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1 16:43 (수)
[Journey의 싱글라이프-㉑] ‘with 코로나’와 아웃도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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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의 싱글라이프-㉑] ‘with 코로나’와 아웃도어 라이프
  • Journey
  • 승인 2020.10.2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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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칼럼니스트 Journey)

 

일찌감치 잠든 어제, 자는 둥 마는 둥 새벽 2시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한다. 부랴부랴 커다란 배낭을 메고 차를 끌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운전대에 크루즈 버튼을 누르고 한손으로는 핸들을, 다른 한손으로는 어제 밤에 싸놓은 김밥을 들고 조심스레 한입씩 우걱우걱 씹으면서 밤길 운전에 심혈을 기울인다.

어딘가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6시. 10킬로그램은 거뜬한 배낭을 메고 신발 끈을 단단히 묶더니 이마에 랜턴을 끼고 라이트가 잘 들어오는지 확인한다.

손에는 스틱을 꺼내들고 차가운 가을새벽을 피부로 느끼며 어딘가에 서서히 오르고 또 오른다. 설악산이다.

5시간 동안 무거운 배낭을 메고 대청봉 정상에 오른다. 설악산은 온통 단풍이 빨갛다 못해 핑크빛으로 변하고 있다. 곧 겨울이 온다는 신호다.

허벅지는 서서히 열감과 함께 부풀어 오르고 있고, 대청봉비에서 인증 샷을 찍은 후 헐레벌떡 대피소를 향한다. 이내 취사전용 구역에서 물을 끓여 라면과 콩나물을 넣고 팔팔 끓인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이다. 한숨을 돌리고 커피까지 마신 후, 설악산의 정상에서 가을을 만끽한다.

어설프게 대피소 한구석 벽에 기대어 잠시 피로한 몸을 재우고 있는 등산객도 있다. 한참을 쉬다가 약간은 가벼워진 배낭을 다시 메고 한계령 방면으로 향한다. 올라온 오색코스보다 한참 긴 코스이다. 말은 하산길인데 ‘악’이라는 이름이 붙은 산답게 험한 바위산을 넘고 넘으며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한다.

나름 대한민국에서 힘들기로 유명한 3대 산 중 하나인 설악산 앞에서 한껏 무기력해진 몸으로 겸손해진다. 지친 걸음으로 하산하다보니 어느덧 일몰이다. 그림같은 해가 저 멀리 산 뒤로 숨는다. 12시간이 다 되었구나.

드디어 설악산 국립공원 출입구에 도착했다. 입맛은 이미 상실했고 두 다리는 후들후들 서있을 힘도 없다. 오늘도 완주라는 목표를 달성한 것에 희열을 느낄 뿐이다.

12시간 산행? 필자의 삶에서 이런 고행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틈만 나면 스마트 폰으로 비행기 표를 손쉽게 끊고 여행을 떠날 수 있었으니까.

캐리어는 최대한 가볍게, 부족한 것이 있으면 현지에서 구입해서 사용한다. 매 끼 이국적인 음식을 사먹고 때로는 한식당도 들린다. 피곤하면 깨끗한 침구가 마련된 호텔에서 낮잠을 자거나 관광이 귀찮으면 호텔 수영장에 종일 누워 칵테일을 마셨다. 핸드폰을 어디에 대도 환상적인 사진들을 얻을 수 있다. 인생이 이렇게 쉽다니...

사람들은 SNS에 올린 내 여행 사진에 부러움을 한껏 표시하고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코로나 이후에 인류의 취미와 생활패턴은 매우 많이 바뀌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이전에 드물던 ‘트레일 러닝’이라는 단어와 ‘백패킹’, ‘백패커’, ‘등산스타그램’, ‘100대명산’ 등의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Trail running :시골길과 산길을 뜻하는 트레일(trail)과 달린다(running)의 뜻이 합쳐진 합성어로, 포장된 아스팔트나 트랙이 아닌 산이나 초원, 숲길 등 주로 자연 속을 달리는 운동경기를 말한다.)[출처: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사람들을 서로를 자주 만나지 못하면서, 차라리 자연 속에서 혼자 놀기를 자처했던 사람들은 서서히 자연의 일부가 되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희열과 건강까지 얻고 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을 뛰어다니는 트레일 러닝이나 조난의 경우까지 고려해서 장비를 두둑이 챙겨야 하는 비박 하이킹(잠을 자지 않고 산에서 1박 이상을 하는 등산), 그리고 아웃도어계의 장비 끝판왕 캠핑까지.

필자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아웃도어 활동들이 이토록 왕성한 때를 본적이 없다.

코로나 창궐이후 불과 8~9개월 사이에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말도 있다.

‘코로나 끝나면’, ‘코로나 없어지면’

대신 인류는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with 코로나’를.
  

이미 우린 코로나를 없앨 수 없다. 아직은 안고 살아가야 하는 상태이고, 백신이 나오더라도 이젠 감기처럼 일상적인 질병이 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적 재앙의 삶속에서 인류는 자연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결국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인 것일까?

인재인지 천재인지 모를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자연 속을 파고든다. 마치 엄마 품을 파고들듯이.

설악산 12시간 산행을 하며 필자는 생각했다.

우리가 자연의 존재감에 대해 당연시하고 손상만 시켰던 과오의 대가가 아닌지 말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동물들을 멸종시키고, 지금까지도 닥치는 대로 잡아먹으면서 포식자로 살아오지 않았는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빙하들이 녹고 있고,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쓰레기 섬에서 동물들이 죽어가는 모습은 이제 별다른 감정 없이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코로나로 인해 애꿎은 아웃도어 활동들을 통해 자연 속에서라도 바이러스로부터의 안전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새삼 느끼고 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구의 날 50주년을 기념하며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신은 항상 용서하고, 인간은 때때로 용서하지만, 자연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묵묵한 대자연 앞에 아웃도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멋지게 서 있었던 내가 다시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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