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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올해만 11명째…누가 택배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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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올해만 11명째…누가 택배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 이아름 기자
  • 승인 2020.10.21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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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이아름 기자)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택배 노동자가 또 사망했다. 올해만 벌써 11명째다.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연이어 발생하는 가운데, 지난 20일 오전 3시쯤 한 40대 택배기사 김모씨가 ‘대리점의 갑질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유서를 남긴 채 해당 지점 터미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남 창원 진해구의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에서 택배 기사로 일하던 김씨는 이날 오전 2시30분쯤 자필로 작성한 A4용지 3장 분량의 유서를 촬영해 메신저로 함께 일하던 노조 조합원에게 전송했고, 이 유서는 A씨의 옷 호주머니에서 발견됐다.

[사진=전국택배노조 제공]
[사진=전국택배노조 제공]

“억울합니다”라는 제목의 유서에는 대리점의 부당한 대우와 갑질 문제가 자세히 적혀있었다.   

김씨는 “택배기사는 국가시험에, 차량 구입에, 전용 번호판까지 준비해야 하지만 200만원도 못 버는 현실”이라며 그간의 생활고를 호소했다.

또한 그는 “저처럼 한 달 200만원도 벌지 못하는 구역은 소장(기사)을 모집하면 안 되는데도 (대리점이) 직원을 줄이기 위해 소장을 모집해 보증금을 받고 권리금을 팔았다”며 “한여름 더위에 하차 작업을 하는데도 에어컨을 사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비트코인 채굴기에 투자할 돈은 있으면서 지점에 투자하라고 하면 ‘돈 없다’는 이유만 댔고, 부지점장이 소장에게 먹던 커피잔을 던지며 화를 내는 등 갑질했다고도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시정 조치를 해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한숨도 못자고 너무 힘들다”
지난 12에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김모씨 역시 숨지기 나흘 전인 이달 8일 동료에게 “너무 힘들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의 메시지에는 “집에가면 5시인데 밥 먹고 씻고 바로 터미널 가면 한숨도 못자고 또 물건정리(분류작업)를 해야 한다. 너무 힘들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올해 과로사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택배기사는 모두 9명이다.

대책위는 김씨와 관련 평소 지병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한진 택배는 김씨가 평소 지병이 있었으며 배송량도 200개 내외로 적은 편이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책위는 김씨가 추석 연휴 전주에 하루 200~300개를 배송했고, 한진택배 노동자가 200개를 배송하는 시간은 CJ대한통운 택배기사가 300~400개 물량을 소화하는 시간과 비슷하다며 반박했다. 실제 한진택배는 CJ대한통운보다 1명이 담당하는 배송 구역이 더 넓다.

택배기사의 주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과로사 인정 기준은 ‘직전 3개월 주 60시간 노동’ 또는 ‘직전 1개월 주 64시간 이상 노동’이다. 이 조사결과만 보더라도 택배기사의 노동시간은 과로사 인정 기준을 훌쩍 넘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장에선 “다음은 내 차례가 될 수 있다”며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산적해있는 택배 물량을 보면 그런 걱정을 할 여유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오전 내로 분류작업을 마쳐야 하루치 택배 물량을 겨우 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택배기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높은 노동강도에 따른 과로사는 끊이지 않고 있지만, 당사자인 택배업체들은 “사망사고가 발생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한진택배는 20일 저녁에서야 ‘택배기사 사망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했다. 소속 택배기사 김씨가 숨진지 8일 만이다.

한진 측은 “소속 택배기사의 갑작스런 사망에 깊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기사들의 업무 과중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근로조건을 적극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속한 시일 내에 택배기사들의 과로 방지를 위한 근본적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낙연 “택배노동자 안전조치 충분치 않아”

택배노동자들의 잇단 과로사에 대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1일 “하나의 업종에서 지속적인 사망자가 나온다는 건 이미 구조적 문제가 한계가 다다랐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택배업체들의 안전·보건 조치 등에 대해 긴급 점검에 착수했으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주 또 한 분의 택배 노동자가 별세하는 등 올해 벌써 열 분째 사망했고, 어제도 40대 택배노동자 한 분이 목숨을 끊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추석 전 약속한 분류·배송 업무 이원화 조치 등이 현장에서 얼마나 이행되는지 확인해달라”면서 “택배업을 비롯해 우리사회 필수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기준과 사회안전망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국회에 나와 있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안 등 필수노동자 보호에 관한 법안들이 이번 정기국회 내에 통과될 수 있도록 속도를 내달라”고 주문했다.

택배기사들은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17일 ‘분류 작업’에 추가 인원을 투입해 줄 것을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한 바 있다. 이에 정부와 택배사는 바로 다음날 2,067명의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밝혔고, 택배노동자들은 파업 선언을 철회했다.

하지만 대책위에 따르면 분류작업에 추가 투입된 인력은 당초 발표의 20%도 되지 않는 363명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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