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은 패키지여행을 싫어해? 20대인 기자가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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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은 패키지여행을 싫어해? 20대인 기자가 적극 추천합니다
  • 이유나 기자
  • 승인 2019.08.11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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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이유나 기자)

시간이 널널했던 지난해 여름, 엄마가 내게 동유럽 여행을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장엄한 오스트리아의 자연경관, 까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반짝이는 부다페스트의 야경, 첨예한 첨탑을 드높이며 기세등등하게 서있는 독일의 성들... 꿈에 그리던 동유럽 여행 아니던가. 당연히 오케이를 외친 나는 항공권부터 여행 일정까지 준비할 게 많겠구나 싶으면서도 기쁨을 주체 못하고 있었다. 그 찰나, 엄마가 다시 전화를 걸어와 내것까지 다예약했다고 말했다. 무슨 말씀이시냐 물었더니, 엄마는 동유럽 5개국 910일 패키지 여행을 예약했다며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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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체스키크룸로프의 전경

 

20대 중반인 나와 50대 중반인 엄마는 여행도 가기 전부터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패키지 여행이 뭐 어떻냐는 입장이었고, 나는 더 싸고 재밌게 여행할 수 있는데 왜 패키지를 예약했냐고 불만을 터트렸다. 2030 세대들은 패키지 여행을 선호하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부모님 세대들보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활발히 할 수 있고 정보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보다 경제적인 자유여행을 선호한다. 하지만 여러 차례 패키지 여행을 해온 엄마는 딸인 나에게도 당신이 만족해온 여행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미 엎질러진 거 어쩌겠는가. 패키지 여행이란 걸 한번 시도해보기로 마음먹은 나는 군소리는 더는 안하기로 하고 여행날짜만 기다렸다.

엄마와 나는 725일 오전 인천공항으로 출국해 뮌헨 공항으로 현지 시간 25일 오후 시간대에 도착했다. 일정은 독일,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체코 5개국을 돌고 다시 독일로 돌아와 출국하는 순서였다. 함께 여행하게 될 인원은 20여명. 9일 동안 여행을 함께 할 이들과 처음으로 만난 건 독일 뮌헨 공항에 착륙한 후였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한자리에 모인 우리는 서로 자기소개를 했고, 거기서 20대는 오로지 나뿐이었다. 부산에서 온 중년 부부, 사돈지간끼리 여행 온 중년부부 두쌍, 40대 주부와 중학생 아들, 또 다른 주부와 미성년자 삼남매, 초등학교 선생님 두분, 그리고 우리 엄마와 나였다.

 

엄마랑 나, 오스트리아에서
 엄마랑 나, 오스트리아 쉔부른 궁전 앞에서

 

단 둘이라면 분명히 싸웠을텐데...

엄마와 나는 어디 나가기라도 하면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기 일쑤였다. 나는 엄마를 이해 못했고 엄마는 나를 이해 못해서 발생하는 마찰이 잦았다. 하지만 패키지 여행에서는 어쩐지 덜(?) 싸웠다.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우리 주변을 감돌았으며, 사이좋은 모녀지간처럼 지냈다이전에도 엄마와 태국여행을 간 적 있는데 대부분 이동하는 과정이나 밥을 먹는 과정에서 무지막지하게 싸웠던 기억이 난다. 지하철을 타거나 택시를 잡을 때마다 엄마는 내게 온갖 짜증을 냈고, 나도 짜증으로 맞받아치면서 불같이 싸워댔다. 음식점을 가기 전에도 내가 이게 먹고 싶다고 하면 엄마는 그건 비싸네, 별로네 해대서 기껏 조사를 해온 나를 탄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패키지 여행은 항상 전용 버스로 이동하고 식당도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엄마의 짜증을 자아낼 요소가 적었다. 물론 음식이 맛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불만을 터트릴 대상이 가족이 아닌 여행사다 보니 서로에게 상처 줄 일은 없었던 셈이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가족 여행일 경우 패키지 여행이 주는 엄청난 장점을 맞닥트리는 동시에, 그간 엄마와 나 사이에 도사리고 있던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동안 고생하며 엄마와 자유여행을 해오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가면서 마치 바보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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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까를로비바리의 전경

아는 것이야말로 즐거움!

패키지 여행은 아무런 공부 없이 가기만 해도 자연스레 습득되는 역사적 지식들이 많았다. 인천공항에서부터 우리를 인솔해온 전문 가이드분 외에도 각 국마다 현지 가이드들이 따로 있었는데, 이분들의 활약이 가히 대단했다. 현지에서 거주하고 여행지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이분들 덕에 풍부한 설명을 들어볼 수 있었다. 자유여행을 계획했더라면 공부하는 것조차 귀찮았을 모든 역사와 이야기거리를 모두 전해 들으면서, 관광을 하는 동시에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것이 얼마나 큰 메리트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특히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가이드 분이 재치 있고 구수한 말투를 구사하며 관광객들을 휘어잡았는데 어머니 아버지들이 아주 배꼽을 잡고 웃어대셨다. 방콕에서 아무런 설명 없이 엄마를 짜뚜짝 시장에나 데려가던 과거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잊지 못할 그 순간을 함께 한 잊지 못할 사람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낯설어 하던 내가 그들과 차츰 대화를 나누며 안면을 트게 되고, 여행 막바지에는 꽤 친해져서 단톡방까지 꾸리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함께 외지로 훌쩍 여행을 함께 떠나온 우리는 나이 불문 세대 불문, 처음 만난 날부터 바짝 붙어 다니며 서로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무겁고 비싼 장비를 들고 다니면서 유럽의 곳곳을 담아내던 중년의 사진작가님이다. 아름다운 아내 분을 열심히 찍으시던 그분은 나와 엄마의 사진도 기꺼이 찍어주셨고, 덕분에 고퀄리티의 인생샷을 건질 수 있었다.

 

독일 숙소 근처의 화덕피자집에서
독일 숙소 근처의 화덕피자집에서

패키지 여행의 가장 큰 기쁨은 바로 사람이었다. 여행이 끝난 이후에도 연락하고 지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함께 하는 그 순간만큼은 같은 곳에서 왔다는 유대감으로 똘똘 뭉쳤더랬다. 맛없는 호텔의 저녁식사는 건너뛰고, 여럿이 모여 찾아간 호텔 근처의 화덕 피자집. 그곳에서 깔깔대며 밤새도록 대화를 나눴던 그 시간들을 나는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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