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1 16:43 (수)
[Journey의 싱글라이프-㉖] 혼자서 하는 여행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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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의 싱글라이프-㉖] 혼자서 하는 여행의 의미
  • Journey
  • 승인 2021.01.2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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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칼럼니스트 Journy)

 

가장 훌륭한 태도로, 가장 예의를 갖추어 우리를 넘어서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은 아마 자연의 광대한 공간일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의 삶을 힘겹게 만든 사건들, 필연적으로 우리를 먼지로 돌려보낼 그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알랭드보통 [여행의 기술]에서 발췌


어느 해의 겨울 밤, 지루한 일상과 스트레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소화불량에 얼굴도 검게 변한 것 같고, 신경이 예민해서 누구를 만날 수도 없다. 갑자기 든 충동적인 탈출 욕구는 나에게 6시간 뒤 이륙하는 발리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게 만들었다.

부랴부랴 캐리어를 쌌다. 현지 날씨에 맞을만한 옷가지 몇 개, 세안도구, 수영복, 읽지도 않을 책, 작년 언젠가 꾸깃하게 접어놓은 창이 큰 모자와 비상약을 때려 넣고, 예약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철도 승강장에 비친 내 모습이 보인다. 거의 요가 복장에 가까운 편안한 의상에 조리 하나를 신고 있는데 어딘가 초라해 보이지만 눈빛만은 어느 때보다도 반짝인다. 나는 지금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는 중이기 때문이다.

공항, 그 설레임
발권을 하고 공항 환전 창구에서 약간의 돈을 달러와 현지 화폐로 환전을 한다. 환전이 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통신사에 전화를 하고 해외로밍 데이터를 계약한다.

수속 절차를 마치고 발이 먼저 기억하고 있는 공항 라운지를 향한다. 충동적인 여행이 취미였던 만큼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마치 공항에서 오래전부터 살고 있었던 사람처럼.

이내 라운지에 앉아 진한 블랙커피와 함께 간단히 과일을 먹는다. 정성스럽게 찻잔과 스푼이 곁들어진 공항 커피의 맛은 특유의 맛이 있다. 쓰고 단순하고 양이 살짝 부족하다. 마치 지금 의 딱 내 감정상태처럼.

창밖에 수 십대의 비행기가 각자의 방향으로 서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데 심장은 쿵쾅거린다. 나는 공항이 그 어떤 공간보다 좋다. 사실 여행지보다 공항이 더 좋다.

익숙한 여행지가 주는 위안
현지 공항에 착륙하고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 후끈한 열기가 상공에서 굳어있던 내몸을 녹인다. 발리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공기에 배어있다.

“왔구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역시 발이 기억하고 있는 익숙한 발리의 공항을 거침없이 잰걸음으로 치고 나간다. 현지에서 호갱이 되는 첫 번째 길인 택시 드라이버들의 호객행위 정도는 가뿐하게 지나치고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빠르면서 정확한 택시요금을 지불할 수 있는 택시 승강장으로 간다.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나서는 창밖을 향한 눈이 바빠진다.

“그리웠어. 이 풍경들, 사람들, 냄새, 그리고 여기 있는 내가.”

호텔이 주는 풍요로움
나는 어릴 때부터 호텔리어였던 부모님 덕에 호텔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나의 꿈은 작은 호텔을 짓고 그 곳에서 사는 것이다. 호텔이 나에게 의미하는 것은 치유와 풍요로움이다. 돈을 버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한 가지만 꼽으라면 나는 아주 가끔이라도 호텔에서 단 하룻밤의 휴가를 주기 위해서 라고도 말할 수 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쉬어라!’ 같은 맥락이다.

발리의 특성 상 대부분의 호텔과 리조트의 로비는 굉장히 넓은 편이다. 원시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건물들. 거칠고 투박하고 오래되었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인테리어. 배정된 방에 들어간다. 침대위에는 마치 신혼여행을 온 듯 꽃잎으로 하트가 만들어져 있다. 익숙하게 꽃잎을 거둬내고 침대에 대자로 누워본다. 입가엔 이미 함박웃음과 기쁨의 한숨이 나온다.

“나 이미 모든 보상을 받은 것 같아.”

최고의 식사 ‘호텔 조식’
동이 틀 무렵 기가 막히게 새들이 동시에 합창을 시작한다.

알람이나 호텔의 모닝콜은 불필요하다. 이미 새들이 나를 깨워주었으니.

어젠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왠지 가뿐해진 몸으로 샤워를 하고 조식을 먹으러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바다 곁에 머물고 있는 이 아름다운 호렐&리조트는 식당에 앉아 있으면 작은 인도와 모래사장을 사이에 두고 바다와 마주한다. 검푸른 발리의 바다. 유난히 눈부신 하늘색이 정겹다. 어느새 송글송글 코에 맺혀있는 땀방울과 목뒤의 끈적거림 마저 반갑다.

진한 발리커피와 동남아 특유의 간소한 과일 몇 조각, 스크램블과 딱딱할 정도로 구워진 베이컨을 앞에 두고 이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래본다. 여전히 미소 가득한 얼굴로.
역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단연코 ‘호텔 조식’이다.
 

 

발리는 오전부터 태양이 너무 강렬해서 낮에는 잘 돌아다닐 수도 없는 날씨지만 리조트 수영장에서 종일 바다를 바라보며 그간 듣지 못한 음악을 듣거나 4시간이고 5시간이고 생각을 한다. 신기한 것은 그 4~5시간동안 하는 생각이 마치 그간의 괴로움을 정리하고 새로운 계획을 짠다던가 하는 엄청난 노동이 아니라, 그냥 ‘아무생각도 하지 않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일상은 내게 치유를 선물한다.

혼자서 하는 여행의 의미
혼자서하는 여행의 의미와 기쁨은 무엇인가?

나에게 여행이란 때론 무지한 곳에서의 생존 경험을 통해 내가 가진 세상이 얼마나 작았는지를 일깨워주는 팽이를 돌리는 ‘채찍질’이거나 그 정반대인 ‘완벽한 휴식’이었다.

여전히 나에게 처음 가는 여행지는 힘들고 어렵고 두렵고 위험하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반면에 호기심, 신비로움, 우연, 기대, 아름다운 것을 경험하고자하는 의지가 그 두려움보다 크다. 여행지에서 혼자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했을 때 갈고 닦여져 만들어지는 최대의 보상은 ‘희망’이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계획되어있던 수많은 여행과 출장이 취소되면서 치유와 희망의 기회들은 사라졌다. 감상적인 여행 타령을 하기에는 세계의 곳곳에서 오늘도 당장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고 있고, 단 하루를 버텨낼 힘마저 잃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행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치유’였지만,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내게
여행의 의미는 ‘감사’가 되었다.

오늘도 내가 잘 버텨내기를, 모두가 잘 버텨내기를.

언젠가 모두가 마스크를 벗은 채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같은 비행기를 탈 수 있기를 바란다.

인류여 파이팅! 대한민국 파이팅!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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