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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참사⓶] 제 2의 n번방, 정말 막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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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참사⓶] 제 2의 n번방, 정말 막을 수 있나요?
  • 최기훈 기자
  • 승인 2020.04.13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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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최기훈 기자)

대한민국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텔레그램 성 착취물 공유 대화방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죠. 공유 대화방의 일종인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의 신상은 성범죄 피의자 중 최초로 공개됐습니다. 핵심 범죄자가 검거됐고, 그의 얼굴까지 전국에 드러났지만 국민의 분노는 여전히 들끓고 있죠. ‘박사방’은 빙산의 일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대화방들을 ‘n번방’으로 통칭하고 있습니다. 이런 끔찍한 범죄가 어떻게 가능했고,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은 뭐가 있을지 고민이 시급합니다. ‘n번방 참사’ 시리즈 두 번째 편, 디지털 성범죄의 역사를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 주]


‘제 2의 n번방 참사’를 막기 위한 조처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검찰은 지난 3월 검사 등 21명 인원으로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습니다. 경찰은 ‘디지털성범죄 특별 수사본부’를 발족했죠. 문재인 대통령은 “총리실 중심의 부처·민간참여 TF팀을 구성하라”고 지시했고, 당·정은 아동·청소년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국회에선 여·야 가릴 것 없이 ‘n번방 방지법’을 발의하고 있습니다. 곧 20대 국회의 문이 닫히고 새롭게 국회가 구성돼도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21대 국회의원 역시 국민에게 민감한 이슈인 n번방 참사를 외면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이렇게 쏟아지는 대책이 효과를 볼 수 있을까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n번방 참사의 수법이 워낙 악질이라 기상천외한 신종 범죄 같지만, 사실 디지털 공간에서의 성 착취는 우리에게 낯선 일이 아닙니다. 과거에도 비슷한 범죄를 우리는 참 많이도 마주했죠. 당연히 개선책도 뒤따랐습니다.
 
대표적인 게 ‘소라넷’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부터 운영돼 2016년에야 폐쇄됐죠. 이곳 운영자들은 불법 촬영물 유포, 성폭행 모의 등 성폭력 범죄를 전시·조장하면서 수백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습니다. 폐쇄 당시 이 사이트의 회원 수는 100만명을 넘었을 정도로 규모가 컸습니다. 당시에도 국민들의 공분을 샀지만, 운영진 6명 중 검거된 이는 3명뿐이었습니다. 이중 주범만 징역 4년을 사는 데 그쳤죠. 100만명의 회원 대부분에게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2018년엔 ‘웹하드 카르텔’이 터졌습니다. 국내 웹하드 사이트에 불법 음란 영상물이 지속적으로 올라왔던 이유가 이때 드러났죠. 웹하드 업체들이 불법 음란물을 올리는 헤비 업로더를 조직적으로 관리했던 덕분입니다. 불법 영상물을 차단·삭제하는 업체를 동시에 운영하며 피해자를 기만한 웹하드 업체도 있었습니다.

합법적인 웹하드 업체가 성범죄 동영상 유통의 중심축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불법 영상물에 찍힌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까지 터졌는데도 그들은 불법 영상물의 업로드를 멈추지 않았을 정도로 악랄했죠.
 
당시에도 7개 정부 부처가 모여 ‘웹하드 카르텔 방지 대책’을 내놨습니다. 국회에선 ‘웹하드 카르텔 패키지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경찰도 집중단속을 벌였습니다. 업체 55곳, 운영자·업로더 759명이 적발됐죠. 하지만 적발된 759명 중 구속된 이는 25명뿐이었습니다. 웹하드 카르텔 패키지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도 못했죠.
 
지난해 말엔 ‘웰컴 투 비디오’ 사건으로 시끄러웠습니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이 해외 수사기관과 공조해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추적해 310명을 검거했습니다. 그중 한국인은 모두 220여명, 70%였습니다. 운영자 손모씨 역시 한국인이었죠.
 

악랄하기 짝이 없던 범죄였지만, 처벌은 솜방망이였습니다. 운영자 손씨는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는데 그쳤습니다. 1심(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에 비해 세진 게 그 정도입니다. 이용자 대부분은 초범으로 150만원에서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받았죠.

그 직후 ‘n번방 참사’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금도 디지털 성범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들 범죄의 수법은 제각각이지만 복잡하고 추적이 까다롭다는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지는 범죄라는 점에선 일맥상통합니다. 범죄자들은 나름의 법망 회피 수단을 갖고 있죠. 우리는 정말 이 사건을 근절할 방법을 찾지 못했던 걸까요.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 사건 자체를 금세 잊고 말았던 걸까요.
 
지금도 n번방 참사는 총선용 정쟁 도구로 쓰이고 있습니다. 야당에서 제기한 여권 인사의 ‘n번방 사건 연루 의혹’에 여권이 “음모에 불과하다”고 날을 세우고 있어서죠. 그사이 정작 중요한 n번방 해결 솔루션은 관심 밖으로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는 또 ‘제 2의 n번방’에 공분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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