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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34년간 이어진 헌책 사랑, ‘교동 헌책방’ 권오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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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34년간 이어진 헌책 사랑, ‘교동 헌책방’ 권오상 대표
  • 김주은 기자
  • 승인 2021.06.18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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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김주은 기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책장 가득 책이 꽂혀 있고 바닥에도 쌓여있는 곳. 쿰쿰한 책 냄새를 맡으며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책을 만날까, 기대하게 하는 곳. 우리가 떠올리는 헌책방의 모습이다. 불과 십여 년 전만해도 학교, 대학가, 역세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헌책방은 온라인 서점과 전자책, 오디오북 등 책을 구매하고 읽는 새로운 매체들이 생겨나면서 점차 그 모습을 감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4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헌책방을 운영하며 단골손님을 맞이하는 이가 있다. 바로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위치한 ‘교동 헌책방’을 운영하는 권오상 대표(66). 꽃들이 만개하는 올해 5월, 필자는 강릉에 방문해 헌책방을 누군가의 추억과 향수가 깃든 공간에서 하나의 문화 활동 공간으로 발전시키려는 권오상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34년간 교동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권오상 대표.
'교동 헌책방' 권오상 대표.

- 교동 헌책방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교동 헌책방은 1987년부터 현재까지 34년간 운영하고 있는 헌책방입니다. 현재 강릉시 교동에 위치하고 있고, 교동에서 30년 동안 헌책방을 운영했습니다. 몇 년 전에는 강릉버스터미널 부근으로 이사 갔다가 지난해에 교동으로 다시 왔습니다. 지하 1층에 80평 규모의 헌책방에는 각 분야의 서적 5만여 권이 비치돼 있습니다. 영동권 지역 유일의 헌책방이자, 강원도 동해안 6개 시·군의 헌책방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헌책방입니다.

5만여 권의 헌책이 방마다 각 분야대로 정리되어 있다. 책장 사이사이를 다니다 보면 책의 미로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최근 헌책방이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헌책방 운영이 어렵진 않나요?
우리 헌책방같이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헌책방은 많이 사라졌죠. 강원도에도 몇 곳 안 남았고요. 그런데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헌책은 더 많이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알라딘 중고서점’ 같이 대형 헌책방은 유통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고, 특히 온라인으로 판매하거나 구매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저희도 온라인 판매를 병행하고 있는데, 직접 찾아오시는 손님보다 전국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하시는 분들이 더 많아요.

그 외에도 오래 전부터 꾸준히 찾아와 주시는 단골손님들도 계십니다. 보물찾기하듯 책을 찾아 구매하기도 하시고, 또 책을 팔러 가져오시기도 하고요. 그리고 요새는 아파트나 건물 로비 휴게실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구비된 곳도 많아서 헌책을 대량으로 구매해 가기도 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전에는 고서(古書)가 많이 나왔는데 요새는 고서라는 것 자체가 거의 잘 안 나와요. 인쇄 기술이 많이 바뀌면서 예전처럼 활자를 찍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레이저 프린팅 방식이라 시간이 지나면 글씨가 날아가 버리거든요. 그래서 요새 나온 책은 50년, 100년도 못가요. 그래서 고서들이 더 귀하게 여겨지죠. 집에 있는 고서나 헌책들이 헌책방으로 나와야 그 가치가 발견되는데, 고물상에서 폐지로 버려지는 경우가 많아서 좀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헌책은 한 방에 따로 정리되어 있는데, 더 많은 책을 보관하기 위해 책을 가로로 꽂는다. 권오상 대표만 알아볼 수 있는 정렬기호가 적힌 종이가 책에 하나씩 꽂혀있다.

- 옛 국어사전과 옥편을 따로 모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헌책방을 운영하면서부터 옛 국어사전하고 옥편을 따로 수집했어요. 옛날에 발간된 국어사전이나 옥편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한글이 현재까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수 있어요. 이 책들은 판매하고 있지는 않고, 전시실에 따로 전시해놓고 있거든요. 예전만해도 집집마다 국어사전이나 옥편은 한 권씩 있었는데 요새는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다 해결되니까, 점점 단종되고 사라지고 있어서 보이는대로 모으고 있습니다. 전에는 헌책으로 팔기도 했었는데 팔고 나니 다시 구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또 가정통신문, 우표, 버스 회수권, 잡지 등 옛날 생활 인쇄물, 일제시대 교과서 등 역사가 기록된 인쇄물들도 다양하게 모으고 있습니다. 특히 옛 국어사전이나 옥편은 언젠간 박물관에 전시해 한글의 변천사도 살펴보고 의미있게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제 나름의 계획과 생각이 있습니다.

옛 국어사전과 옥편 등이 있는 전시실에서 권오상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잡지를 사면 부록으로 받을 수 있었던 국어사전.
잡지를 사면 부록으로 받을 수 있었던 학생국어사전. 컴퓨터, 휴대폰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국어사전은 학생들의 필수서적이었다.
흑백 단체사진, 손으로 쓴 가정통신문, 종이로 된 버스 회수권 등 권오상 대표는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인쇄물을 수집하고 있다.

- 대표님이 생각하는 헌책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헌책은 뭐랄까, 다른 것보다 보면 볼수록 재밌는 것 같아요.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금과는 다른 그 시대를 알 수 있거든요. 책에는 그 시대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그 시대가 선택한 콘텐츠, 디자인 등 많은 것이 담겨있습니다. 당시 베스트셀러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고민했던 것이 이거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것처럼요. 저도 '처음 헌책방을 시작했을 때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바뀌었구나' 하고 생각할 때도 많고요. 시대의 변화가 느껴진다는 것이 헌책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 대표님이 설립한 법인 ‘아름다운 책방㈜’에서는 어떤 문화 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나요?
헌책방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방식만 고수하기 보다 변화를 시도하고, 헌책을 매개로 한 문화 활동 프로그램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아름다운 책방㈜’은 2020년 9월 법인화를 시작으로 독서토론, 강연 등과 같은 다양한 문화 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고전&사전’ 전시회를, ‘제1회 교동 은행나무 거리 책방 축제’를 통해 강릉에 소재한 책방들과 함께 문화 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했고요. 테마를 가진 책 전시회, 전문가 초청 강연회, 강릉 출신 작가·시인과 강릉을 주제로 한 책의 저자를 만나 영상 인터뷰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튜브에 게재해 강릉의 책 문화를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최소인원 등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전시와 강연을 진행하고 있고, 영상 콘텐츠를 유튜브, 다음, 네이버 등 SNS에 게재해 ‘아름다운 책방㈜’의 지역문화 활동을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현수막이 교동 헌책방의 간판이다. 자칫 잘못하면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다.
교동 헌책방 건물에 달린 현수막. 간판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 앞으로 교동 헌책방을 어떤 곳으로 발전시키고 싶나요?
그저 헌책을 사고파는 곳이 아닌, 책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곳으로 발전시키고 싶어요. 그래서 ‘아름다운 책방㈜’ 법인 설립도 했고, 이를 통해 앞으로 지역과 함께하는 책 문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해서 헌책도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사진=시사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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