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9:47 (금)
[이슈TALK] "나는 로맨스 스캠 피해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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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TALK] "나는 로맨스 스캠 피해자입니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2.03.22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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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이현주 기자)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온라인에서 만난 여성들의 마음을 훔치고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사취한 사기꾼의 행각이 실제 피해자들의 입을 통해 생생히 전해진다. 피해자들은 사기당한 돈을 갚기 위해 고된 삶을 버텨내고 있지만, 가해자는 5개월의 감옥생활로 모든 죄를 씻어내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게 현실이라니!' 시청자들은 분노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싹튼다.

로맨스 스캠은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거론된다. 피해를 당한 이들이 굉장히 많지만, 그들은 떳떳하게 피해사실을 알리지 못한다. 비난의 화살이 피해자를 향해 있기 때문. 피해자들은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피해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하고 있다.

 

로맨스 스캠 피해자의 솔직한 고백 

사랑을 쫓던 30대 남성은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걸렸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요."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김형일(가명)씨의 삶은 꽤나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집과 회사,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함이 찾아왔고, 혈기왕성한 30대 김 씨는 종종 외로움을 느꼈다. 지나가는 커플을 보면 괜스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드라마, 영화 속 주인공처럼 행복한 연애를 꿈꿨던 김 씨는 운명의 상대를 찾아나섰다.

'요즘 소개팅 어플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던데...' 

낯선 경로였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그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라도 만들 생각으로 소개팅 어플을 시작했다. 나이, 닉네임, 키, 국적, 사진, 성격, 이상형, 직업 등 크게 난해하지 않은 문항들을 작성하고 나니 매칭된 상대의 프로필이 보였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선택해 좋아요를 누르자, 상대방과 매칭이 이뤄졌다. 처음에는 어플을 통해 대화를 나눴지만 상대방의 제안으로 카카오톡 아이디를 공유했다. 

김 씨는 그녀와 조금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완벽한 이상형인 그녀와의 첫 만남을 그리며 설렘 가득한 대화를 이어갔다.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시작하면서 그녀는 김 씨에게 자신의 개인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한국인이 아니고, 학비를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조건만남을 하는 상황이었다.  

김 씨의 판단력은 이미 흐려진 상태. 그녀가 처한 상황이 그저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는 직접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만나자고 제안했다. 그녀 역시 만남에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제가 만나자고 하니, 그 사람이 사이트 주소를 알려주더라고요. 회원가입을 하고 예약을 하면 만날 수 있다면서요."

김 씨의 실제 카카오톡 대화 내용.

링크를 통해 접속하니 모델 만남정보회사라 소개된 사이트였다.

김 씨에게 보내온 링크를 통해 접속한 사이트.
링크를 통해 접속한 사이트.

-"그 때 멈췄어야 했어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정상적인 사고 자체를 막아버린 것 같아요."

김 씨의 실제 카카오톡 대화 내용.

사이트의 실체에 의심이 들었지만 김 씨는 그녀의 달콤한 말에 넘어갔다. 그녀는 조건만남의 상대로 그를 만나려는 것이 아니고, 만나서 차 한 잔 하며 쉬고 싶은 거라고, 이어 돈을 내는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를 안심시켰다. 

결국 김 씨는 그녀의 말대로 회원가입을 하고 예약을 진행했다. 하지만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그녀의 말은 사실과 달랐다. 예약 과정에서 김 씨는 예약비 15만 원을 지불했다. 여기에 옵션을 선택하니 45만 원이 추가됐다.  

-"나중에 돌려줄 것처럼 이야기했어요. 근데 예약 과정에서 계속 돈을 요구하더라고요. 예약을 마치자 또 확정 비용을 내야 된다고 했고요. 98만 원보다 많이 내야 확정이 된다길래, 저는 98만 원을 입금했어요. 근데 여기서 오류가 뜨더라고요. 물어보니 98만 원을 넘지 않아 오류가 발생한 거라고, 다시 보내야 한다고 했어요.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98만1천 원을 다시 보냈어요."

오류는 풀리지 않았다. 이미 돈은 통장에서 사라졌는데 사이트에서는 계속 오류가 났다고 하니, 김 씨는 조금씩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이트 관계자는 김 씨에게 보이스톡으로 연락을 취해 오류를 풀고 전액 환불받기 위해서는 198만 원을 송금해야 한다며 추가적인 돈을 요구했다. 김 씨는 이미 보낸 금액이 적지 않기에 모든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관계자 말을 믿고 싶었다. 

그렿게 198만 원을 추가적으로 송금한 김 씨. 결국 그는 눈 깜짝할 새에 450만 원이 넘는 돈을 잃었다.

-"돈을 잃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아 사기당했구나' 제 자신이 너무 바보같았어요."

김 씨는 문제 해결에 나섰다.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하고, 변호사를 선임했다. 지난 11월 4일 접수한 사건은 현재 수사가 진행중이다. 수사진행상황 형사사법포털 어플을 통해 수사 진행 상황을 매일같이 확인하고 있지만, 여전히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또 가해자를 잡아도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 지 확신할 수 없다. 김 씨측 변호사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최소 6개월, 최대 3년 정도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몇 개월간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도 남의 이야기일 뿐, 김 씨는 지옥같은 덫에 걸려 허덕이고 있었다. 마음의 상처를 돌볼 틈도 없이 현실적인 문제가 김 씨의 숨통을 조였다.  

-"사기로 잃은 돈에, 변호사 수임비까지 감당하기 너무 힘든 상황이에요. 비상금 대출도 받았고, 남아있는 학자금 대출도 있어서 재정적으로 굉장히 힘들어요. 일을 하고 있지만, 버는대로 갚아나가야 하니 돈을 모을 나이에 통장 잔고를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김 씨는 피해자지만 가족은 물론 주변 지인들에게 속 시원히 말할 수 없는, 그저 답답한 피해자다. 조건만남과 같은 합법적이지 않은 경로를 통했기 때문에 더욱이 그는 말을 아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해도 사람들은 김 씨를 단순히 안쓰러운 피해자로만 보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 씨가 언론을 통해 피해 사실을 공개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피해 사실을 알림으로써 저와 같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더는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물론 '누가 당해' 라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미끼로 삼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의 먹잇감이 된 피해자들도 결코 적지 않아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법률 서비스 플랫폼인 '로톡'을 알게 됐는데, 로톡에 유사한 피해 사례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로맨스 스캠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숨기며 속앓이를 한다. 안타까운 눈빛 뒤로 보여지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그들의 입을 막고 있다. 

최근 사람들과의 만남이 줄어든 탓일까, 외로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데이트 어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SNS를 통해 사람들과 인연을 쌓는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어플 특성상 정확한 신원 확인이 어렵기에. 관계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이성이 감성에 잠식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보통 유형이 비슷하더라고요.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동정심을 유발해요. 뭔가 도와주고 싶게끔 만드는 것 같아요. 또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눌 때 '1'이 순식간에 사라져요. 시간대와 상관없이 톡을 바로바로 확인하더라고요. 이럴 때 의심을 해봐야 되는 것 같아요. 또 사이트 링크를 보낸다면 차단하고 연락을 중단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때때로 이성의 끈을 절단한다. 주의를 해야 하지만,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자가 됐다 해서 죄인이 된 것 마냥 음지로 피할 이유는 없다. 사람의 취약한 심리를 파고드는 악한 마음이 문제의 원흉이다. 그러므로 피해자들을 향한 불편한 시선은 어떤 근거도, 타당성도 갖지 못한다. 오히려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공유함으로써 N번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방어막을 형성해야 하지 않을까.

김 씨를 비롯한 로맨스 스캠 피해자들은 온라인의 익명성을 악용한 로맨스 스캠 범죄가 근절되어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시사캐스트]

[사진=넷플릭스오리지널/김형일(가명)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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