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9:51 (수)
[JOB&JOB] 유·무급휴직 허리띠 죈 항공사 직원들… ‘해고 당하면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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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JOB] 유·무급휴직 허리띠 죈 항공사 직원들… ‘해고 당하면 어쩌나’
  • 이윤진 기자
  • 승인 2021.03.16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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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기다릴 수 없어’ 제2의 인생을 준비하며 자격증 따기에 몰입

(시사캐스트, SISACAST= 이윤진 기자)

 

[사진=대한항공]
[사진=대한항공]

“외벌이라 아르바이트라도 할까 했는데 그나마 나오는 지원금이 끊길 수 있어 아이들 먹는 거 입는 거 줄여가며 버티는 중입니다.”(항공사 직원 이모 씨)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국내 항공사들이 고육지책으로 무급휴직을 선택하면서 직원들의 한 숨이 늘고 있다. 당장 생계 걱정에 막막한 상황이지만 별다른 대책도 없는 실정이다. 무급휴직이 실시되면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 약 150만원을 받게 되지만, 아르바이트 등 다른 일을 하게 될 경우 이마저도 끊기게 된다.

그 많은 승무원, 정비사는 지금 어디에?

[자료=알바천국]
[자료=알바천국]

대한항공 직원인 민씨(42)는 지난해 넉 달을 휴직했다. 코로나19로 여행객이 급감하면서, 항공 업계가 순차 휴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정비사는 한 달 일하고 한 달 쉬고, 승무원들은 서너 달 정도 휴직하고 한 달씩 일하고 있다.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우린 취업규칙과 지원금 때문에 법적으로 휴직기간 동안 일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항공사 승무원인 김씨(35)는 지난해부터 넉 달 쉬고 두 달 일하길 반복하고 있다. 다른 직원들과 번갈아가며 근무하고 있기 때문으로 김씨는 “2개월 일한다곤 하지만 실제 근무 기간은 한 달 반도 안 된다”며 “쉴 때도 정부 보조금이 있어 월급이 나오긴 하지만 이전의 절반 수준”이라고 말했다.

항공 자회사 지상직 직원인 오모(36)씨는 지난해 11월부터 강제 휴직 상태다. 복직 가능성이 불투명해지면서 아예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 중이다. 막상 그만둔다고 해도 취업난이 심해 일을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딱한 처지가 됐다. 그나마 저녁시간에 택배운하 및 분류작업을 하며 적은 돈을 받는 ‘알바 인생’을 시작했다.
 
월급은 깎이지만 ‘알바’는 못 하는 휴직…지원금까지 끊기면?

[사진=구글이미지]
[사진=구글이미지]

대한항공은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으로 ‘통상임금’을 휴직자에게 지급하고 있다. 다른 사업장에서 일하면 지원금을 반납해야 한다. 이 지원금과 겸직을 금하는 취업규칙 때문에 ‘알바’를 할 수 없다. 지난해 말부터 기본급의 70%만 주는 유급휴직에 들어간 국내 항공사 직원 최씨는 요즘 제과제빵 학원에 다니고 있다. 직업적 불안감 때문이다.

최씨는 “언제 무급휴직으로 전환될지, 언제 ‘정리해고’ 칼바람이 휘몰아칠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먹고살려면 뭐라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무급휴직 중인 저비용항공사 직원 공씨는 카페에서 몰래 아르바이트 중이다.

4대 보험에 가입하면 정부가 월 50만원씩 3개월간 최대 150만원을 주는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아닌 동네 카페에서 소일거리 정도로만 하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유급휴직 중인 직원 가운데 딜리버리 서비스업에 뛰어든 사람도 꽤 있다”고 전했다.

아시아나·대한항공 휴직자 규모 50% 넘어… 농촌일도와 생활비

[사진=롯데택배]
[사진=롯데택배]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휴직자 규모가 50%를 훌쩍 넘는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끊긴 대형 항공사들이 여객기를 화물기로 운용하는 역발상으로 2분기에 흑자를 냈지만 직원들은 여전히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위태로운 노동 환경 속에서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다. 특히 운항이 없어진 객실 승무원은 70% 이상이 휴업 중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노선의 90%가 끊겼기 때문이다.

무급·유급 휴직 중인 직원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자녀의 학원비나 외식비, 의류비와 함께 고정 지출도 최대한 줄이며 버티고 있다. 기록이 남지 않는 농촌 일손돕기로 생활비를 버는 직원도 있다고 한다.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타 업종으로 이직을 고려하며 준비 중인 직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3년째 항공사 승무원을 하고 있는 박모씨는 “아이 학원부터 먼저 끊었는데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괴롭다”면서 “남의 집 일을 돌봐주는 도우미라도 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계 때문인데, 일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 부당하다”면서 “줄어든 수입에 대한 더 필요한 만큼의 노동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격증 준비부터 캐디, 영어과외 선생님까지 ‘웃픈’ 현실

[사진=구글이미지]
[사진=구글이미지]

한편,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 없는 항공업계 종사자들은 공인중계사, 파티쉐, 바리스타 등 자격증 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골프장에서 캐디를 하거나 음식을 배달하는 승무원들도 있다.

승무원이 된지 3년밖에 안된 김 모(27)씨는 카페에서 알바를 할 때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으면 좀 더 쉽게 뽑힌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 중이다. 그는 “내가 꿈꾸던 스튜어디스의 삶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물거품이 됐다”면서 “아직 젊은 나이인데 복귀만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학원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승무원은 “학교 다닐 때 영어 공부를 꽤 잘했다”면서 “현재 중학생 영어 과외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좀 나면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엄마들이 과외 할 수 있냐며 문의를 하고 있다”면서 “전직 스튜어디스에서 현직 영어 과외 선생님으로 웃픈 현실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된 기장들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배달서비스를 하기에는 힘들기 때문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에 도전하는 이들이 많다.

이른 아침부터 노량진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박모(46)기장은 “얼마 전 빠른 배송 서비스를 하다가 발목을 다쳐 장기간 목발 신세를 졌다”면서 “요령 없이 힘으로만 일을 하려고 하니 허리, 무릎 안 아픈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공인중계사 자격증 준비에 들어갔다”면서 “경쟁률이 생각보다 높아서 자신은 없지만 뭐라도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일단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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