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캐스트, SISACAST= 이현주 기자)
무궁무진한 직업세계를 깊이 있게 다루는 '나의 잡(JOB)다한 스토리'는 현직자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14번째로 만난 현직자는 대형로펌 비서로 일하는 김형은씨다.
드라마 속에 종종 등장하는 '비서' 역할. 빈틈없이 완벽해보이는 모습에 반해 비서를 꿈꾸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누군가를 보조하는 업무 특성상 직업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을 갖는 이들도 많다.
브라운관과 편견에서 벗어나, 로펌비서 김형은씨의 생생한 직업스토리를 들어봤다.
[로펌비서 김형은씨와의 잡(JOB)터뷰]
Q. 비서는 어떤 직업인가요?
A. 우선 저는 대형로펌에 다니는 로펌 비서입니다. 로펌비서의 업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요.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송건을 다루는 송무 업무와 기업 내 문제를 해결해주고 상담해주는 자문 업무가 있습니다.
송무 업무는 소송이 진행되면서 법원에 제출하는 서류를 확인하고, 이를 기한에 맞춰 제출하는 중간다리 역할입니다. 소장, 보정명령, 보정서, 준비서면 등 소송 과정에서 제출해야 서류가 많은데요. 로펌비서는 소송 절차에 맞춰 행정적으로 사건의 진행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밖에도 사건 기록을 관리하고 변론시 필요한 서류를 챙겨주기도 합니다.
자문 업무는 고객과 주고받는 메일을 관리하거나 빌링 관련 확인 업무가 대부분입니다.
대형로펌에는 변호사를 비롯해 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관세사 등 여러 전문 인력들이 공존합니다. 업무량에 따라 변호사를 포함해 프로 3~4명을 담당하고, 변호사를 메인으로 다양한 업무를 진행합니다.
Q. 비서를 꿈꾸고, 그 꿈을 이루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A. 대학시절 경제학에 대한 관심으로 복수전공 학위를 취득했고, 대학원까지 진학하게 됐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던 중 검찰청에서 일반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친구로부터 로펌 비서라는 직업에 대해 듣게 되고,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알아보니 학위, 학점, 영어능력 뿐 아니라 꼼꼼하고 차분한 성향과 경제학 전공까지 살릴 수 있겠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어요, 제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했습니다.
일단 목표가 생겼으니, 그것만 보고 달렸죠. 노력 끝에 얻은 결과는 합격이었어요. 그리고 현재 조세팀에서 세금 관련 업무를 담당하며 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습니다.
Q. 비서가 되기 위한 자격을 비롯해 시험(면접) 과정이 궁금한데요.
A. 대형 로펌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1차 서류 2차 영어시험 및 인사팀 면접 3차 영어 및 임원 면접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후 3개월 간의 수습기간을 거친 뒤 자체 평가에 따라 정규직 고용이 결정됩니다.
성실함의 기준으로 학점을 많이 보고, 해외 고객과 컨택하고 영문 서류를 볼 일이 많기에 영어 능력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또 로펌에는 다양한 팀이 존재하기 때문에 각 팀에 맞는 전공자를 뽑아 배정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팀에는 중어중문 전공자들을 배정하죠. 저 역시 경제학과를 전공했고 조세팀에 배정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로펌 비서는 리더십보다 팔로우십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성향을 가지신 분들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Q. 전문비서 자격증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비서로 일하는 데 이 자격증은 필수적인 건가요?
A. 사실 전문비서 자격증은 거의 실효성이 없습니다. 이를 소지한 로펌비서를 거의 본 적이 없고요. 자격증이 없어도 로펌비서로 업무를 충분히 수행해낼 수 있습니다.
Q. 로펌비서를 직업으로 선택했을 때 어떤 점이 장점이라 생각하시나요?
A. 로펌비서는 소송과 관련해 어떤 이슈가 발생했는지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기에, 개인적으로 세상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대체적으로 워라밸과 복지가 좋은 편이에요.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잘 지켜지고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요. 휴가도 눈치보지 않고 원하는 날에 자유롭게 쓸 수 있습니다.
Q. 비서로 일하면서 슬럼프는 없었나요?
A. 업계 특성상 로펌 비서는 법학 전공자들이 많은데 저는 법 문외한이라 처음에는 소송 단계와 법학 용어를 익히는 데 많은 고생을 했어요. 일을 해결하면서 하나씩 익혔고, 수습사원일 때는 주말을 활용해 따로 공부했어요. 그러다보니 점점 배경지식이 쌓여 일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업무를 하면서 스스로의 부족함, 한계를 느낄 때 슬럼프가 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때 타인과 비교하고 좌절하기 보다는 부족함을 개선하고 한계를 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우선이에요.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게 된다는 말, 제 경험상 틀린 말이 아니에요.
Q. 비서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현직자로서 현실적인 조언을 부탁드려요.
A. 로펌 비서로의 취업을 준비하기에 앞서 로펌 비서의 업무가 자신의 적성과 성향에 부합한지를 많이 고민해봐야 해요.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업무를 원하는 사람들은 보조하고 수행하는 로펌 비서의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행정 업무와 맞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를 도와주고 서포트하는 사무보조 업무를 좋아한다면 충분히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할 수 있는 직업이에요.
직업적 성향이 잘 맞는다면 사원부터 대리, 과장, 차장, 부장으로 직급이 올라가며 성취감도 느끼고, 후배 비서들에게 업무적인 도움을 주는 존재로 입지를 다질 수 있습니다.
김형은씨와 인터뷰를 마치며
강을 건널 때 돌다리가 없으면 그 강을 건너기란 쉽지 않다. 로펌 비서는 소송 과정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다리'다. 그 역할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누군가는 '비서'라는 직업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때로는 무례한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직업적 편견이 무색하게 형은씨는 자신의 위치에서 견고한 다리 역할을 수행하며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형은씨도 단계적인 성장을 이뤄간다.
자신의 직업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맡은 업무를 빈틈없이 수행하는 형은씨는 '대체불가한 로펌비서'를 꿈꾼다.
같은 꿈을 가진 후배들에게 그녀가 전하고 싶은 말은, '직업에 자부심을 가질 것'.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해야, 그 일에 열정을 다할 수 있어요. 사실 남들의 평가나 시선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사진=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