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버거운 우리 모두의 이야기 ‘프란시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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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버거운 우리 모두의 이야기 ‘프란시스 하’
  • 이유나 기자
  • 승인 2019.08.18 0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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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미디어 속 Single Ladies

(시사캐스트, SISACAST= 이유나 기자)

 

누구나 취업 준비를 하면서 한번쯤 이런 참담한 생각을 해봤을 거다. 남들은 다 취직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아직 제자리걸음일까? 그 무기력한 시기에 이 영화를 만났다. 27살의 흙수저 뉴요커 프란시스의 인생이 꼬이는 한때를 다룬 영화 프란시스 하. 꿈이 있지만, 각박한 상황에 이리저리 치이며 버둥대고, 결국엔 현실과 타협하는 한 여성의 모습에 묘하게 내 스스로가 겹쳐져 보인다.

뉴욕에서 댄서 견습생으로 생활하고 있는 프란시스는 절친한 친구 소피와 동거를 하고 있다. 어느날 소피가 독립을 선언하고, 혼자서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없게 된 프란시스는 다른 동거인들을 찾아 소피와 떨어져 살게 된다. 그 사이 소피와는 자연스레 관계가 소원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극단에서 약속됐던 공연마저 취소돼 수입원이 사라지게 됐다. 산 넘어 산이다. 도무지 뉴욕에서 생활하는 게 어려워진 프란시스는 새크라멘토의 부모님 집으로 향한다. 집에서 연말을 보낸 뒤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빈털터리인 그녀는 동료 댄서의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신세를 지게 된다.

 

극중 프란시스를 가장 많이 동요시킨 것은 바로 친구 소피의 독립 선언이다. 친구와 계속 살고 싶은 마음에 동거하자는 남자친구와 아쉬움 없이 헤어지던 프란시스의 모습을 미루어보면 그럴만도 하다. 소피는 프란시스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였고, 그렇기에 소피의 독자적인 행동으로 인한 배신감을 도통 떨쳐내기 힘들어한다. 이렇게 프란시스와 소피의 관계가 변질되는 모양새는 20대 또래들의 공감을 가장 불러일으키는 대목이 아니었을까. 매일같이 붙어 다니고, 서로의 일상을 서슴없이 나누던 친구와 언제 이렇게 멀어지게 된 건지 우리 모두가 궁금하다. 여전히 친구이지만, 친근함은 예전 같지 않고, 심지어 경계심까지 서리게 되는 이 모순적인 관계.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친구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모든 20대가 비로소 어른이 되며 찾아오는 하나의 성장통인 셈이다.

프란시스는 마치 27살의 몸에 갇힌 17살 같은 여성이다. 자신과 잘 통했던 유일한 친구와 멀어지자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은 물론, 미래가 흐릿해져도 오히려 막연히 구는 모습은 다소 한심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녀는 댄서 일 대신 제안 받은 사무직을 단박에 거절하기도 하고, 없는 살림에 빚까지 내서 파리로 훌쩍 여행을 가기도 한다. 꿈의 간절함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녀의 행동들을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꿈을 믿고 기회만 기다리는 프란시스의 행동에서 무모함만 엿보였기 때문이다.

 

제 직업이요? 설명하기 복잡해요. 진짜 하고 싶은 일이긴 한데 진짜로 하고 있진 않거든요.”

지낼 곳이 없어 같은 극단에서 일했던 댄서 동료의 집에서 신세를 지며 눈칫밥을 먹던 시절, 잔뜩 주눅 든 프란시스가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저녁 식사에서 한 말이다. 프란시스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속내로는 쥐구멍으로 숨어 들어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많이 쓰이는 단어 공감성 수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창피를 당했을 때, 자신도 마치 그 상황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수치스러운 감정을 느낄 때를 표현하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프란시스 하는 무척 괴로운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낯선 사람들 틈바구니 사이에서 분위기에 맞지 않게 튀어나오는 프란시스의 과장된 허풍과 조크는 보고 있는 나에게도 그 수치감을 생생히 전달하곤 한다. 스스로의 초라함을 어떻게든 가리고 싶은 그 암담하고 절박한 순간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뒤죽박죽한 자신의 머릿속을 생중계 하듯 고삐 풀린 것처럼 연신 떠벌대고 마는 이유. 타인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되는 민망한 순간들. 잘 풀렸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돼 결국 새크라멘토나 파리로 도피하는 그녀의 모습들은 딱 우리들의 마음을 무너트리기 충분하다.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직업도 없는 프란시스의 고달픈 인생에 자꾸만 연민과 애정이 가는 이유는 외면하고 싶은 우리의 면면들을 그녀에게서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배우로서, 또 감독으로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그레타 거윅이 공동으로 각본 집필에 참여한 것은 물론 프란시스 역을 맡아 20대 취준생들의 자화상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영화의 시나리오는 노아 바움백 감독과 틈틈이 나눈 대화로부터 스토리를 발전시키는 식으로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다. 그 과정에서 그레타 거윅은 발레를 포기했던 자신의 과거 역시 녹여냈다. 영화는 20대의 뉴요커로 프란시스를 특정하고 있지만, 그녀의 삶은 현재를 지나고 있는 20대 여성들의 보편적인 인생과 닮아있다.

프란시스는 종내에는 현실과 타협하지만, 종종 자신을 위기로 몰아넣던 무주택 생활을 청산하며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를 주는 영화는 아니더라도 프란시스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씩씩하기만 하다. 꿈이 빗나간 우리들도 찬란할 수 있기를 바라며, 프란시스에게 찾아온 그녀의 새로운 삶을 응원해본다.

사진='프란시스 하'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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