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9:47 (금)
[황혼육아] “엄마, 나 마음 편히 일할 수 있게 아이 좀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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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육아] “엄마, 나 마음 편히 일할 수 있게 아이 좀 부탁해요”
  • 김지영 기자
  • 승인 2021.08.26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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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수업에 손주 운동까지…코로나 시대의 황혼육아

(시사캐스트, SISACAST= 김지영 기자)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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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으로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들이 늘어났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개학 연기, 휴원 등으로 맞벌이 부부는 돌봄 공백을 메꾸기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황혼육아는 손주를 돌보는 것과 함께 ‘원격 수업’이라는 새로운 상황도 맞닥뜨리게 됐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경우 디지털 기기를 스스로 다룰 수 없어 보호자의 지도가 필요한데, 조부모들 역시 참여 방법을 모르는 상황이 다반사다. 그들은 “요즘은 아이들은 먹이고 씻기기만 하는 육아가 아니라 이것저것 배워서 아이가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니 무척 어렵고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7세 손자 돌보는 할머니, 코로나19 황혼육아 “언제까지 해야 하나”

“손자랑 함께 지내는 일상, 체력적으로 너무 힘듭니다. 하지만 제가 도와줘야 딸자식이 편히 일할 수 있으니 온몸이 부서져라 육아할 수밖에 없네요."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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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황혼 육아’를 하고 있는 김 모 씨(70세)는 손자 돌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손자 이 모 군(7세)을 돌본다. 벌써 6년째 유치원 등‧하원부터 학원을 데려다 주는 일, 저녁을 먹이고 씻긴 후 숙제까지 도와준 후 잠자리 책까지 읽어준다. 그동안은 그나마 손주가 유치원에 있는 반나절의 시간만큼은 온전한 휴식시간으로 친구들을 만나 점심도 먹고 짧게 쇼핑도 즐길 수가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확산 이후 일상이 변했다. 유치원 긴급 돌봄 대신 가정 보육을 하며 온종일 손자와 함께한다.  “이번에 유치원 휴원이 결정돼서 가정 보육을 하고 있어요. 지난해도 긴급 돌봄을 보낸 적이 없죠. 딸아이가 불안해하기도 했고 저 역시 거리두기에 동참하려고 제가 그냥 돌봤어요.” 그는 “기운이 너무 없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내가 이 육아를 언제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아이 돌보며 스케줄 맞춰 주느라 정신없어”

지난 12일부터 수도권 지역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올라가면서, 어린이집은 전면 휴원에 들어갔고, 유치원 및 초‧중‧고등학교들은 등교 수업을 중단했다. 그는 “아이가 유치원 갈 때는 깨워야만 간신히 일어났는데, 요즘은 집에 있어서 그러는지 7시도 안 돼 일어나 온 집안을 헤집고 다녀요. 그러면 저 역시 그 시간에 일어나 TV를 조금 보여주고, 샌드위치나 누룽지 등 원하는 것으로 아침을 먹이죠. 그리고 원격수업을 해야 하니 씻기고 옷도 단정하게 입혀줍니다. 수업 이후에는 점심 먹고 집 근처에 있는 학원도 데려다줘야 해요. 학원이 끝나면 데리고 와서 간식을 먹입니다. 손자가 간식 먹을 동안 저는 저녁에 먹일 반찬을 또 만듭니다”라고 설명했다.

코로나로 바뀐 ‘황혼육아’… “온라인 수업 익숙지 않아 힘들어”

김 씨는 처음 원격수업을 접했을 때, 도와주는 게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기계를 다루지도 못했고, 어떻게 켜는 것인지, 무엇을 눌러야 되는지 조차 몰랐다. 딸에게 원격수업 방법을 미리 배우긴 했지만 첫 수업에는 뭘 잘못 눌렀는지 화면이 나오지 않아 수업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딸아이가 알려준 대로 적어놓고 따라 했는데도 연결이 안 되는 거예요. 딸아이가 유치원에 전화 걸어 할머니가 기계 다루는 법이 미흡하니 이해해달라고 말하고..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는 “지금도 사실 어려워요. 그런데 이젠 손자가 더 잘 알아요. 자기 스스로 준비를 하더라고요. 다행히 기계로부터는 해방 됐어요”라고 전했다.

아무리 딸이라고 해도 세대 간 격차로 인해 오해도 생긴다

@미래에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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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어린 손자를 돌보는 데 힘든 점은 없을까. 김 씨는 체력적으로 힘든 게 가장 크다고 꼽았다. 매번 식사 때마다 반찬도 새로 만들어야 하고, 쉴 틈 없이 계속 놀아줘야 하고 틈틈이 숙제도 봐줘야 한다. 내 자식이 아니기에 더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차라리 내 자식이면 혼도 내고 반찬도 아침에 먹인 것 저녁에도 먹이겠는데 손주다보니 그렇게 못하겠어요. 딸아이가 서운해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매일 다른 반찬을 준비합니다” 

그는 “사내아이라 에너지가 넘쳐서 하루에 한번은 꼭 밖으로 데려나간다”며 “사람 없는 저녁 시간에 나가서 같이 줄넘기도 하고 매미도 잡고 자전거 타는 것도 봐주고 오롯이 손자가 원하는 것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제 친구들 중에서도 황혼 육아를 하는 친구들이 몇몇 있는데 힘든 건 둘째 치고 불화가 생겨 서로 스트레스를 엄청받는다”며 “아무리 딸이고 아들이라고 해도 세대 간 격차가 있어서 그런지 이해해주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 중 한명은 며느리가 자신을 도우미쯤으로 생각하는 듯이 말하고 지시해 대판 소리치고 나왔다”며 “서로 잘해보려고 하지만 이해가 부족하면 원수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시어머니가 아예 합가해서 봐준다는 조건을 걸고 이사한 후 생활비 외에도 용돈을 무리하게 요구해 며느리가 힘들어 하는 것도 봤다”면서 “나이가 들어 육아를 하려니 육체적으로 힘이 드니깐 자식들 외에 손주들에게 화내고 짜증내는 할머니들도 있다”고 전했다.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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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 돌봄, 너무 힘들지만 행복감이 더 커 계속하는 것”

이처럼 자신의 삶을 즐겨야 하는 때에 황혼 육아에 시달리는 조부모들이 늘어나면서 ‘손주병’ 등 다양한 신조어도 생겨났다. 조부모의 역할이 기존 부모의 역할과 같이 중요해지는 것을 뜻하는 할빠(할아버지+아빠), 할마(할머니+엄마)라는 단어도 이젠 익숙하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외국 속담이 있다.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 지역사회 모두가 노력해야 비로소 한 아이가 온전하게 자랄 수 있다는 뜻처럼 아이 키우는 문제는 국가와 시대를 불문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행복감도 있다고 한다.

김씨는 “손자를 유치원 보내면서 동네에 친구들도 여럿 생겼어요. 손주를 돌보면서 힘든 점도 공유하고, 침 어디로 맞으러 다니는 지 요즘 반찬은 뭘 해 먹이는지 등 서로 묻고 이야기 합니다. 사실 자식들 다 커서 결혼도 하고, 대화할 상대도 많이 없는데, 손주랑 같이 있으니 즐거울 때도 많아요. 할머니라고 챙겨주고 잘 따르고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니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 누워있다가도 할머니를 찾으면 또 일어나 육아를 하는 거겠지요. 그저 손주가 건강하게 반듯한 아이로 자라주면 그걸로 만족합니다”라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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