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2:35 (수)
美 쇠고기 수입 파장
상태바
美 쇠고기 수입 파장
  • 박정아 자유기고가
  • 승인 2008.05.17 16: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합의문 내용 뜯어보니… 졸속 협상
‘수입 중단’ 약속… 통상마찰 우려

지난달 29일 방송된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연출 김보슬·이중각)편을 통해 불거진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따른 논란이 전국민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PD수첩>은 방송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여부와 광우병 위험성을 다룬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통해 한국인의 유전자가 특히 광우병에 취약하고, 일본 등에 비해 수입 소 검역도 허술하다고 지적해 네티즌들이 이명박 대통령 규탄 서명 운동까지 벌이고 미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가 잇따르고 있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놓고 여론이 갈수록 악화하는 가운데 정부 여당이 광우병 공포가 근거 없다고 적극 해명하고, 야권은 국민 건강권을 포기한 정권이라고 비난, 광우병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연구기관이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광우병 우려에 대한 인식과 판단이 엇갈리고 언론들도 서로 다른 보도를 하고 있는데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탄핵서명에 60만 명이나 참여하는 등 국론 분열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일 오전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 정례회동을 갖고 “광우병 문제는 국민 실생활과 직결된 만큼 정부뿐 아니라 당도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실상을 정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면서 “이 문제를 정치논리로 접근, 사회불안을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16개 시ㆍ도지사 회의에서도 “쇠고기를 처음 개방하는 것도 아니고 중지된 것을 재개하는 것인데 역사에 없던 걸 처음 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면서 “여러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야권의 공세를 비판했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쇠고기 수입은 국제수역사무국(OIE)의 조건이 충족되면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겠다는 전 정권의 약속에 따른 것”이라며 “일각의 광우병 여론몰이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도 세종로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산 쇠고기는 미국 국민은 물론 미국을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먹고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한국인이 인간 광우병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없다”며 “안전성이 확보된 미국산 쇠고기를 통해 인간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또 “미국의 지위가 ‘광우병 위험지역’으로 다시 바뀌거나, OIE의 기준이 변경되지 않는 한 재협상은 없다”면서 “한미가 영ㆍ한문으로 문서를 교환해 세부사항을 확인 중이며 7일 국회 청문회에 협상 합의문을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통합민주당 최재성 원내대변인은 “국민 건강권과 검역주권 포기에 대한 국민적 비판을 정부는 정치권의 선동 때문이라는 식으로 호도하고 있다”면서 “대책 마련보다 무조건 ‘안전하다’고 강변하는 정 장관에 대해 해임건의안 제출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자유선진당과 진보신당도 “생명안보에 위협을 느끼는 국민들의 분노를 정치권의 탓으로 치부하는 이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한심하다”고 비난했다.

◇합의문 내용 뜯어보니

정부가 한미 쇠고기협상 결과에 대한 의혹과 불안감이 들끓자 합의문을 전격공개하고 일부 보완책도 발표했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 5일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에 대한 합의문 원문을 당초 일정보다 이틀 앞당겨 공개했다. 합의문은 미국내 광우병 발병시 수입중단 여부와 쇠고기 수출작업장(도축장)의 규정 위반에 따른 조치 등과 관련, 지난달 18일 협상 타결 직후 알려진 내용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우선 일반요건 제5조는 ‘(광우병) 추가 발생 사례로 인해 국제수역사무국(OIE)의 미국 광우병(BSE) 지위 분류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경우 한국정부는 쇠고기와 쇠고기 제품의 수입을 중단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미국내에서 광우병이 발병해도 우리 스스로 즉각적인 수입중단 조치를 내릴 수 없고, 오직 OIE의 판정에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광우병위험물질(SRM)이 발견됐을 경우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도 종전 기준에서 크게 후퇴했다.

합의문 제23조는 수입 쇠고기에서 SRM이 발견될 경우 미국 식품안전검사청은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실시하지만 해당 작업장에서 새산된 제품에 대한 수입검역검사는 지속돼야 한다고 규정했다. 다시 말해 SRM이 발견돼도 미국의 조사와 처분에 믿고 맡길 뿐 우리 임의대로 수입을 중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SRM을 포함한 수입위생조건 부적합 사실이 하나라도 발견되면 해당 작업장에 대한 즉각적 수입 중단과 승인 취소까지 가능하도록 한 종전 기준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밖에 제10조는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의 요건에 대해 ‘도축 전 최소한 100일 이상 미국 내에서 사육된 소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정의해 광우병 빈발국인 캐나다산 쇠고기의 우회 수입 가능성을 열어뒀다.
 
결국 이번에 공개된 합의문은 광우병 발병 등에 따른 조치도 미국에 일임하는 등 검역주권을 포기했다는 당초 우려를 확인한 것에 불과한 셈이다.

이를 의식한 듯 정부는 미국내 쇠고기 도축장에 특별점검반을 파견하고 검역관을 아예 상주시키는 방안 등을 검토할 계획이지만 사후 보완책에 불과한데다 실현 가능성도 의문이다.

농식품부 수의과학검역원은 “수입위생조건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현지 검역을 강화할 방침”이라면서도 “미국이 이를 수용할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볼 때, 정부가 한미정상회담이란 사실상의 마감시한에 쫓긴 채 쇠고기협상을 졸속 진행한 결과 미국에 일방적으로 내주는 ‘굴욕적’ 결말을 자초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광우병 발생시 쇠고기 수입 중단’ 약속…통상마찰 우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급기야 정부가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를 넘어서는 강력한 조치를 약속해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쇠고기 개방으로 국민 건강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있으면 수입을 중지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은 국회에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에 따르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한국 정부가 곧바로 미국 쇠고기 수입을 막을 수 없도록 돼 있어 정부의 방침이 한미 통상마찰을 야기하고 국가 대외신인도 하락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합의문 4조에 따르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병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정부가 곧장 쇠고기 수입을 막을 수 없다. 추가 발생으로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 광우병 지위(현재 광우병위험통제국)를 낮출 경우에만 우리 정부는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일반 국민 역시 가장 의아하게 생각하는 대목으로, ‘굴욕 협상’ 주장의 주요 근거가 돼왔다.

또 합의문 5조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는 경우 미국 정부는 즉각 철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조사 결과를 한국 정부에 알리고 협의한다고 명시돼 있다. 역학 조사의 주체는 미국 정부고 우리 정부는 통보만 받도록 돼 있다.

재협상의 경우도 미국측이 받아들일 가능성도 낮고 우리 정부도 이미 서명이 끝난 이번 위생조건을 전면 무효화하고 다시 협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문제와 관련, “합의된 한미 쇠고기 협상 내용을 재협상하거나 합의문을 개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행정부의 이 같은 분위기를 감안하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미 의회에 제출됐을 때 논란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이외의 국가도 협상 결과에 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한국과의 협상에 선뜻 나설 리 없고 한국의 대외신인도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통상 전문가는 “쇠고기 문제로 수세에 몰린 정부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협상 결과에 없는 주장을 하는 것은 쇠고기 뿐만 아니라 다른 통상 문제와 대외신인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