해사(該司)에 전하라”고 명했다.
 
조선 후기에도 강릉을 비롯한 영동지방은 산불로 다수의 인명이 희생됐다. <현종실록> 현종 13년 4월 5일 기사는 “원양도에 산불이 나 65명이 죽다”라고 기록됐다.
 
“원양도의 강릉·삼척 등 네 고을에 산불이 크게 나서 불타버린 민가가, 1천 9백여 호이고, 강릉 우계(羽溪)의 창고 곡물과 군기(軍器) 등의 물건이 한꺼번에 다 타버렸으며, 불에 타 죽은 사람이 65명이었다.”
 
또 “네 고을의 백성들이 기근을 겪은 뒤에 또 이 화재를 당해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에 닿았다”며 당시 처참한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이에 현종은 영서(嶺西)의 곡식 1천 석을 옮겨 구제하라고 명했다.
 
최근 강원도 고성과 강릉, 동해 등지에 산불이 나서 인명과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를 입었다. 수백년 전의 실록 기록을 보면 이번 재난과 똑같은 현상을 보였다. 정부는 역사의 기록 분석을 통해 산불 발생 지역의 특징을 명확히 파악해 대비책 마련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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