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캐스트, SISACAST= 최기훈 기자)
남들은 생각도 못한 아이템을 개발한다. 골목에 이내 소문이 퍼진다. 가게에 발 디딜 틈 없이 손님이 밀려든다. 미디어가 그리는 자영업자의 성공 신화다. 최근 부쩍 늘어난 ‘밀레니얼 세대’의 1인 가구가 보기엔 더없이 매력적이다. 대기업에 삼켜져 기계 부품처럼 사느니 ‘내가 원하는 걸 좇겠다’는 신념도 엿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미디어와는 전혀 딴판이다. 수많은 자영업자가 매출 절벽에 신음하고 있고, 폐업을 고민 중이다. 혹시 이 시장에 진출하기를 원한다면 진짜 현실을 들여다본 뒤에 시도해도 늦지 않다. 자영업의 민낯, 첫 번째 얘기다.
1997년 외환위기가 우리 경제에 할퀸 상처는 아팠다. 자르고 줄이고 무너지는 혹독한 구조조정이 벌어졌고, 극심한 취업난이 이어졌다. ‘IMF 퇴출’의 칼바람을 맞은 수많은 직장인은 자영업계로 떠밀렸다. 국내 자영업자 수는 지난 2002년 619만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코로나19 이후의 한국 사회도 비슷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체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3월 국내 사업체 종사자 수는 22만5000명이나 감소했다. 사업체 종사자 숫자가 전년 대비 줄어든 건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9년 6월 이후 처음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눈물을 머금고 직장을 나와도 살길이 마땅치 않다. 때문에 대부분의 실업·퇴직자들이 창업으로 생계를 모색한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18년 전국 소상공인 실태조사 시험조사’ 결과에 따르면 창업동기로 ‘창업 외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생계형)란 답변이 67.6%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통계는 자영업 시장의 어두운 면을 비추고 있었다. 이 시장은 극심한 경쟁으로 물든 레드오션이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중은 2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5.3%보다 약 10%포인트 높았다. 통계가 집계된 OECD 회원국 가운데 그리스(33.5%), 터키(32.0%), 멕시코(31.6%), 칠레(27.1%)에 이어 다섯번째로 자영업자가 많았다.
경쟁 심화로 대다수가 매출 부진의 늪에서 허덕인다. 통계청의 ‘2019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국 2인 이상 일반 가구의 사업소득은 89만2000원으로 전년 같은 분기 대비 2.2% 줄었다. 2018년 4분기부터 5분기 연속 감소했는데,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장이다.
2월부터 확산한 코로나19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관광·여행·여가 활동이 급격히 위축되고 각종 행사 취소가 잇따랐다. 여기에 일반 국민들의 정상적인 경제활동까지 위축하면서 자영업계가 고스란히 타격을 입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코로나19 환자 첫 발생 후 6주간 일평균 고객 감소율 65.8%나 됐다. 확진자 발생 전 1월 일평균 고객 수 대비 조사업체의 3월 일평균 고객 감소율은 34.1%였다.
언뜻 보기에 자영업은 문턱이 낮아 보이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중기부가 분석한 자영업자의 평균 창업비용은 1억1010만원 수준이었다. 본인 부담이 6420만원, 외부조달이 4590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영업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인건비·재료비는 계속 오르고 있고, 가맹비, 광고비, 배달대행료, 상가임대료, 공과금 등을 내야 한다. 이렇게 지출하는 비용은 연 평균 1억7154만원으로, 한 달에 1429만원이 넘는다. 자영업자가 손에 쥐는 돈은 거의 없다. 연 평균 매출액이 3600만원 미만인 자영업자가 28.5%에 달할 정도다.
이들 앞에는 또 다른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2018년 말 기준 자영업자 채무불이행자(연체 90일 이상)는 2만7917명으로 전체 자영업 대출자 194만6113명 중 1.43%를 차지했다. 자영업자 1만명 중 143명이 대출을 연체하고 있다는 뜻이다. 2017년 말의 1.32%와 비교해보면 채무불이행자 비율이 0.11%포인트 늘었다.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는 자영업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은 자영업의 신화가 아닌 민낯을 봐야 할 때다. 안타깝게도 불황의 그림자가 너무 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