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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의 정반대 서양문물수용과 규제 천국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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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의 정반대 서양문물수용과 규제 천국 한국
  • 윤태현 기자
  • 승인 2019.05.27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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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반동은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격이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윤태현 기자)

중국은 아시아의 맹주이며 서양 제국들도 두려워했던 강자였다. 일본은 아시아의 변방으로 ‘왜구’라고 불리우며 중국과 한반도로부터 멸시를 받았다.
 
하지만 근대사의 중국과 일본은 천지 차이였다. 중국은 대국의 자만심에 빠져 서양의 침략에 시달리며 망국의 길을 걷다가 ‘왜구’라고 멸시했던 일본의 침략으로 대륙이 유린당하는 치욕을 당했다.
 
반면 일본은 일찍이 서양 문물을 수용하며 세계사의 중심이 되고자 노력했다. 에도 막부는 크리스트교의 금교령을 내렸지만 네덜란드와의 교역은 허락했다.
 
네덜란드의 학문을 연구하기 위한 ‘난학(蘭學)’이 발전했고, 의학을 비롯한 천문, 역법 등의 과학과 범선, 무기, 시도, 세계지도 등 과학기술이 낳은 문명의 이기를 빨리 접할 수 있었다. 중앙 정부인 막부가 서양과학기술을 중시하니, 지방정부인 번들도 서양 과학기술 수용에 적극 나섰다.
 
하지만 중국은 화포기술과 천문, 역법, 수학 등은 제법 수용했으나, 대국의 자존심을 지킨다는 옹졸한 마음으로 자연과학 수용에서는 소극적이었다. 이들 사대부의 관심사는 오로지 과거 합격과 무관한 서양의 과학이 관심사가 될 순 없었다.
 
하물며 소중화 사상에 짙게 물든 조선의 실상은 더욱 처참했다. 병자호란으로 인절로 끌려간 소현세자가 서양 선교사의 교류로 서양 과학기술문명에 관심을 가졌으나, 자신의 안위에만 관심있던 인조와의 불화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소현세자의 사망은 서양과학문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회를 단절시켰다.
 
다만 북학파들이 그나마 명맥을 이어갔으나, 권력의 화신 노론은 이들의 주장을 묵살했고, 시대착오적인 주자학을 사수하는데 전념했다.
 
19세기 후반 일본은 적극적인 개방에 나섰고, 강화도조약, 청일전쟁을 이끌며 아시아의 맹주가 됐다. 20세기 초반은 일본의 독주체제였다. 서양 열강인 러시아도 일본에 의해 침몰됐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고, 앞서 밝힌대로 중원대륙도 일본의 침략으로 수천만명이 희생됐다.
 
만약 중국이 중화사상을 버리고 세계사의 조류에 동참했다면 일본의 발호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편협된 사고로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세계사의 흐름을 읽지 못한 국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세계 각국이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해 선도자가 되기 위해 규제 개혁에 나서고 있는데도 한국은 각종 규제의 벽과 기득권층의 반대로 규제의 담을 쌓고 있다. 역사의 반동은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격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규제의 늪에 빠진 한국의 기득권층이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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