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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1인 가구] 기근으로 곤란에 빠진 어린이 구휼에 적극 나선 민진후복지사각지대 위험에 빠진 미성년 1인가구 보호에 적극 나서야

(시사캐스트, SISACAST= 윤관 기자)

민진후는 숙종의 비운의 왕후 인현왕후의 오빠다. 그는 외척으로서 기사환국 당시 실각했지만 인현왕후가 복위하자 정계에 복귀했다.

민진후는 이후 충청도관찰사, 대사간, 병조참판, 호조참판을 거쳐 한성부판윤으로 승진, 형조판서와 예조판서를 역임했다. 그는 인품이 뛰어나 어린이와 같은 갈 곳 없는 백성들의 고충을 잘 헤아려 구휼에 힘쓴 인물로 역사는 전하고 있다.

<숙종실록> 숙종 30년 4월 28일 기사는 “기근이 심해 강창에 죽소를 만들어 기민을 구휼하다”라고 기록했다. 실록은 당시 백성들이 기근이 심해지자 조정은 진휼청에 명해 강창(江倉)에서 죽을 쑤어 이를 먹였는데, 2천여 인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이에 진청 당상(賑廳堂上) 민진후는 임금에게 아뢰기를, “설죽소(設粥所)의 굶주린 백성은 거의가 잔약한 어린이로 의지할 곳이 없는 자가 많았으니, 보기에 비참하고 가련하다”고 실상을 고했다.

민진후는 “신(臣)은 백성들로 하여금 구활(救活)하는 데 따라 노비(奴婢)를 삼도록 허락했으나, 자원한 사람은 아주 적었으니, 이는 대개 전일에 있어서 입안해 성급(成給)한 후에 사대부(士大夫) 집안에서 노비(奴婢)로 칭해 혹은 도로 찾아가며, 심지어는 역가(役價)를 징수(徵收)하기 때문이었다”고 보고했다.

그는 “지금 만약 강원·함경 양도(兩道)의 어사(御史)가 진계(陳啓)한 절목(節目)에 의해 구활(救活)한 자 15세 이상은 그 몸이 노역할 것을 허락하고, 15세 이하는 영구히 노비(奴婢)를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으나, 다만 거두어 기르는 날짜가 일찍이 정한 기한이 없으므로, 길러준 날짜가 많지 않아도 수양(收養)했다고 혼칭(混稱)하는 자가 많다”고 알렸다.

또 “지금은 60일로써 한정하고, 진휼을 마치기를 기다려 묘당(廟堂)에 품의해 날짜를 계산해 분등(分等)한 다음 열록(列錄)해 계하(啓下)한 후에 비로소 입안(立案)을 성급(成給)함이 편의할 것 같다”고 간청했다. 이에 숙종은 민진후의 건의를 그대로 따랐다.

민진후는 기근으로 갈 곳 없는 어린아이들을 구휼하기 위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즉 그들은 거두어 기르는 날짜 기준이 없어 혼동이 생기는 폐단을 없애고자 60일이라는 기준을 제시했고, 숙종은 이를 따른 것이다.

최근 어린 나이에 홀로 사는 미성년자들도 증가하고 있다. 복지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이상, 미성년 1인가구는 더욱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조선의 민진후처럼 미세한 부분까지 잘 파악해 미성년 1인가구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윤관 기자  lehym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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