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9:47 (금)
천년 혼 담은 문화재의 寶庫… 사찰 순례 필수
상태바
천년 혼 담은 문화재의 寶庫… 사찰 순례 필수
  • 박지순 기자
  • 승인 2008.04.08 11: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남 공주 ‘마곡사’ 탐방

태화산 지맥 둘러싸인 충청 사찰 본사
스승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사라 칭해
임진·병자 양란 피해 목조건축물 풍부

충남 공주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절이 세 곳 있다. 계룡산에 위치한 동학사와 갑사 그리고 태화산에 위치한 마곡사다. 동학사와 갑사는 국립공원 계룡산의 유명세에 힘입어 지역민들에게는 소풍 장소처럼 자주 찾는 친근한 곳이다.

태화산 마곡사는 성격이 좀 다르다. 태화산이 사람들에게 매우 생소한 이유도 있겠고 마곡사는 절의 명칭 말고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절을 찾아 전국을 순례하는 이들에게 마곡사는 필수 방문 코스다.

충청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천년 고찰인데다 가람 배치가 여느 절과는 다르고 문화재의 보고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국가지정 문화재가 다수 소장돼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곡사는 절에 들어가는 진입로부터 색다른 인상을 풍긴다. 마곡사의 경우 오르는 길이 길게 굽이치며 절까지 이어져 있다. 대략 상상해보면 커다란 S자를 그리고 있는데 아무튼 이 길의 정취가 제법 좋다. 특히 마곡사의 봄 풍경은 절경이라고 소문나 있다.

마곡사는 세속인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곳이다.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공주의 서북방 약 24km거리에 해당한다. 이곳은 태화산의 지맥에 의해 둘러싸인 곳으로 예산 수덕사와 더불어 충남지역 사찰의 본사로서 지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마곡사의 입지는 계곡이 깊기 때문에 택리지, 정감록 등의 지리서나 비기에서도 병란(兵亂)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로 꼽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절의 이름은 신라 보철화상(普徹和尙)이 설법(說法) 전도할 때 모인 신도가 삼밭(麻田)의 삼[麻]대 같다고 하여 마곡사(麻谷寺)라 이름 지은 것이라 한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신라 무선대사가 당나라 마곡보철 선사에게 배웠기 때문에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이라 칭했다고 한다.

마곡사가 깊은 계속에 자리하다보니 유명관광지처럼 찾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충남에서는 훌륭한 절 건축물들을 한꺼번에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사찰의 28본산의 하나며 충남의 모든 사찰을 관할하는 큰 절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2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후 고려 문종 이후 100여 년간은 폐사돼 도둑떼의 소굴로 사용되다 1172년 명종의 왕명을 받아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수하고 그후 범일, 도선, 각순대사가 중수한 내용이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불교에 관심을 기울인 세조가 “영실전”(靈山殿)이란 석 자를 특별히 하사했다는 내용이 전하기도 한다. 이 사찰은 임진, 병자의 양란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목조건축물이 풍부하다.

마곡사의 연혁 및 건물의 역사를 밝혀 주는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과 겸사입안원문의 내용이 전하고 있기도 한다. 그러나 그 처음 연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는 확인되고 있지 않지만 전하는 연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시간의 선후 관계가 맞지 않고 삼국 말기 백제와 신라의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에 백제의 핵심부에 신라의 승려인 자장이 창건했다는 사실 등은 그저 전설 정도로만 받아들여야 할 듯하다.

마곡사의 가람배치는 경내를 가로 지르는 계곡을 경계로 해 양분돼 있다.

계곡 사이에 흐르는 천류를 경계로 남측에는 사찰의 입구에 해당하는 천왕문, 해탈문이 있고, 계곡냇물의 다리를 건너 5층 석탑, 대웅전이 자리하는데 석탑의 좌·우로 종무소, 요사체(스님들의 거처나 사무실 등으로 쓰이는 건물)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한편 입구에는 천왕문 해탈문이 서쪽에는 영산전을 비롯한 명부전 국사당이 있다.

한편 마곡사는 경내의 건물 이외에도 많은 부속암자가 사찰의 주변에 산재하고 있다.

마곡사의 경내에는 대웅전격인 대웅보전(大雄寶殿)과 대광보전(大光寶殿)이 있는데 대광보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건조물로 건축의 화려함에 치중한 건물이다.

대광보전 내에는 주존불(불교 건물 안에 있는 여러 불상 중에서 가장 중심으로 모시는 불상)인 비로자나불(昆盧那佛)이 일반적인 형태와 달리 왼쪽엄지가 오른손 안에 놓이고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왼손 검지를 감싼 채 대광보전의 정면이 아닌 동쪽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후불화(後佛畵, 불상 뒤 벽에 그려진 불화)로는 영산회상도가 갖추어져 있다. 대웅보전은 현재 보수중이어서 내부의 자세한 형상은 알 수가 없는데 산경사면에 1.5m높이의 기단을 조성하고 정면5칸 측면 4칸인 다포팔작(팔작 지붕은 전통 건축물의 지붕 형태의 하나다)의 중층건물이다.

사찰 입구주변의 유적 중 중심을 이루는 것은 영산전인데 이 건물은 조선전기의 건축물로 영산전의 현판은 세조가 손수 쓴 것으로 전해진다. 영산전 내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하고 좌우에 본존보다 작은 석존불을 모시고 있다.

국사당(國師當, 사찰의 큰 스승들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건물)에는 자강율사, 보조국사, 범일국사, 도전국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데 우측의 벽면에는 태화산 산신이 모셔져 있기도 한데 이 영정들은 최근에 이뤄진 것이라 한다. 기타 건축물로서는 천왕문과 해탈문 그리고 여성루가 있는데 문에는 사천왕상 및 금강역사상이 배치돼 있고 여성루는 강당(스님들이 공부하는 곳)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극락교는 마곡사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이채를 띤다. 큰 하천을 사이에 두고 마곡사는 북쪽과 남쪽에 건물이 나누어 배치돼 있다. 대규모의 절에는 장식용으로 조그만한 다리를 만들어 놓은 경우는 간혹 있다. 그러나 절터가 하천으로 나뉘어져 왕래를 위한 목적으로 다리가 놓인 것은 매우 드문 예다.

극락교를 지나 오른쪽에 보면 범종루가 있다. 범종루에는 항상 4가지 악기가 있다. 범종과 북(법고), 목어와 운판이 그것이다. 가장 먼저 물 속의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로 목어를 울린다. 그리고 하늘의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로 운판을 가장 마지막에 울린다.

북(법고)은 소의 목 가죽을 이용하여 만든다고 하는데 소는 땅 위 동물이므로 땅의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소의 목 가죽만으로 그 큰 북을 만든다고 하니 북 하나를 만들기 위해 소 몇 마리가 필요할 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범종은 지옥까지 포함한 우주의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로 오전에는 28번, 밤에는 33번을 친다. 종의 윗 부분에는 ‘음통’이 있다. 난로의 환기통과 비슷하게 생겼다.

음통은 종을 쳤을 때 쇠 부서지는 소리를 없애주고 소리가 멀리 퍼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그리고 종 아래는 구멍이 크게 뚫려 있는데, 이는 종을 쳤을 때 진동에 의해 바닥이 깨지는 것을 방지하고 종소리가 오래 머물며 멀리 퍼지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

마곡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며 우리민족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백범 김구(1876-1949)선생이 1896년 명성황후 민씨 시해에 대한 분노로 안악군 치하포에서 일본군 특무장교를 살해한 후 은거하여 도를 닦던 유서 깊은 곳이다. 김구는 조국광복 후 마곡사를 찾아 과거를 회상하며 향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마곡사는 한 번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머물다 갈 만한 곳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