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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사랑’이라는 말로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 '데이트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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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사랑’이라는 말로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 '데이트 폭력'
  • 이윤진 기자
  • 승인 2020.08.06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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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부른 데이트폭력… 여성 1만8600명이 공포에 떨었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이윤진 기자)

[사진=구글 이미지]
[사진=구글 이미지]

드라마에서 한 남성이 여성을 벽에 강하게 밀쳐 위협하거나 싫다는 데도 손목을 세게 잡아끄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상남자’, ‘숫캐남’이라고 불리는 이런 행동은 사실 데이트 폭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신체적 폭력이 아닌 욕설과 고함도 상대가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다면 폭력이 될 수 있다.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의 신고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뚜렷한 대책이나 예방책은 미비한 편이다. 이에 시사캐스트에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폭력들의 원인, 현황, 사례, 신고건수, 대안과 예방법 등에 대해 다뤄볼 방침이다. <편집자주>


집착으로도 모자라 ‘사랑하기 때문에 때린다?’

대부분의 연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데이트폭력은 한순간의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해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본인의 뜻대로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집착을 하다가 그마저도 안 되면 폭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한번 휘두른 폭력이 습관이 되고 나중에는 죄책감마저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이들은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 답답한 마음에 때렸다’, ‘나는 아직 사랑하는데 헤어지자고 말해서 감정이 격해졌다’ 등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을 펼치며 데이트폭력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21살인 김 양은 1년 넘게 사귀다가 헤어진 옛 남자친구 정모 씨(28)로부터 끔찍한 일을 당했다. 지난달 15일 늦은밤 김 양은 자신이 살고 있는 주택가 앞에서 헤어진 지 한 달 된 정 씨와 마주쳤다. 정 씨는 “오랜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했는데 얘기나 좀 나누자”며 인근 호프집으로 김 양을 데려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정 씨가 갑자기 “여전히 사랑한다. 다시 만나고 싶다”며 “앞으로 마음 상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 양은 “이미 마음 정리가 다 된 상태”라며 “호감 가는 남자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격분한 정 씨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맥주병을 휘두르며 김 양을 위협했다. 그리고는 A 양의 휴대전화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휴대전화를 바닥에 내던진 후 발로 밟아버렸다. 너무 놀란 김 양은 ‘도와달라’고 소리치며 밖으로 도망쳤고, 이를 본 가게 주인이 경찰에 신고했다.

무차별적으로 폭행 후 ‘다른 남자 만나지 말아라’
최근 발생한 부산 데이트 폭력 사건도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부산에 사는 여대생 A 씨는 지난 3월 22일 자신의 SNS에 남자친구 B 씨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한 장면을 담은 CCTV 영상과 사진을 공개했다. 얼굴 곳곳에 멍이든 사진과 함께 공개한 영상에는 A 씨가 옷이 벗겨진 채로 엘리베이터 앞에서 B 씨에게 끌려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A 씨는 자신의 SNS에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하자 그가 3월 21일 오후 집으로 찾아와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당시 상황을 목격한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B 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지만 B 씨는 체포된 뒤에도 A 씨에게 문자를 보내 ‘이건 너무 심하다’, ‘잘 말해달라’, ‘다른 남자 만나지 말라’ 등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트폭력 신고 2년간 5800건 증가…처벌은 감소
지난해 데이트폭력 관련 신고 건수는 2만 건에 달한다. 그러나 처벌 사례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지난 7월 28일 경찰청에 따르면 작년 접수된 데이트폭력 관련 신고는 1만9940건이었다. 2017년 1만4136건, 2018년 1만8671건 등 매년 증가세를 보였다. 다만 해당 사건으로 형사입건 되는 숫자는 같은 기간 1만303건에서 9858건으로 다소 줄었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와 연인 관계라는 특성상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생각해 심각한 위협을 느끼기 전에는 신고나 도움을 요청하는 데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며 “데이트폭력은 폭행이나 살인, 감금, 성범죄 등 강력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 초기부터 경찰과 상담 기관에 적극적으로 신고 및 상담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청은 8월 31일까지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해 데이트폭력 집중신고 기간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집중신고 기간 신고 활성화를 위해 여성들이 자주 이용하는 장소나 인터넷 카페, 여성긴급전화 1366 등 관련 단체와 협업해 경찰 신고절차와 피해자 보호 제도에 대해 적극 홍보할 계획이다. 

“내가 잘하면 나아질 거야”라는 생각…‘폭력의 늪’으로 빠지는 길
2016년 한국여성의전화가 실시한 데이트 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통제’로 인한 데이트 폭력이 62.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데이트 폭력에서 통제란, 누구와 함께 있는지 항상 확인하거나 휴대전화 등을 자주 검사하는 것을 말한다. 이어 성적 폭력이 48.8%로 그 뒤를 이었고 언어적·정서적·경제적 데이트 폭력도 45.9%로 높게 나타났다.

[자료=경찰청 제공]

데이트 폭력은 헤어진 경우에도 발생하지만 만남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발생한다. 이럴 때 상대방이 “널 너무 좋아하니까 화를 낸거다”, “너 없이는 못산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와 같은 말로 현혹시키며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실제로 데이트 폭력을 경험하고 ‘도움을 요청한 경험이 있는가’라는 설문조사에서 평균 36.9%만이 ‘도움을 요청했다’고 답했다. 나머지 63.1%는 언어적, 신체적, 성적 폭력을 당하고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처벌 수위 강화해야…1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과태료에 불과
조재연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장은 “데이트폭력 피해 상담 사례를 보면 살인 등의 강력범죄가 일어나기 전 가해자가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따라다니거나 괴롭히는 스토킹 행위가 있는 경우가 많다”며 “스토킹을 강력하게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어 여성들의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스토킹 범죄는 경범죄처벌법 위반에 해당한다.

경범죄처벌법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해 만남이나 교제를 요구하는 행위, 반복적으로 따라다니거나 잠복해 기다리는 행위’ 등을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보고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처벌 수위가 1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과태료에 불과하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은 1999년 처음 발의된 후 20년이 지났지만 아직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20대 국회에 계류 중인 스토킹 범죄 처벌 관련 법안만 7건으로 더욱 엄격한 처벌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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