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9:51 (수)
[Journey의 싱글라이프-⓶] 사랑, 그 부자연스러운 자연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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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의 싱글라이프-⓶] 사랑, 그 부자연스러운 자연스러움
  • Journey
  • 승인 2020.02.27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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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칼럼니스트 Journy)

 

@픽사베이
@픽사베이

나는 지인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다른 테이블에 앉은 전 남자친구를 마주쳤다. 그는 눈빛 하나 바뀌지 않고 연인임이 확실해 보이는 여인과 행복한 얼굴로 나를 지나쳤다.

그는 한때 나와 뜨거운 사이였지만, 항상 석연치 않은 변명들로 우린 어영부영 헤어졌다. 항상 여자들에게 연락이 왔고, 시간 단위로 바빴다. 어쩌면 나와 연애할 때 여러 여자들을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확신이 거의 90%이상, 강렬하게 내 머리를 스쳐갔다.

왠지 허탈한 마음에 영혼이 털린 채, 지인들과의 저녁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에서 나오니 어느덧 시간은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을 보내고 나는 바람이나 쏘일까하는 마음으로 근처를 걷다가 조그만 Bar 앞에 멈춰 섰다.

가게 이름은 ‘TIMELESS’.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즐비한 압구정동에 걸맞은 이름이다. 게다가 실내는 밖에서는 보이지도 않았고 Bar 뒤쪽의 술병들을 비추고 있는 조명만 멀리서 희미하게 겨우 보일 정도였다.

이상하게 계속 찝찝한 기분, 동시에 갈증과 호기심으로 나는 Bar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어두컴컴한 바에 한줄기 빛이 천장에서 하이라이트 조명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그 빛이 비치는 곳에는 핑크색의 예쁜 칵테일 한잔이 유리 돔 속에 덮여있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정체불명의 칵테일을 무심히 지나쳐 술병이 가득 쌓여있는 Bar로 다가갔다.

하얀 셔츠에 보우타이를 맨, 전형적인 바텐더 의상을 입고 있는 바텐더 2명이 열심히 얼음을 깎고 있었다. 나의 선택이 올바르기를 바라며 Bar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바텐더들을 흘깃 쳐다보았다. 무표정한 바텐더 한 명이 다가왔다.

발베니 12년 한잔 주시겠어요?”

내 주문을 듣고 있는 이 바텐더, 왠지 말도 없고 표정도 반응도 별로 없었다.

계속 흘깃거리며 그를 관찰했다. 이상하게 눈길이 자꾸 가는데 키가 크거나 잘생긴 외모도 아니고 유난히 슬퍼보이는 눈이 인상깊다.

흑갈색의 곱슬머리와 같은 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이 슬픈 눈의 바텐더는 매우 정갈한 동작으로 나의 위스키를 준비해주었다.

사실 오늘 나는 남들에게 눈에 띄고 싶지 않은 기분인데, Bar는 좁은 데다가 바텐더와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마음껏 한숨을 쉴 수도 없었다.

위스키 잔을 가득 채우고 있는 동그랗고 커다란 얼음 하나를 계속 굴리며 생각에 잠긴다. 아니 멍하니 초점 없이 한탄에 빠진다.


바보같이 왜 그 남자한테 이렇게 신경을 쓰고 있는 거야.’

그때 바텐더가 말을 걸었다.

저기 손님.”

얼음을 굴리기만 했지 내 눈동자는 초점이 없었고, 커다란 얼음 옆으로 위스키가 넘쳐 내 손에도 흐르고 있었다.

, 죄송해요. 제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손부터 닦으시죠. 다시 드리겠습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슬픈 눈의 바텐더가 웃는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옅은 미소를 띠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에 그가 다시 준 위스키를 벌컥대고 마셨다. 목이 타 들어가는 느낌이 마치 고통과 환희가 동시에 느껴지는 기분이랄까?

그에게 아예 위스키 한 병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피스타치오 하나를 안주 삼아 연신 위스키를 마셔댔다. 세 잔 정도를 들이켜니 이제야 몽롱한 기분이 든다. 그가 조용히 얼음물을 가져다준다. 취기가 살짝 올라오고 있는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런데요, 입구에 있는 칵테일은 뭐예요? 왜 돔 안에 갇혀 있어요?”

그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슬픈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건 의미가 있는 칵테일인데요.”

말을 잇지 못하는 그에게 더욱 용기를 내어 다시 물었다.

무슨 의미예요? 저도 마셔볼래요.”

죄송하지만 그 칵테일은 팔지 않습니다.”

왜요?”

말을 뱉자마자 왠지 그에게 미안해졌다. 사연이 있을 텐데 처음 본 사람에게 너무 당돌하게 따지고 묻는 것 같아서이다. 미안해하는 표정을 읽은 그가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와 한숨을 돌리더니 말했다.

"저 칵테일은 제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만들었던 건데 우린 1년 전에 헤어졌어요. 하지만 언젠가 그녀가 다시 이곳에 돌아오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저 칵테일을 볼 수 있겠죠. 그 순간을 위한 겁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을 떠난 그녀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칵테일을 만들었다. 행여나 먼지라도 들어갈까 유리 돔으로 곱게 덮은 후, 그녀가 잘 볼 수 있도록 조명을 쏘여놓은 것이다.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그를 보며 나는 한동안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1년이라니…… 1년 동안 한 여자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어제도, 오늘도 저 칵테일을 만들었다니.

용기를 내어 다시 그에게 물었다.

저 칵테일 이름이 뭐예요?”

그는 갑자기 어둠 속에서 놀랄 만큼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HER!”

맙소사! 이사람, 불과 한 시간 전 마주친 나의 엑스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다. 전혀 다른 방식의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여러 여자를 이리저리 만나려고 발버둥치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간직한, 오롯이 매일 한 여자만 그리워하는 남자도 있는 것이다.


사랑이 가지는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과거에 온 마음을 불태워 사랑해본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상대에게 주는 사랑보다 돌아오는 사랑이 작을지라도, 아니 돌아오지 않을지라도, 그 안타까움과 목마름이 때로는 여러 해가 지속되더라도, 내가 아낌없이 준 사랑이 언젠가 세상을 돌고 돌아 비로소 어느 타이밍에 더욱 단단해진 사랑으로 돌아올 것을, 지난 슬픈 시간들을 한 순간에 무색하게 할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나는 먼저 사랑을 주는 사람이다.

상대가 주는 사랑이 부족하면 나는 어느새 그 틈도 넘치는 내 사랑으로 채우곤 한다. 언젠가 상대가 그의 삶의 시간과 경험을 통해 이 부자연스러운 것들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게 될 때까지 나는 계속 넘치는 사랑을 줄 것이다.

내가 천칭자리인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사람마다의 사랑의 질량이 다른 이 세상에서 내 사랑은 늘 균형을 잡아야 하니까.

Journy의 싱글라이프.
Journy의 싱글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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