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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의 싱글라이프- ㊴] 그해 여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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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의 싱글라이프- ㊴] 그해 여름의 기억
  • Journey
  • 승인 2021.07.2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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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칼럼니스트 Journey)

 

회사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번 아웃을 경험했던 그해 여름...나는 피폐해진 정신의 치유를 위한 모든 것을 동원하기로 했다. 먼저 회사를 그만두었고 한 달 동안 궁중요리를 배우면서 잡생각을 처리했다. 백수의 과로사라고 하던가? 미친 듯이 약속을 잡았고 한 파티에서 한국에 잠시 휴가 온 교포를 만났다. 그와 두 달의 연애 후 나는 7월 한 달 동안 뉴욕에서 지내기로 결정했고 그는 곧 나를 보기 위해 뉴욕으로 오기로 했다.

인생의 첫 번째 미국 방문, 그것도 뉴욕이라니!

나는 콜럼비아 대학가의 한 아파트를 렌트하고 새벽부터 최소 밤 9시까지 뉴욕을 걸어다녔다.
센트럴파크를 지나면서 베이글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 맨해튼 한복판을 거닐면서 미술관, 상점, 서점, 레스토랑, 푸드트럭, 카페 등 발이 향하는대로 나의 하루를 온전히 혼자 누렸다.

뉴저지에 사는 친구는 나를 위해 3~4일에 하루는 식사 약속을 잡아 맨해튼의 참 모습을 경험하게 해주었고, 마침 한국에서 출장온 외국계 은행 임원인 친구도 합세해서 소호의 밤을 하얗게 불태웠다. 오이스터바에 가거나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기도 하고, 한껏 드레스업한 후에 맨해튼의 유명한 클럽에도 갔다.

7월의 뉴욕은 무더위에 숨을 쉬기도 벅찼다. 10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에는 에어컨이 없었고 작은 서큘레이터 하나에 의지해서 나의 시간을 버텨냈다. 밤이면 열대야에 잠을 이루지 못했기에 대학교 앞의 bar에 가서 마가리타를 서너잔 마시고 발그레해진 얼굴로 아파트에 기어들어와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이렇게 온전히 소비적인 시간을 가진 것은 내 인생 처음이었다. 지금은 쉰다는 마음만 먹어도 생계 걱정에 벌써 마음이 불안해지는데 그 때는 가장 예쁜 시절, 청춘을 즐길 열정과 체력이 지금보다 더욱 강했던 것일까? 아니면 때론 삶에서 실패를 경험하거나 잠시 멈추더라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패기였을까?

그해 여름, 뉴욕의 7월은 나에게 치유의 시간이자 젊음을 소비하는 시간이었다.

당시 나는 홍콩에 보트 트립을 떠났다. 상해에서 사업을 하며 살고 있는 친구가 전 세계에 살고 있는 30명의 친구를 보트 트립에 초대했는데 홍콩을 처음으로 접한 경험이 바로 이때였다.
7월의 홍콩은 소문대로 아주 습하고 끈적거리며 불쾌지수를 이루 말 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우린 곧장 수영복 하나만을 몸에 걸치고 보트에 몸을 실었다.

보트 트립은 홍콩의 여름을 나기 위해 홍콩사람들이 매주 주말 즐기는 흔한 레저 활동인데 술과 음식을 잔뜩 실은 보트를 띄우고 하루종일 바다를 누비며 바람을 즐기고 때로는 배를 세우고 다이빙을 즐기는 것이다.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 싱가폴, 한국에서 모인 사람들은 모두 20~30대의 젊은 남녀였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와인 한잔에 친해지고 함께 수영을 했다. 음악을 틀고 흔들리는 배에서 춤을 추면서 몸을 부비고 뜨거운 태양을 오히려 마음껏 즐겼던 우리, 젊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라고 절실히 느꼈던 순간이다. 

저녁에 보트에서 내려온 우리들은 각자의 숙소에서 예쁜 옷을 골라 입고 보트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란콰이펑에서 재회했다.

수영복차림의 첫 대면에서 드레스업한 두 번째 만남은 짜릿했고 그것을 계기로 잠시 연애도 했었던 홍콩의 기억. 수많은 인파로 미어터지는 란콰이펑 골목의 한 타코집에 들어간 우리 4명의 일행은 옹기종기 서서 타코를 먹고 마가리타를 마셨다. 가끔 이태원에 가면 란콰이펑의 밤거리가 생각나 잠시 뭉클해진다.

그해 여름, 홍콩의 7월은 내게 흥분과 여유의 시간이었다.

그해 여름 7월, 나는 다시 블라디보스톡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첫 러시아 행인 것도 설렜지만 무엇보다 공짜 여행이었기에 더욱 즐거운 마음이었을까?
공짜여행인 이유는 회사에서 포상휴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들과의 여행과는 달리 직장 동료, 선후배들과의 여행이었지만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이 되리라.

우리는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자마자 대게를 먹으러 갔다. 우리나라 바닷가나 수산시장에 가도 내가 사먹었던 대게들은 대부분 러시아산이었는데, 오리지널을 직접 먹을 수 있다니.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에 들어온 러시아산 대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 이였는데, 비린내가 전혀 없었고, 대게들의 상태가 너무나 신선해서 게 껍데기가 아주 투명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아직까지 최고의 대게는 없었다.

블라디보스톡은 매우 좁고 작았다. 여행 관광 코스로 갈만한 곳들은 너무 뻔했고, 우리들은 러시아 전통음식이나 상점들을 한바퀴 돌고나서는 할 일이 없어 기념품 가게와 백화점을 구경했다. 다른 일행 중 몇 명은 러시아산 모피를 사느라 정신없었고, 나는 거리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젊은이들의 버스킹 공연을 즐겼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느낀 것은 두 가지! 첫 번째로 한류의 인기가 대단하다. 실제로 한국의 여행객 남자 2명이 걷고 있으면 어린 소녀들이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할 정도이다. 한국에서는 절대 그럴 일 없게 생긴(미안하지만...) 그들은 쑥스럽지만 기분 좋은 듯 그들과 사진을 찍어주었다. 

두 번째로 한국 식당의 특색이 있는데 한식은 정말 안타까운 수준이었고, 북한식 식당은 정말 새롭고 인상 깊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한식당을 제대로 하면 정말 잘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블라디보스톡은 한국에서 불과 2시간 남짓한 거리이기도 하고, 물가도 비싸지 않아서 한국 여행객들이 굉장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여행사에서 짜 놓은 코스대로 식당을 방문하는데 여기에 정말 맛있고 가성비 좋은 식당을 하면 고정수입이 아주 짭짤하겠다는 상업적인 생각이 여행 내내 내 머리를 사로잡았던 기억이 있다.

그해 여름, 블라디보스톡의 7월은 내게 리프레쉬와 보상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때론 삶에 지치거나 무너질 때 여행을 하면서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수많은 여행 경험 상 여행은 사실상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여행을 하면서 지친 뇌를 잠시 쉬어가게 하는 ‘타임아웃’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행이라는 다른 환경 속에서  잠시 굳어진 머리를 말랑거리게 만들고 스스로에게 ‘충분히 쉬었으니 어서 다음을 준비해!’ 라는 말할 수 있는 명분이 될 뿐이다.
 
이제는 여행을 꿈꾸기 힘든 코로나 시대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타임아웃 시간을 기다린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내 머릿속 타임아웃은 언제든 가능하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보다 성숙한 타임아웃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그해 여름들, 아마도 나는 그때마다 조금씩 성숙해졌던 모양이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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