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4 15:20 (목)
[n번방 참사④] “그는 악마가 아닌 비겁한 범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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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참사④] “그는 악마가 아닌 비겁한 범죄자였다”
  • 최기훈 기자
  • 승인 2020.05.01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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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최기훈 기자)

대한민국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텔레그램 성 착취물 공유 대화방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죠. 공유 대화방의 일종인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의 신상은 성범죄 피의자 중 최초로 공개됐습니다. 핵심 범죄자가 검거됐고, 그의 얼굴까지 전국에 드러났지만 국민의 분노는 여전히 들끓고 있죠. ‘박사방’은 빙산의 일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수많은 대화방들을 ‘n번방’으로 통칭하고 있습니다. 끔찍한 범죄가 어떻게 가능했고,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은 뭐가 있을지 고민이 시급합니다. ‘n번방 참사’ 시리즈 마지막 편, 범죄자의 서사를 조명해보겠습니다.[편집자 주]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마십시오. 범죄자에게 마이크를 쥐어주지 마십시오.”
 
지난 3월 자우림의 멤버 김윤아씨는 SNS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검찰로 향하기 전 서울 종로경찰서 포토라인에 모습을 드러낸 걸 겨냥한 것으로 보였는데요.
 
미성년자까지 착취한 범죄자를 공개해 사회적으로 경각심을 주자는 여론이 조주빈을 포토라인에 세우게 됐습니다. 마이크 앞에 선 조주빈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언론은 그의 발언을 1면에 실었고, 조주빈은 순식간에 ‘악마’가 됐습니다. 그리고 악마가 저지르는 일이 당연시되듯, 그의 범죄 행각엔 스토리가 덧붙여졌죠.
 

수많은 미디어가 그의 과거를 훑기 시작했습니다. “학점은 4.17이었고, 장학금을 받았다” “학보사 편집국장을 지냈는데, 성실하고 완벽주의를 추구했다” “조용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봉사활동도 열심히 했다”…. 과거 그의 행적에 대한 증언들이 쏟아졌고, 심지어는 조주빈의 정치 성향까지 논란이 됐죠.

하지만 조주빈은 악마가 아닌 사람입니다. 그리고 추악하고 비겁한 성범죄자일 뿐이죠. 김윤아씨의 지적처럼 범죄자 개인에 사건이 집중되면 부작용이 심각합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지를 파악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죠. 피해자가 얼마나 처참한 고통에 파묻히는지도 우리는 알 수가 없게 됩니다.
 
이런 실수를 우리는 수차례 저질렀습니다. 가깝게는 지난 2018년 말,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뒤흔든 범죄자의 잔혹한 칼부림에 우리는 공분했습니다. 당시에도 “젊은 알바생을 무참히 살해한 피의자가 우울증이나 심신미약 등을 이유로 감형을 받지 못하도록 처벌 규정을 강화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의 추천인은 100만명을 넘었죠.
 
범죄자 김성수의 얼굴도 공개됐습니다. 그리고 대중의 초점은 범죄자 개인에 맞춰졌죠. 가령 그의 목덜미에 있던 주먹만 한 문신(타투)에 스토리가 부여됐습니다. 문신 도안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두고도 여러 분석이 나왔습니다. 이처럼 가해자의 서사가 풀리기 시작하면 피해자와 재발 시스템의 공론화는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참 아쉬운 일입니다. 흥분이 사라진 자리엔 ‘피해자’만 남는다는 거죠. 해당 사건이 어떻게 해결됐는지, 또 유사사건을 막기 위한 대책은 만들어졌는지, 관심을 갖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 틈새에 또 범죄가 파고들고, 우리는 다시 반복적으로 분노합니다. n번방 참사도 비슷한 흐름을 보일 공산이 큽니다. 악마 조주빈을 비롯한 수많은 범죄자의 개인의 서사에만 관심을 쏟는다면 말입니다.

‘제 2의 n번방’을 막기 위해 우리는 뭘 해야 할까요. 일단 사회적 공분보다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꾸준한 담론을 만드는 게 중요해보입니다.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얘기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도 필요합니다. 국민의 관심과 참여만큼 효과적인 해법은 없습니다. 모든 변화는 작은 데서 시작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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