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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명과 암] 물거품 된 ‘최초 3선’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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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명과 암] 물거품 된 ‘최초 3선’의 영광
  • 최기훈 기자
  • 승인 2020.07.10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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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최기훈 기자)

@ 박원순 서울시장 페이스북
@ 박원순 서울시장 페이스북

“최근까지도 대권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21대 총선에서도 친한 인사가 다수 당선되면서 대선을 적극 독려하고 있었다. 본인도 상당히 의욕적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비극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박원순계 의원측 관계자의 토로다. 유명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그리고 최초의 3선 서울시장이었던 박원순 시장이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10일 오전 2시 최익수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은 브리핑에서 “박 시장은 10일 오전 0시1분쯤 성북구 북악산 성곽길 인근 산 속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며 “현재 현장에서 감식 중”이라고 밝혔다.

사건은 9일 오후 박 시장 가족의 실종신고로 시작됐다. 가족은 경찰 신고에서 “4~5시간 전에 아버지가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통화를 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고 말했다. 이에 경찰은 700여명의 인력과 드론, 경찰견 등을 투입한 끝에 신고 7시간 만에 박 시장의 소재를 찾았다. 

@서울시
@서울시

그의 급작스런 죽음의 이유를 두고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그중 강력하게 추정되는 건 ‘스캔들’이다. 박 시장은 8일 밤 전직 비서로부터 경찰에 성추행 고소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박 시장의 전직 비서라고 밝힌 A씨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됐다. 

A씨는 변호사와 함께 8일 밤 경찰서를 방문해 9일 새벽까지 관련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시장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사건은 ‘공소권 없음’로 처리될 공산이 크지만, 논란이 불거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불명예다. 최초 3선 서울시장의 영광을 뒤로하고 생을 마감한 박원순 시장의 삶을 다시 조명해봤다. 

박원순 시장이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건 2011년 10월 서울시장 재보선 선거가 열렸을 때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벌였다가 물러난 뒤, 박 시장은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꺾고 화려하게 정계에 데뷔했다. 공직선거에 처음 도전한 정치 초년생이 곧바로 서울시장을 꿰찬 건 이례적인 일이지만, 박 시장은 이미 진보세력 내에선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추고 있었다. 

@서울시
@서울시

1994년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했고 ‘사법개혁운동(1995년)’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1998년)’ ‘부적격 정치인 낙선 운동(2000년)’ 등에서 활약했다. 시민운동가이면서도 유명한 인권변호사였다. 1990년대 중반에는 ‘서울대 성희롱 사건’의 변호인 중 한명으로 활동했다.

정계에 입문한 뒤로도 탄탄대로였다. 남은 임기 2년 8개월을 넘겨받고도 2014년 6월 4일 지방선거에서 재선 서울시장이 됐다. 꼼꼼하고 디테일한 업무 처리가 호평을 받았다. 

이후 메르스 사태 당시엔 투명한 정보공개를 단행하면서 ‘인기 시장’으로 거듭났다. 이밖에도 박 시장은 ‘도시재생사업’을 적극 벌였다. 덕분에 낙후된 지역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잘생긴 서울’이란 이름 아래 ‘서울로7017’ ‘서울시립과학관’ ‘서울창업허브’ ‘문화비축기지’ ‘다시세운상가’ 등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후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와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를 제치고 3선에 성공했다. 최초의 3선 민선 서울시장의 탄생이었다. 

@서울시
@서울시

박 시장의 10년의 시정 중엔 그림자도 있었다. 그는 평소 ‘시민과 소통하는 시장’을 내세웠는데, 이게 너무 ‘보여주기식’이 아니냐는 비판이 쇄도했다. 정책도 권력이나 차기 대권행보를 위해 지지층을 모으려는 포퓰리즘이거나, 시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특히 2018년 절박한 민생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고 강남북 격차 문제를 고민하겠다는 취지로 ‘옥탑방 살이’에 돌입했을 땐, 어설픈 서민체험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밖에도 ‘여의도·용산 통개발’ 등 토목 중심의 개발 정책도 여론의 비난 대상이 됐다. 

소탈한 이미지와 달리 뚜렷한 대권 욕심도 눈에 띄었다. 2017년 대선에선 “문재인 전 대표는 청산돼야 할 낡은 기득권 세력”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가 지지자들의 역풍을 맞기도 했었다. 박 시장은 최근까지도 내년 대선 출마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말 많고 탈 많은 박원순 시장의 시정은 이제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박 시장이 존재감이 짙은 정치인이었다는 점에서 한동안 논란은 계속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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