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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의 싱글라이프-⓽] 해방촌 싱글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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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의 싱글라이프-⓽] 해방촌 싱글라이프
  • Journey
  • 승인 2020.05.1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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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Journey)

댁이 어디세요?”

해방촌이요.”

그게 어디죠?”

...경리단길 맞은편... 그러니까 남산 소월길 아래...아니 그러니까 남산터널 옆인데... 이태원 근처에요.”


내가 사는 곳은 해방촌이다.

2020년 기준, 워낙 핫플레이스로 정평이 나있지만 그 이름이 여전히 어색한 세대들이 있다. 특히 40대 이상의 지인들의 말을 빌어보자면, 해방촌은 굳이 갈 일 없는 시끄러운 동네라고 인식되기도 한다.

한때 이태원, 용산 지역의 핫플레이스로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던 경리단길은 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점포들이 대부분 빠져나가면서 현재는 임대간판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행인도 거의 없는 황량한 지역이 되었다. 그 길 건너(구 미군부대 방향)가 바로 해방촌이다.

이 굉장한 핫플레이스는 주차장도 없고 발렛은 말할 것도 없으며, 그나마 한두개 있는 공영주차장은 아주 소수의 차량만이 주차가 가능하거나 주거자 전용이다.

해방촌(解放村, 영어: Haebangchon)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2가동의 대부분과 용산1가동의 일부가 포함되는 지역으로 용산고등학교의 동쪽, 남산타워의 남쪽, 곧 남산 밑의 언덕에 형성된 마을이다. 1945년 광복과 함께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또 북쪽에서 월남한 사람들,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온 사람들이 정착하게 되어 해방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해방촌 밑으로는 남산 2, 3호 터널이 지난다.[출처 :위키백과]

대체 젊은이들은 왜 이렇게 이동이 불편하고 낯선 지역을 찾아와 줄을 서고 소비하는 것일까?

그것은 해방촌 자체가 좋아서라기보다 해방촌라이프라는 유행이 지나가기 전에 자신도 유행의 일부가 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예약도 안 되는 비싼 삼겹살집에서 2시간 대기, 피자집에 최소 30명 이상 줄을 서서 겨우 하와이안 피자나 먹는 그런 경험들이 그들에게는 젊은 날의 삶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주거지로 왜 해방촌을 선택했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결혼을 하면 이렇게 벅적거리고 핫한 동네에서는 못살 것 같아서?

아무래도 신혼집은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에 자리 잡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내 인생의 마지막 싱글일지도 모르는 지금을, 현존하는 가장 에너지틱하고 자유로운 곳에서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방촌 싱글라이프를 본격적으로 공개하겠다. 내가 사는 다세대 주택의 아랫집에는 흑인이 한명(2F), 백인이 한명(2F). 그 아랫집에는 한국 여인(1F)이 한명. 우리는 하나의 건물 안에서 각자의 싱글라이프를 지낸다.

우리는 각자 모르는 사이지만 서로에 대해 약간의 라이프스타일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1층 여인은 온라인쇼핑 중독이다. 거의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로 도착한 택배 아니면 반품 택배가 쌓여있다. 2층 흑인남성은 20대 초반의 히피족이다. 레게머리에 자유로운 복장, 직업이 있을까 싶은데 매일 동일한 시간 즈음에 커다란 헤드셋을 쓰고 어디론가 열심히 간다. 2층 백인남성은 미국이나 호주 사람 같은데 그는 해질녘이면 내가 사는 3층의 계단을 지나 옥상(나름 루프탑)에 올라가 사색을 즐긴다,(때로는 옥상 빨랫줄에 열심히 빨래를 말리고 있기도 하다.) 아주 가끔 옥상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인사 한마디 못하고 은근슬쩍 자리를 떠버린다. 그는 아마도 혼자의 시간이 매우 중요한 듯하다.

그들에게 나는 아마도 커리어우먼 정도로 보일 수 있겠다 싶다. 매일 말끔히 차려입고 어딘가로 출근하는 모습을 보았을테니 말이다.

해방촌오거리 향수가게 사장님()은 나와 비슷한 또래인데 연애 같은 건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고, 나이키 운동화 사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다. 향수가게에 들어가면 100개는 족히 넘는 나이키 운동화가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지난주에는 스티브 잡스가 신었던 뉴발란스 운동화를 힘들게 구했다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하루 한 끼를 외식으로 정성스레 먹으며, 우리는 마주칠 때마다 서로에게 커피를 사준다. 어느 날 서로 빈속에 마주치기라도 하면 아무렇지 않게 식사 같이 하실래요?”라며 해방촌에서 가장 핫한 신흥시장에 들어가서 함께 식사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동친인가?(동친 : 동네친구의 약어)

향수가게 맞은편 커피가게 사장님은 향수가게 사장님보다 젊은 총각이다. 서로에게 커피 사주는 걸 좋아하는 향수가게 사장님과 나의 최대 수혜자라고나 할까? 겸손이 온 몸에 베어있는 선한 얼굴의 젊은 사장님은 우리가 주문한 커피를 양손에 들고 향수가게로 배달을 한다. 10초 밖에 안 걸려는 이 커피 배달이 왠지 더욱 정겹다.

동네에 핫플레이스 중에 루프탑이 유명한 카페 겸 바(Bar)가 있는데, 그곳은 나의 단골 장소이다. 잠 못 이루는 늦은 밤, 슬슬 걸어 서울 야경이 눈앞에 펼쳐진 Bar에 들어가면, 이미 친해진 싱글 바텐더가 환한 미소로 반겨준다. 어느 날은 위스키 한모금, 어느 날은 상큼한 칵테일 한잔, 어느 날은 동네의 싱글들이 모두 모여 병째로 마시며 수다를 떤다.

 

살면서 이런 시간들을 얼마나 보낼 수 있을까.

살면서 이런 사람들을 얼마나 만날 수 있을까.

살면서 혼자인 날들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코로나 사태로 인해 내 삶을 더욱 가득 채우고 있는 해방촌 라이프. 해방촌을 떠날 때까지 나는 이 곳을 마음껏 사랑하고 누릴 것이다. 오늘도 해방촌 언니의 싱글라이프는 그 어떤 삶보다 풍요롭고 다채롭고 정감있고 자연스럽다. 사람냄새가 난다.[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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