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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1인 가구] 정조의 환과고독을 위한 무상복지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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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1인 가구] 정조의 환과고독을 위한 무상복지 정책
  • 윤관 기자
  • 승인 2019.04.17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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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쇠약하고 외로운 자가 더욱이 매우 불쌍하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윤관 기자)

조선 후기의 성군인 정조는 무상 복지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제시했다.

<정조실록> 정조 8년 1월 19일 기사는 정조가 “백급 대상을 가려 뽑게 하다”라고 명한 것으로 전한다. 여기서 ‘백급(白給)’이란 무상 지급을 말한다.

정조는 비국 유사 당상 서유린·조시준과 한성 판윤 김이소를 만난 자리에서 “발매(發賣)하는 일은 오로지 가난한 무리를 위한 것인데, 요즈음 들으면 이 무리는 도리어 많이 빠졌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에 특별히 살펴서 초록(抄錄)하라고 한 명은 대개 순(巡)을 정해 백급(白給)하려는 것”이라는 본심을 드러냈다. 정조가 언급한 초록은 필요한 부분만을 뽑아서 적는 기록을 말한다.

정조는 “한성 판윤이 초록한 문서에서 각별히 더 가려서 각동(各洞)의 존위(尊位)에게 내어 주어 다시 헤아려 취사(取捨)하게 하고 문서가 다 수정된 뒤에 별단(別單)을 계하(啓下)했다”며 “이달부터 3월까지 각각 1순(巡)하되, 대미(大米)로 2순하고 소미(小米)로 1순하고 민호(民戶)를 셈하여 백급하라”고 지시했다.

또 “이것은 발매와 다르니, 순마다 나누어 준 뒤에 곡물과 민호의 수효를 동리와 받은 것의 다과(多寡)를 구별해 별단에 조목조목 벌여 적어서 아뢰라”고 강조했다.

정조는 무상복지 정책을 펼치면서도 명확한 지급 기준을 제시해 복지 수요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공정한 분배를 위함이었다. 또한 자신이 직접 정책을 확인해 계획과 실행에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함께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조는 이튿날에도 “듣건대, 백급하는 무리는 하천(下賤)에게만 미치고 반명(班名)에는 미치지 않았다 하니, 접때부터 신칙한 본의에 매우 어그러진다”며 “반호(班戶) 가운데에서 지극히 가난한 자도 뽑아내도록 허가해 문서를 마찬가지로 수정해 입계(入啓)하라”고 지시했다.

반명(班名)은 양반을 일컫는 말이다. 정조는 무상복지의 혜택이 몰락한 양반에게도 적용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이다.

정조는 진휼청(賑恤廳)에서 도민(都民)에게 값을 줄여서 발매하고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무리에게 순미(巡米)를 백급하는 일을 보고하자, “쌀의 품질을 각별히 가리고 두량(斗量)을 반드시 맞추어 조정에서 가난을 돌보는 본의가 반드시 고루 미치게 하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반호의 수는 적어졌거니와 과부의 집이 태반이니, 아! 저 쇠약하고 외로운 자가 더욱이 매우 불쌍하다”며 “길에서 빌어먹기 어렵거니와 품파는 데에 의지할 수도 없으니, 오직 이 두어 말의 곡물이 어찌 한 달의 양식을 돕겠는가? 소호(小戶)·독호(獨戶)를 물론하고 민호(民戶)보다 대미와 소미를 각각 한 말을 더해 백급하라”고 명했다.

200여년 전 정조가 외롭고 삶이 어려운 백성들에게 무상복지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냉철한 현실 인식과 철저한 파악을 통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또한 수혜대상의 신분을 따지지 않고 몰락한 양반도 수혜대상으로 확대한 것은 무상복지의 목적을 본인 스스로 잘 인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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