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7 14:30 (일)
[Journey의 싱글라이프-㉘] 기혼자 vs 비혼자 언어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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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의 싱글라이프-㉘] 기혼자 vs 비혼자 언어의 온도
  • Journey
  • 승인 2021.02.1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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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칼럼니스트 Journy)

 

여자 넷이 모여 점심 식사를 한다. 메뉴는 수제비

A : “우리 시어머님이 수제비를 그렇게 잘하시는데...”
B : “정말 우리 친정 엄마가 해주셨던 시골 맛 그대로이네.”

이곳으로 인도했던 C는 기분이 좋다.

C : "많이들 드세요. 우리 식구들은 수제비를 안 좋아해. 나온 김에 많이 먹어둬야지.”
D : “김치전이 맛있네요.”

D는 걸쭉한 수제비가 영 입맛에 안 맞는지 연신 김치전을 뜯어 먹는다. 예상대로 D는 나다.

A, B, C는 모두 결혼 20년에서 25년 차의 주부 9단들이다. 모두 장성한 또는 한창 자라고 있는 아이들의 엄마이자, 사회에서는 왕성하게 일을 하는 커리어우먼이다.

D는 이들보다 10살은 족히 어리지만, 이미 18년차 커리어우먼이다.
D는 남들이 결혼하고 애 낳아 키우고 있을 때에도 내내 일만 했다는 말이다.

여자 넷이 모였으니 할 얘기가 많다. 식사 후 디저트와 차를 마시러 전망 좋고 예쁜 카페에 들어갔다. 루프탑에 햇살이 아름답게 비추니 오랜만에 일상에서 해방된 느낌을 잠시 즐겨본다. 이 모임에 학교 후배라는 이유로 초대된 나는, 선배님들의 대화에 모두 낄 수는 없다.

특히 아이들의 학업이나 사춘기 이야기, 시부모님과 동서, 시누이 이야기 등의 대화에서 나는 딱히 할 말이 없다. 마치 사랑과 전쟁을 눈앞에서 보는 듯이 그저 들을 뿐이다.

남편과의 관계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사실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도 연계성이 있으므로 그나마 끼어들 만하기도 하다. 드디어 모두의 관심이 유일한 싱글인 나에게 꽂힌다.

“결혼은 안 해요?”

매우 자주 듣고 여러 번 반복되는 스토리다.

“아직 결혼할 만한 사람을 찾지 못했어요.”

이렇게 말하면 내가 듣는 대답은 크게 2가지다.

50%정도는 ‘결혼을 뭐하러 하냐, 지금처럼 자유롭게 살아라.’ 나머지 50%는 ‘그래도 결혼을 한번 쯤 하는 것은 좋은 것 같다.’

여기에 새로운 형식의 대답이 추가되었다. 조언성 권장? 충고?

“아이를 낳아 키워보는 것과 아닌 것은 사람의 품는 그릇을 다르게 한다.”

여자로써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을 키워보는 것은 사람을 성장케 만들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반드시 해봐야 한다는 게 부연 설명이다.

한참을 결혼과 출산, 육아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어졌고 결국 나는 그녀들보다 10년 이상 어리고, 결혼하지 않았고, 애를 낳아 보지 않아 ‘경험이 부족하고 누군가를 품기에는 그릇이 작은 미성숙한 아이’가 되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절친 4인방이 있었다. 그 중 한명은 집안 사정이 넉넉지 못하지만 항상 부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대학생의 신분에서 10살이 많은 금융맨과 서둘러 결혼했다.

그녀가 결혼할 사람이라고 그를 보여주었을 때가 아직도 선하다. 10살이 아니라 한 20살은 많아 보이는데다가 외모도 보기 불편할 정도였다. 절친인 우리는 그녀를 말리고 싶었다. 그녀와 남자친구가 먼저 자리를 뜨고 남은 우리 친구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나는 싫다 야!”
“사람이 좋은가 보네.”
“부디 아들을 낳아야 할 텐데...딸 낳으면 어떡하니...”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도 걱정이라고, 질투나 시기였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을 어리고 미숙한 우리는 그저 어린 시절 우리가 꿈꾸었던 ‘내실 있는데 얼굴까지 멋진 왕자님’ 이상형에 미치지 못한 그녀의 남편감에 대해 이렇게 섣부른 판단을 내렸다. 그녀가 부디 숙고하기를 바라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그녀를 설득하기도 했다.

드디어 그녀가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즈음에 절친들이 다시 모여 동창회를 했는데, 그녀는 20대 싱글녀 청춘의 절정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말했다.

“애를 안 낳아보면 아무것도 몰라. 애를 낳아야 진짜 여자가 되고, 어른이 되는 거지.”

꽃 같은 나이, 매일 매일 화려한 연애와 흥겨운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며, 낮에는 사회에서 커리어우먼으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가던 우리 싱글 친구들은, 그 뒤로 그 친구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애 낳은 게 무슨 벼슬이라고 말을 저렇게 해?”
“자기 손으로 돈 한번 벌어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냅둬. 이미 우린 사는 방법이 너무 다르다.”

물론 결혼한 그 친구는 지금 장성한 딸을 키우며, 남편이 벌어다주는 생활비로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며 잘 살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이렇듯, 내 기준의 조언, 충고가 얼마나 주제넘고 어리석은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이랬다고 남들도 이럴 수는 없다. 내가 저랬다고 남들도 저래야 되는 법은 없다.

첫 번째 언급한 3명의 기혼자와 나의 대화 속에서 나는 굴하지 않고, 오히려 나의 새로운 장점들을 발견했다.

여자로써 결혼과 출산, 육아는 해보지 않았지만, 그들이 그들의 삶을 사는 동안, 나는 그들이 하지 못한 경험을 너무나 많이 했던 것이다.

42살까지 한 번도 결혼하지 않고 싱글로 혼자 살아본 내 경험을 그들은 죽을 때까지 결코 할 수 없다.

혼자서 이렇게 오랜 시간 전쟁터 같은 사회생활에 치이고 성장하고, 힘이 들건 사업에 실패를 하건 누구에게 기대거나 도움 받지 않으며 버텨온 힘.

무엇보다 백여 번의 연애를 했던 경험 백여 번의 이별을 했던 경험

내게 너는 아직 어리다고 말하고 있는 그들은 해보지도 못했고, 영원히 하지 못하는 경험일 것이다.

나에게 수없이 조언하고 가르치려 했던, 심지어 안타깝게 쳐다보던 주위의 수많은 기혼자들을 떠올리며 지금 이 순간 내가 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그들이 자신들의 말로 ‘어른’이 되기 위해 겪어야 했던 출산과 육아와 같은 인고의 시간 대신, 나는 틈틈이 세계여행을 다니며 견문을 쌓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새로운 분야에 대해 공부를 했다. 때로는 춤도 추고, 피아노도 치고, 요리사 자격증도 따고, 그림도 그리면서 내 삶을 아름답게 빚어왔다.

내일 또 나의 경험치가 하루만큼 추가되면 나는 오늘보다 더욱 견고하고 성숙하게 빚어진 아름다운 여성이 된다.

이러다가 내가 갑자기 결혼하고 애라도 낳으면, 이제 내가 그들의 우위에 서있는 것인가? 42살까지 혼자 살아본 경험에, 이제 여자로써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냈으니 이제 나는 그들을 품고 천하를 호령하겠느냐 말이다.

당연히 아니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가르쳐서 될 것이 아니라, 각자의 경험치가 쌓여서 만들어 진다.

당신이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질 생각이 없다면 누구의 인생에도 함부로 훈수 두지 말자.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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