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6 16:14 (화)
[비혼라이프] 사소한 챌린지
상태바
[비혼라이프] 사소한 챌린지
  • 류진 칼럼리스트
  • 승인 2021.01.06 13: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출처: 언스플래쉬닷컴]
[사진출처: 언스플래쉬닷컴]

어느 해부터인가 새해 다짐이나 목표를 따로 만들지 않았다. 지난한 실망에 지쳐서, 매년 반복되는 ‘실패’의 루틴에 굳이 또 숫자를 보태고 싶지 않아서. 결국엔 못(혹은 안)지킬 걸 아니까. ‘올해는 좀 다르겠지.’ 하고 헛된 희망을 품은 건 내 의지를 철썩 같이 믿었던 순진한 시절의 얘기다.

삼, 사 년 전까지만 해도, 큰 줄기는 잡았다. 적어도 이건 이뤄보자, 저거 하나만은 해내자, 같은. 보통은 ‘얼마를 모은다’ ‘여기와 저기로 여행을 간다.’ 처럼 별로 어렵지 않은 목표였다. 재작년, 그러니까 2020년을 맞이하는 연말과 새해엔 아예 아무 계획도 목표도 세우지 않았다. 하와이에서 극성수기 요금에 통장 잔고를 흩뿌리고 있던 나는... 매일 해가 뜨고 지는 장면을 보며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며 살고 싶다’는 그럴듯한 미문으로 게으름을 포장해 시작하는 인간의 의무를 회피했다.

그 뒤로 들이닥친 코로나의 재앙 속에선 그저 살아남기에 급급해서 내 삶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챙길 겨를이 없었다. 표류하듯 떠밀려 헤매다가 맞이한 연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벌써 연말이라니!’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올 해가 다 갔다니!’ 따위의 메시지로 허탈감과 울분을 쏟아낼 때 나는 내가 뭘 원했으며 뭘 못했는지조차 몰라서 갈팡질팡했다.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은 기분, 애석해할 기억조차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사진출처: 언스플래쉬닷컴]
[사진출처: 언스플래쉬닷컴]

지키지 못할, 혹은 못한 목표라도 없는 것 보다 있는 게 낫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한 후, 올핸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 컸다. 관념적이고 거창한 언어-행복하자, 건강하자, 마음을 챙기자, 따위의-들은 접어두고 매일 적은 시간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노트에 적었다. 매일 하루 3개 감사한 일 적기, 매일 달리기. 아침에 눈 뜨자 마자 뜨거운 물 마시기. ‘루틴’이라고 표현하는 이 작은 습관들은 전에도 밥 먹듯이 실패한 전적이 있는 위시 리스트였다.

노트의 여백이 너무 많이 남아서, 별다른 계획조차 필요 없는 저 목표들이 시시해 보여서 영어 마스터, 새로운 분야 공부하기 따위의 꿈을 더 적으려다 마음먹고 펜을 놨다. 이거라도 해보자. 나 자신과의 약속을 가장 하찮게 여기며 수천번도 더 깬 전적이 있기 때문에 같이 할 사람을 이 하찮은 작당에 끌어들였다. 

[사진출처: 언스플래쉬닷컴]
[사진출처: 언스플래쉬닷컴]

연습하는 셈 치고 12월 마지막 주부터 시작한 감사일기는 현재 ‘작심 삼일’의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순항 중이다. 단 세 줄만 쓸 수 있는 일기 어플리케이션을 받아서 더 쓰고 싶어도 못쓰는 ‘제한’을 두니, 미루는 일이 적다. 겨우 3개인데 뭐, 로 시작했는데 매일 다른 세 가지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감사는커녕 불평 불만만 33가지 쏟아져 나오는 날엔 고문이라도 당하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과 주변과 신에 감사할 것을 찾아내는 습관은 특별한 일에서 감사할 거리를 찾는 것을 멈추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감사할 게 있어서 일기를 쓰는 대신 일기를 쓰기 위해 감사한 일을 찾다 보니 절로 오늘과 지금에 집중하는 태도도 생겼다. ‘달리기’는, 한 겨울에 같이 달려줄(잔소리해 줄) 친구가 없어서 ‘매일 5분 달리기’를 무려 ‘챌린지’로 만든 러너의 커리큘럼으로 쏠쏠한 도움을 받는 중이다.

5분이라는 가벼운 숫자가 따뜻한 침대를 박차고 나가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 겨우 네 번 달렸지만 하루 하루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호흡과 몸놀림에 신이 나서 눈 뜨자 마자 오늘 달릴 수 있는 시간을 체크하는 일과가 생겼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달랑 두 개짜리 계획표가 사소한 격려와 위로를 주고받을 동거인이 없는 ‘혼삶’에 꽤 큰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만큼 했으면 됐지 뭐,’하는 나태가 내 이성에 침투할 때를 대비해 현관에 비장한 문장도 써 붙여 놨다. 무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으로!  “반복적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우리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탁월함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이다.” 

[사진출처: 언스플래쉬닷컴]
[사진출처: 언스플래쉬닷컴]

 

[류진 칼럼니스트]
[류진 칼럼니스트]

 

(시사캐스트, SISACAST= 류진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