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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시대] 아이폰 ‘에어드롭’ 기능이 가져온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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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시대] 아이폰 ‘에어드롭’ 기능이 가져온 명암
  • 이유나 기자
  • 승인 2019.07.06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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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이유나 기자)

에어드롭 화면
에어드롭 화면

 

출근길 9호선 급행 지하철에서 앉아 가던 중, 휴대폰 화면에 웬 이미지가 날아들었다. 만원 지하철 안에서 고통 받으며 서서 가던 누군가가 진심 반, 농담 반으로 보내온 ‘짤방’엔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가운데 “내려봐. 내가 좀 앉아야겠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귀엽다고 생각하는 찰나, 어디선가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이미지를 받은 모양이었다. 같은 지하철 칸 안에 있던 승객들 중 그 사진을 받은 사람들이 몇몇 더 있었을 것이다. 그 안에 있던 우리는 모두 동일한 즐거움을 공유했다.

‘에어드롭’ 기능을 지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사용하다 보면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에어드롭은 애플 기기로만 사용할 수 있는 무선 통신 파일 공유 시스템으로, 사진, 동영상, 위치 정보 등을 다른 애플 장치로 전송할 수 있는 기능을 뜻한다. SNS의 밀려드는 이미지들과 광고성 콘텐츠로 피곤을 가중시키는 공유와는 달리, 일상적인 매력이 있고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폰 유저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다.

애플 에어드롭의 사용 방법은 이러하다. 데이터 공유 버튼을 누르면 에어드롭이 가능한 장치 목록이 뜨고, 수신 받을 장치가 파일 수락 여부에 응하면 데이터가 즉시 전송된다. 에어드롭 기능을 통해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들에게도 내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고, 서로 모르는 사이더라도 반경 9m 이내의 불특정 다수 애플 유저들에게 전송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유저들은 에어드롭을 이용해 오늘의 기분이나 상태를 공유하기도 한다. 또한 힐링이 되는 동물 사진이나 유머성 이미지, 직장인 공감 이미지 등이 오가며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즐거움을 나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에어드롭을 악용하는 사례가 잦아지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지하철을 비롯한 공공장소에서 다수의 아이폰 유저들에게 음란물을 유포하는 가해자들이 많아지면서 또 하나의 디지털 성범죄가 탄생한 것이다. 물론 데이터를 받을 때 미리보기 기능으로 수신을 거절할 순 있지만, 이미 데이터의 일부 혹은 전체가 노출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불쾌함을 면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에어드롭을 이용한 신종 성범죄를 처벌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가능성 0%에 수렴할 것이다. 이 경우 음란물 유포 행위로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해당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으나, 와이파이와 블루투스를 이용하는 기능이기에 발신인을 찾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에어드롭 발신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애플은 지난해 1월 공식 사이트에 올라온 “에어드롭 발신인을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에어드롭 로그를 재검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도의 답변으로 일축했다. 에어드롭이라는 기능은 만들었으나, 이로 인한 사회적인 여파에 대비하는 대책은 만들어놓지 않은 것이다. 

최근 일본 여행 도중 ‘혐한’ 우익 세력들로부터 한국과 한국인을 모욕하는 이미지를 에어드롭을 통해 받았다는 후기들이 속속 올라와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 외에도 자신의 정치색을 선전하기 위해 불쾌감을 조성하는 이미지들이 지금 이순간에도 적잖이 전송되고 있다. 에어드롭 기능이 성범죄를 넘어 다양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아이폰 유저들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에어드롭 기능 OFF 뿐인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 어떤 불쾌함에도 끄떡없는 강철 같은 마인드를 갖고 있다면 좋으련만, 그 모든 스트레스를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에어드롭 기능이 양산하는 무수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근 구글 안드로이드에서도 에어드롭과 비슷한 ‘페스트 쉐어(Fast Share)’라는 새로운 기능을 테스트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해당 기능은 안드로이드Q 정식 출시와 함께 공개될 것으로 전망되며, 블루투스, 와이파이, 위치 서비스를 이용해 가까운 곳에 있는 사용자와 문서, 사진, 동영상 등 다양한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애플 유저들이 누려온 즐거움을 안드로이드 유저들도 함께 즐길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만, 구글에게 바라는 점이 하나 있다면 지금 이 시간에도 범람하는 피해자들을 위해 확고한 대책을 마련해놓는 것 아닐까. 물론, 우리 모두 발전하는 기술에 뒤처지지 않는 도덕의식과 시민의식을 함양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사진=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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