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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문화TALK] 박노해 사진전: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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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문화TALK] 박노해 사진전: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0.03.28 1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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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이현주 기자)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면, 일상은 작품이 된다. 사진은 때로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아낸다.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 나아가 작가의 관심사와 인생관이 묻어난다.

사진 한 장에 담긴 모든 의미를 꿰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 의미를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지적 기자 시점: 사진을 통해 타인의 삶을 엿보다]

서촌 골목에 위치한 라 카페 갤러리, 지난 1월15일 이곳에서 17번째 전시가 개최됐다.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는 결핍과 고난 속에서도 단순한 살림으로 풍요롭고, 단단한 내면으로 희망차고, 단아한 기품으로 눈부시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37점의 흑백사진과 이야기로 펼쳐나간다.

"가난이 나를 단순하게 만들었다. 고난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고독이 나를 단아하게 만들었다. 그것들은 나를 죽이지 못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들은 나를 더 푸르게 하였다. 가면 갈수록 나 살아있다.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박노해

박노해 시인.
박노해 시인.

박노해 시인은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 억압받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시집 <노동의 새벽>을 발간했다. 노동 현장의 생생한 체험이 담긴 그의 시집은 한국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고, 젊은 대학생들을 노동 현장으로 이끌었다. 당시 군사독재 정권이 이 시집을 금지도서를 지정해 탄압했음에도, 100만 부 가량 발간됐다. 시집이 널리 알려짐과 동시에 박노해 시인은 '얼굴 없는 시인'으로 통하게 됐다.

투명한 시각으로 사회문제를 꿰뚫며 개입하기를 서슴지 않은 그에게 숱한 풍파로 인한 인생의 굴곡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 2000년 박노해 시인은 권력의 길을 뒤로 한 채 비영리 사회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했다. 이후 이라크 전쟁터에서 평화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전 세계 분쟁현장과 빈곤지역,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마을을 거닐며 진실을 기록했다. 그는 시인으로서, 또 사진가로서, 지구시대 유랑가로서 살아왔다. 이러한 경험이 오늘날 서촌 갤러리를 '단단하게 단순하게 단아하게' 채웠다.

라 갤러리 내 '박노해 사진전'. 지난 20년간 중동·아프리카·중남미·아시아 등 가난과 분쟁현장을 걸어온 박노해 시인의 순례길을 따라 걷는 시간이다.

흑백 필름 카메라로 촬영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인화한 사진, 그가 직접 쓴 한 편의 시와 같은 캡션, 현지에서 수집한 월드뮤직이 조화를 이루며 시공간의 가치를 높인다.

필자를 포함한 몇몇 이들은 예술작품을 접할 때 위축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작품의 깊이와 내포된 의미를 깨닫지 못할 것이라는, 혹여 자신의 무지가 드러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하지만 박노해 사진전에서는 달랐다. 작품 해석에 대한 부담을 갖기도 전에, 사진 속 상황에 빠져들었다. '어떤 상황이었을까, 불안정한 환경에서 왜 아이들은 저토록 해맑게 웃고 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쯤 박노해 시인이 쓴 캡션에 눈을 돌리게 된다. 단순한 설명문이 아닌, 감정이 녹아든 글귀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작품을 보게 되면  작품에 담긴 의미가 한층 확장되어 다가온다.

<필자의 One-pick 작품: 그래도 아이들은 웃는다>

이란, 이라크, 터키, 시리아 등에 뿔뿔히 흩어져 있는 세계 최대의 유랑 민족인 쿠르드. 3,500만 명이 억압과 차별 속에 해방을 열망하며 살아간다.

'산으로 울며 떠난 언니 오빠는 소식도 알 수 없지만 총탄 자국이 난 폐교에서, 그래도 아이들은 웃는다. 너무 오래 울어온 탓에 쿠르드 아이들은 웃는다' -<그래도 아이들은 웃는다> 캡션 내용 中

37점의 작품, 단 한 점의 작품도 가볍지가 않다. 타인의 삶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박노해 시인은 사진전을 통해 세 가지 물음을 던진다.

"단순한가, 단단한가, 단아한가"

일도 물건도 삶도 사람도 그의 희망은 단순하고, 그의 믿음은 단단하며, 그의 사랑은 단아하다. 여러분은 어떠한가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내려줄 사진전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라 카페 갤러리에서 오는 6월28일까지 진행된다. 관람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매주 월 휴관)며, 무료 관람이다. 1층 카페와 연결돼 전시를 보고 휴식을 취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힐링 플레이스'라 할 수 있다.

[사진=시사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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