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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의 싱글라이프-⓼] 코로나 사태, 미국에서 입국한 싱글녀의 Korea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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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의 싱글라이프-⓼] 코로나 사태, 미국에서 입국한 싱글녀의 Korean Life
  • Journey
  • 승인 2020.05.0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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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Journey)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유행' 세계지도 일러스트(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유행' 세계지도 일러스트(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미국 미네소타의 한 대학에서 연구원이자 조교수로 10년째 생활하고 있는 24년 지기 친구 녀석이 코로나 사태에 귀국을 해서 2주간 자가 격리를 마치고 나를 찾아왔다.

17살부터 20년 넘는 시간동안 이리도 질기게 만나고 있는 인연이 신기하기도 하고, 9년 만에 만나도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 서로 어색함조차 없다.

오랜만에 한국에 입국한 그녀는 연신 역시 한국이 최고야!”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4월 초에 한국에 입국하고 나니, 미국과는 다르게 한국의 모든 상점과 식당들이 왕성하게 운영되고 있었고 국민들은 질병관리본부에서 시키는 대로 마스크를 필수로 착용하며 생활 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단다. 내가 한입 더 거들어 한국의 버스에서는 한동안 마스크가 비치되어 있었다고 말해주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거듭 표현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미국 내에서는 국내선에서 승무원조차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고, 한국으로 귀국할 때 비로소 승무원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학생 중 한명은 미국에서 코로나 선별 검진을 받은 후 병원에서 연락이 없자, 계속 홀로 자가 격리 중이었는데, 한참이 지나 최근 병원에서 검진결과를 분실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함께 커피를 한잔 마시며 밀린 서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에서 싱글로 사는 것은 어떠니?”

 

그녀의 미국에서의 삶은 말 그대로 단순 그 자체, 눈뜨면 연구하고 가르치고 또다시 연구할 것을 준비하는 것. 인간관계로 보자면, 함께 일하거나 공부하는 이들 중에 간혹 연애를 하기도 했었는데, 연구원 직업 특성 상 사람들의 성향이 매우 개인적이고 보수적이며 심지어 이기적인 성향도 있어 연애건 친구건 학생이건, 깊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다.

 

난 미국에서는 밥을 전혀 먹지 않아!”

 

이 또한 충격이었다. 그래도 한국 사람인데.

사람의 적응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솔직히 한식을 잘 챙겨먹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미국 현지의 식습관이 그렇듯, 고기와 야채 위주의 식습관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섭취하는 탄수화물은 연구 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먹는 과자 정도? 처음 얼마동안은 향수 때문에 한식을 만들어도 먹고 사먹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식습관의 괴리감을 느끼며 한식의 냄새나 텍스추어가 점점 어색해졌단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한식을 멀리한 채로 오랜 타지 생활 중인 그녀에게 한국에 와서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이 뭐냐고 물었다. 바로 냉면과 오마카세('맡긴다'는 뜻의 일본어로, 손님이 요리사에게 메뉴 선택을 온전히 맡기고 요리사는 가장 신선한 식재료로 제철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한다.).

특히 평양냉면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고 한다. 하긴 평양냉면은 어느 나라에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한 맛이니. 또한 한국이 워낙 다이닝의 수준이 높다보니 아주 유명한 오마카세 전문점에 가서 제대로 된 일식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자가 격리로 인해 운동부족이라는 그녀와 짧은 등산을 마치고 필동에 있는 오랜 단골 냉면집으로 데려갔다. 그녀는 감탄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지금 누리고 있는 한국의 맛과 시간에 충분이 감격하고 즐기고 있었다.


행복이란 삶의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오늘을 후회 없이 누리는 것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나이 사십에도 아직 우린 열일곱 고등학생의 순수함을 간직한 채, 세상으로부터 때로는 상처받고 또 상처주면서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의 하루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는 미국에서는 한국을 잊은 채, 한국에 와서는 미국을 잊은 채, 지금 자신이 숨 쉬고 있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또한 불혹의 나이에 다다른 우리의 대화 주제는 더 이상 어린 시절 끊임없이 나누었던 연애나 일상이야기가 아니었다. 사실상 현재의 라이프스타일 가운데 배우자나 자녀, 연애의 대상마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해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 구분하고, 꿈을 향해 길고도 꾸준한 과정들을 인내해야 함을 인정한다.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에 대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인류의 상식과 인간의 도리가 기준이 되는 삶의 철학을 지향하며, 신앙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담담하게 표현할 줄 안다.

이렇듯 40년의 싱글라이프는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삶의 무게를 인내할 수 있는 힘과, 도전할 수 있는 용기의 크기를 키워주었다.


싱글라이프란?

라는 최대의 애증의 관계를 컨트롤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잘해주어도 기대감이 없고, 못해주어도 덜 미안한.

외롭지만 성숙하고 담담한 삶.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나의 싱글라이프 키워드는천천히 바르게이다.

이는 목표에 도달하는 속도가 조금 늦더라도 방향은 바르게 가자는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여전히 고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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