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8 22:33 (금)
[김백리의 성공학 ⑫-긍정의 힘에도 한계가 있다]
믿음-실천없는 긍정적 사고는 모래성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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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리의 성공학 ⑫-긍정의 힘에도 한계가 있다]
믿음-실천없는 긍정적 사고는 모래성과 같다
  • 김백리 자유기고가
  • 승인 2008.04.0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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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레이크우드 교회의 담임목사인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 (Your Best Life Now)”이란 책이 베스트셀러이다. 내용을 보면 긍정적 사고가 개인에게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주는지를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유럽 상공 어딘가에 앉아 있는데 날개 엔진이 꺼졌다고 상상해 보자. 비행기 조종사가 어떻게 하기를 바랄 것인가?
 
그가 ‘모두 진정하시고 안전벨트를 매십시오. 쉽지는 않겠지만 무슨 방법이 있을 겁니다.’라고 말하기를 원할까? 아니면 기장이 통로를 오르내리면서 ‘우리 모두 죽을 거요. 모두 죽을 거라고요.’하고 소리치기를 원할 것인가? 둘 중에 어떤 사람이 우리를 안전하게 내려 줄 것같이 생각되는가? 이 글은 동일한 사안임에도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사안을 바라보고 생활해야 하는가를 설명해준다.

많은 미국인이 존경하고 영웅으로 기억하는 맥아더 장군.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맥아더 장군은 절대로 부하들에게 비관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패색 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는 오늘처럼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긍정적인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시련을 견디고 극복하는 힘을 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시련이나 위험 앞에서 쉽게 부정적인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말이 오히려 더 큰 절망에 빠지게 한다. 말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공허한 것이 아니다. 말은 형체를 지니고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무려 1,000번의 실패를 거듭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에디슨에게 어느 신문 기자가 물었다.
“에디슨씨는 어떻게 1,000번이나 실패하면서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에디슨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실패라니요? 나는 절대로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단지 전구를 만들 수 없는 1,000가지 방법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이나, 사안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의 시각을 갖게 된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두 가지 시각에 대해서만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부정적으로 볼 것이냐.

신문 보도에 의하면 교회에 자주 나가는 기독교인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9% 수입이 많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마음을 편안히 하고 항상 “나는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생활하는 자세,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자세가 경제적인 면에서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확률을 높인다고 생각한다.

마케팅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서도 긍정적인 사고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긍정적인 사고는 적극적인 행동을 만들어 주는 엔진이며, 이는 힘들고 지쳐버리기 쉬운 현대인의 삶에서 끊임없는 열정을 만들어 줄 수 있다.

긍정적 사고의 본질은 확실한 보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선의 기회를 준다. 패배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불가능하게 될 때까지 불가능한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가능한 것을 생각한다. 가능성에 집중하면 실제로 가능하게 된다.

긍정적 사고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을 그림으로 그려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뇌를 커다란 호두처럼 반으로 쪼갠다고 생각하자. 위의 절반은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담고 있는 의식이고, 아래의 절반은 무의식이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숨을 쉬고, 소화를 시키는 것처럼 선천적으로 타고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과 걷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 창조해 낸 프로그램들이 있다.

또 긍정적인 사고를 위해선 긍정적으로 행동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생각이 행동을 바꿀 수 있는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거꾸로 행동이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평소에 남루한 차림으로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새 옷을 입으면 괜히 우쭐해지는 것도 이러한 영향 때문이다.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긍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나님은 친절하게 약속해 주셨다고 이야기한다.

세계사의 인물 중에는 자신의 치명적인 질병을 세계정복의 원동력으로 이용한 극단적인 예가 있다. 그가 곧 로마의 초대황제 줄리어스 시저이다. 그는 타고난 허약체질에다가 항상 두통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게다가 충병(蟲病)인 간질병까지 있었으니 열등감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품위가 심하게 손상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한다.

그러나 그는 아픈 것을 핑계로 무사안일에 빠지지 않고 군무를 지병에 대한 치료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장거리의 심한 행진을 마다하지 않았고 항상 노천에 살면서 물밀듯 밀려오는 피로를 인내하며 병과 싸워 심신을 단련했다. 이러한 행동양식은 자신의 신체적 연약함을 극복하려는 불굴의 의지와 간질병이라는 불치의 병을 무시하려는 보상심리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긍정적인 사고와 더불어 뚜렷한 목표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한번은 영국의 특수부대원들이 미얀마의 정글로 정찰을 떠났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그들이었지만 워낙 험한 정글이라 부대원 대부분이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6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자 영국정부도 이 작전에 대해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6개월 후 극적으로 1명의 생존자가 발견되었다. 그는 독충과 맹수가 우글대는 미로와 같은 정글에서 배고픔과 싸워가며 6개월을 견뎌낸 것이다. 후에 어떻게 살아나왔느냐는 질문에 그는 군복 주머니에서 다 구겨진 종이를 하나 꺼내들었다. 지도였다.

사람들은 그 지도 때문에 험한 정글을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러나 그 지도는 정글의 지도가 아니라 런던의 지하철 노선표였다.

정글에서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지하철 노선표였지만 그 병사에겐 어떻게든 살아서 런던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뚜렷한 소망과 목표가 되어준 지도였다. 목표는 그만큼 중요하다. 』

긍정적 사고는 정신건강을 촉진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자기개발 분야의 여러 베스트셀러 작가(데일 카네기의 저서 ‘근심이여 안녕’은 독일에서만 10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들은 ‘긍정적 사고는 정신 건강을 촉진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심리학자 귄터 샤이히의 견해에 따르면 지나치게 긍정적인 사고는 병에서 벗어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병을 유발시킨다고 한다.

근심 걱정이 전혀 없는 삶, 영원한 조화, 당연한 것으로 주어지는 부, 완벽한 건강과 같은 유토피아적 목표들은 괴로운 현실과 거의 연관이 없다. 그러나 긍정적 사고의 소유자들은 그와 같은 목표들을 한 가지라도 이루지 못하면 그때 마다 긍정적 사고의 결여와 함께 간접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그 탓을 돌림으로써 점점 더 깊은 우울증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긍정적 사고와 정신건강과의 상관관계에 그렇게 몰두할 필요는 없다. 긍정적인 사고와 열정이 있을 때 문제를 푸는 열쇠와 대안이 나온다는 평범한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많이 쓰는 용어 중에서 ‘긍정적 사고’ 라는 말은 모든 문제들을 풀어주는 만능 키 정도로 인식하는 분들도 있다. 모든 일에 ‘하면 된다’, ‘불가능은 없다’, ‘된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길은 있다’라고 목청 돋우며 사람들에게 강조한다.

각종 강연이나 자아 성장프로그램들, 심지어는 설교 가운데에도 긍정적 사고방식에 대한 찬사가 빗발친다. 부정적 사고는 사람을 병들고 지치고 포기하고 망하고 약하게 만들지만, 긍정적 사고는 자신감이 넘치고 활력을 주며 강하고 풍성하게 만든다고 가르친다. 정말 그럴까?

긍정적인 사고는 대개 행동이라는 변화유발과정을 통해서만 성공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행동이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리 이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자가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자 보다 좋은 인생을 산다는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음에도 만사가 잘 풀리지 않고 걱정하는 사람 또한 많다.

여기에는 그 개인의 노력 부족도 있지만, 종교인들의 경우 믿음의 부족을 질타하기도 한다. 그렇다 무언가 긍정의 힘에도 이루어지 않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긍정의 힘에도 합리적인 사고가 곁들여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로 보인다. 실천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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