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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명의 비극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 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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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명의 비극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 도발
  • 윤태현 기자
  • 승인 2019.05.20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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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과 조선의 비극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빈곤에서 초래했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시사캐스트, SISACAST= 윤태현 기자)

명과 조선의 비극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빈곤에서 초래했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진은 북한과 대치 중인 최전방 사진제공=청와대 
임진왜란은 동북아의 변화를 촉진시켰다. 전쟁터가 된 조선은 국가 재건의 기회를 얻었지만 서인과 북인의 권력투쟁으로 백성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됐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열도의 패권을 건 세키가하라 전투의 승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열었다.
 
못난 이웃 조선을 지원했던 명나라는 극심한 재정난을 자초했다. 막대한 군사비 지출과 국내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반란은 명 멸망의 촉진제가 됐다. 망국의 주역 환관들은 부족한 재정 보충을 위해 무리한 광산개발과 세금징수를 적극 추진했다.
 
명의 백성들도 지배층의 민심이반정책에 민란으로 맞섰다. 명 왕조의 지지세력인 신사(神士)층도 등을 돌렸다. 이들은 명대에 관직을 역임하거나 관직 경험이 없는 학위 소지자로 지역 사회를 주도한 세력이다. 명의 멸망은 시간 문제가 됐다.
 
반면 임진왜란의 최대 수혜자는 여진족이었다. 여진은 한때 중원을 호령했던 금나라의 후예다. 이들은 원·명을 거치며 와신상담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이들은 명과 조선의 견제가 소홀해진 상황을 십분 활용하며 세력 통합과 확장에 나섰다.
 
여진의 영웅 누르하치는 전쟁 중 조선에 원군을 파견하겠다는 뜻을 명에 제안할 정도로 세력을 키웠다. 무능하고 탐욕스런 명 왕조 대신 여진이 중원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순간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내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는 명과의 일전을 펼쳤다. 명은 강성해진 후금과의 전쟁에서 역부족을 느꼈다. 조선에게 원군을 청했다. 동북아 정세에 밝은 광해군은 중립외교를 통해 명·청 교체기의 위기를 극복했다.
 
하지만 명은 운명이 다했다.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와 서인 정권은 역사의 전환기를 제대로 읽지 못해 정묘·병자호란의 참화를 자초했다. 무능한 서인 정권을 가진 조선 백성은 임진왜란의 참화를 겪은 지 40년도 안 돼 정묘·병자호란의 비극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 비핵화는 동북아 평화의 최대 이슈다. 김정은 정권이 하노이 담판 결렬 이후,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며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800만 달러에 달하는 인도적인 대북 지원과 개성공단 방문을 허가했다.
 
미국도 김정은 정권이 비핵화를 구체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는 한, 대북제재를 해제할 뜻이 없어 보인다. 남북분단 이후, 북한은 잦은 도발로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몰아세우곤 했다. 감성적인 민족주의보다는 국제정세의 냉철한 현실 인식이 더 필요한 시기다.
 
명과 조선의 비극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빈곤에서 초래했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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