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라이프] 간헐적 단기 배낭 여행자, 그의 ‘둘이 아닌 죄’
상태바
[싱글 라이프] 간헐적 단기 배낭 여행자, 그의 ‘둘이 아닌 죄’
  • 이현이 기자
  • 승인 2019.08.16 17: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이현이 기자)

‘배낭여행’은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 1순위에 있을 법한 꿈같은 바램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된 후, 며칠간의 여름휴가와 눈치 보며 쓰는 연차가 전부인 직장인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이럴줄 알았으면 대학때 배낭여행 한번 다녀오는건데’.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후회를 해봤을 것이다. 더욱이 오랜만에 만난 선배나 친인척들은 “젊을 때 여행 다녀. 늙으면 가고 싶어도 못가”라며 겨우 욱여놨던 후회를 다시 꺼내도록 만들기도 한다.

기자 또한 ‘언젠가는 꼭 가고 말 것’이라며 배낭여행을 버킷리스트 1번에 올려놓고 살아간다. 그 언제가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이 또한 하나의 희망을 품고 사는 거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그러던 중 기자가 만난 박정민(42)씨는 배낭여행에 목말라있는 기자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간헐적 단기 배낭 여행자다.

정민씨가 처음 배낭여행을 떠난 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다. 대학교 3학년인 그가 배낭여행을 처음 떠난 곳은 중국이다. 같은 대학 사학과 선배가 계획한 배낭여행에 별 생각 없이 따라나선 정민씨는 혹독한 ‘배낭여행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배낭여행이니까”

‘먹고, 자고, 이동수단까지 이렇게 최악일 수 있을까?’ 불만이 많았던 정민씨에게 선배는 매번 이렇게 말했다. “배낭여행이니까.”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여행경비는 최소 금액으로 지출해야 했고, 버스로 이동하면 1시간인 거리를 반나절은 족히 걸어 움직여야 했다. 중국에서 먹고 싶던 베이징덕은 식당 창문너머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매일 볶음밥 혹은 국수가 주 메뉴였다.

잠은 우리돈으로 하루 만원도 안되는 숙소에서 침낭을 펴고 자야 했다. 물론 난방이란 개념이 없는, 문과 지붕만 있는 실내일 뿐이었기에 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다. 12월의 매서운 한기는 침낭 안 까지 파고들었고, 웅크린 자세로 새벽에 눈을 뜨는 일이 많았다.

한달여의 고달픈(?) 배낭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온 날, 무슨일인지 정민씨는 곧장 다른 여행지를 찾아보게 됐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또 다시 배낭을 싸고자 하는 그 심리는 무엇인지 본인조차 알 수 없었다.

정민씨의 배낭여행은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계속됐다. 직장은 배낭여행을 위한 경비를 충족시키기 위한 곳이고, 월급은 최소 생활비를 제외하고 모두 여행적금으로 들어갔다. 1년이 모아지면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들고 배낭을 들었다.

정민씨는 그렇게 배낭여행을 이어갔고, 티베트, 네팔, 필리핀, 일본, 이탈리아, 체코, 러시아 등 여러 나라를 방문했다.

그러던 정민씨가 국내 여행에 관심을 돌렸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들어간 작은 섬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혼자 책을 보고 등산을 하고 바다를 거닐었다. 아름다운 섬의 자태에 당분간은 여행지 선택에 해외를 배제하기로 했다.

정민씨는 호텔이나 리조트 등에 머물지 않는다. 이 섬에서도 제일 저렴한 민박을 선택, 노년의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주인 할머니가 ‘왜 혼자 왔냐’는 질문을 던졌다.

왜 혼자 여행을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던 정민씨는 ‘혼자가 자유롭고 좋다’는 결론을 내렸고, 답변을 했다.

답변을 들은 주인 할머니는 “결혼해서 짝이랑 같이 다녀야지. 혼자 온 사람은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아서 손님으로 받기가 두려워. 아무래도 바다가 있으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순간 죄인이 된 듯한 정민씨는 더 이상의 말을 잇지 않았다.

정민씨는 많은 나라를 돌아다녀봤지만, ‘왜 혼자왔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다. 그리고 혼자 하는 여행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짝’의 의미를 알기에 미혼인 정민씨는 더욱 난처했다.

우리사회는 ‘나이가 차면’ 당연히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고 살아야 한다는 관념에 빠져있다. 조금씩 그 단단한 껍질이 깨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싱글들이 느껴지는 사회는 아직도 그 자리다.

당연하다는 것은 없다. 특히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결혼의 유무가 누군가에겐 호기심 거리가 되는 사회 분위기는 정민씨를 다시 해외로 나가게 했다.

그리고 정민씨는 말했다. “혼자여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사진=시사캐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