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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때리는시간] 모든 것이 하나된 세상이라면 'Speak Low', 그냥 낮게 흘러가도 괜찮아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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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때리는시간] 모든 것이 하나된 세상이라면 'Speak Low', 그냥 낮게 흘러가도 괜찮아 ②
  • 양태진 기자
  • 승인 2022.06.30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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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삶인을 위한 책 속 '명'문장과 '영화 속 '명'대사, 시를 닮은 '명'가사로 참담했던 어제의 기억이 창창한 내일의 기약(期約)으로 거듭 나시기를. 그럼 또 한 번 명때리기 가즈아~!

(시사캐스트, SISACAST= 양태진 기자)

 

① '명'문장 : 책 <나는 그냥 천천히 갈게요> 

② '명'대사 :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③ '명'가사 : 명곡 <Speak Low>

 

'자연'에 순응하며 산다는 것. 말처럼 쉽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린 매번 역행하지 못한 아쉬움의 그늘에서 - 비록 흘러간 시간을 되돌이킬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 달성하지 못한 목표나 그 이상(理想), 또는 미처 말하고 행동하지 못한 스스로의 과오에 한탄 섞인 숨을 내쉬며 산다.

삶이 만들어준 작은 창. 그렇다면 우린, 그 창 밖으로 보이는 화려하고도 높은 이상에 다가서거나 만질 수 없음에 매번 비관해야 하는 것일까? 다시 말해, 끝없는 욕망이 낳는 또 하나의 원통(冤痛)함에 사로잡혀, 매사 그 어떤 노력을 들여서라도 발버둥쳐(?) 얻어내려 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라 인식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열과 성을 다한 경우라면, 어느 정도 그 창 밖 세상을 향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 인류도 그런 지성과 추진력을 겸비해 꽤나 많은 경험을 축적해 온 터. 하지만, 또 다른 창이 생겨나는 건 시간 문제일 뿐, 끊임없는 바램이 양산해 내는 꿈과 이상은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유한한 자연 속 또 다른 창에 갇히도록 하기에 충분한 면모를 보여왔다. 그렇기에 우린, 이런 상황에 필히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라는 것이다.(상단) 이러한 연유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런 본연의 모습과 주어진 것들에 기뻐하며 웃고 노래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지금도 이 사진을 보며 웃을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하단)(사진=픽사베이)

이 물음에 있어서 만큼은 '그렇지 않다'란 말을 과감히 내뱉고 싶다. 다시 말해, '자연' 그대로를 인정함과 동시에 그것들을 거스를 수 없음에 매번 슬퍼하지 말자는 얘기다. 아름다움, 그 자체가 스스로를 비관하며 원망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자신도 그 자체로 빛나는 삶에 심취하며 매 순간 기쁨으로 매일같이 노래할 순 없는 것일 지.

그런 이치를 몸소 체득하는 것 조차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라 한다면, 항상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매사 불안해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세상이 살아있는 한, 그 중 나 자신도 이 모든 존재와 하나되어 살아갈 수 있음에 기뻐하며 노래할 수만 있다면, 함께 반주 넣어줄 '자연'도 결국, 좋은 것들 중 가장 좋다고 소문난 '희망' 하나를 쉼없이 샘솟도록 해주지 않을까.

 

 

②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의 자연 찬미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  '명대사'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1992년도에 개봉한 이 영화는 1976년 출간된 소설을 원작으로, 당시 시카고 대학 교수였던 원작자 '노먼 맥클린 (Norman Maclean)'의 실화를 담아내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하나된 가족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영화 속 스틸 컷과 메인 포스터(하단 우측) 모음.(사진=IMDB)

여기 그런 '희망'과 당찬 하나됨으로 잔잔한 인생을 묘사해 낸 영화가 있다. 바로 플라잉 낚시라는 자유로운 몸짓과 조화된 또 하나의 아름다운 시대적 서사시, <흐르는 강물처럼>이 그것. 세상의 변화에도 꾸준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서로 다르다고 믿어 왔던 이들이 진정 하나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 이야기는 사실상, 영화가 흘러가는 내내 그러한 믿음을 쉬이 내보여주지는 않는다.

영화의 시작은 미국 몬타나 주의 한 목가적인 가족을 비춘다.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인 매클린('탐 스케릿')은 그의 두 아들, 노먼('크레이크 쉐퍼')과 폴('브래드 피트' 분)을 부양하며 그만의 엄격한 규율 하에 그들을 교육시킨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재택 교육. 글쓰기를 중심으로 지역 내 대자연 속에서 맘껏 뛰놀 수 있도록 훈육하던 그의 방식은 또 하나의 놀라운 체험을 소개하기에 이르는데,

 

 

당시 미국 몬태나 주의 블랙풋 강가에서 촬영된 이 아름다운 영화는 제 6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을 수상, 각색상과 음악상 부문에는 후보로 올랐었다. 그 손색없는 촬영 영상과 하나되길 원한다면, '넷플릭스'나 '왓차'에 들어가 볼 것. 그런 자연 감수성 충만한 영화의 명장면 스틸컷 모음.(사진=IMDB)

그것은 바로 플라잉 낚시. 이를 통해 대자연 속에 흐르는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해줌과 더불어, 서로 다르면서 하나될 수 있다는 믿음까지 서서히 자리잡을 수 있도록, 그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매 순간 더욱 커가기만 한다.

그런 그의 두 아들인 '노먼'과 '폴' 역시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짙은 우애의 끈은 놓치 않은채, 각기 다른 길을 걸어간다. 순종적이면서도 문학과 시에 두각을 나타내던 큰 아들 '노먼'은 동부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언제나 과감하고 충동적인 시도와 카리스마를 지닌 작은 아들 '폴'은 나름의 진보적인 성향으로 아버지의 통제를 벗어나려 반항의 끄트머리에 선다. 그것 중 하나가 바로 낚시에서의 틀을 과감히 깨는 것. 아버지가 가르쳐준 메트로놈의 4박자 대신, 자신만의 박자와 리듬을 개발해 낸 것이다. 

 

 

형제의 아름다운 우애를 다루고 있는 작품인 만큼, 풋풋한 젊은 시절의 배우들 연기가 제법 일품이다. 특히, 현재의 '브래드 피트'(오른쪽) 동안 외모를 재차 검증해 볼 수 있을 듯. 참고로 영화 속 형 '노먼'(왼쪽)의 어린 역할로는 영화 <500일의 썸머>와 <인셉션>, <루퍼> 등으로 유명한 배우 '조셉 고든레빗'이 맡아 열연했다.(사진=IMDB)

이런 두 아들은 서로 다른 삶의 기로에 선다. 바로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노먼'과 오히려 고향을 떠나지 못한 채 지역 신문사에 취직하는 '폴'이 그것. 각기 다른 성향에도 오히려 그것과 반대된 삶의 흐름을 이어가는 이들의 모습이 뭔가 아이러니함을 던져주기도 하지만, 기존의 틀을 깨는데 심취했던 '폴'의 위험천만한 삶은, 단지 고향에 갇혀있다라는 물리적 틀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음을 보여주며 놀라운 결말로 치달아간다.

영화는 결국, 서로 다른 규칙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때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음을 자각케하며, 아름다운 은유적 표현을 마지막으로 한 시대의 추억을 회상하며 마무리 짓는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사랑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극 중 아버지인 '매클린'의 마지막 대사 또한 이번 명대사와 그 맥을 함께하는 기품있는 명대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영화의 원작은 출간 직후 단번에 베스트셀러에 올라 미국 문학계의 걸작으로 자리잡았었다. 이토록 뛰어난 서정성을 담고있는 원작을 선택하여 영화화 할 수 있었던 데엔 명배우이자, 명감독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있었기 때문. 이 영화의 감독 역할에 더해, 이번 회의 명대사가 깃든 나래이션을 심히 돋보이도록 한 '로버트 레드포드' 만의 거룩한 음성은 그의 진솔한 깊이감에 충분히 빠져볼 만한 값진 순간을 제공해 주고 있다. 영화의 감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명장면 모음(상단 좌측, 하단)과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맨오른쪽)의 모습이 담긴 영화의 촬영 현장 모습 스틸컷.(상단 우측)(사진=IMDB)

 

"But when I am alone in the half-light of the canyon, all existence seems to fade to a being with my soul and memories, and the sounds of the Big Blackfoot River, and a four-count rhythm and the hope that a fish will rise. Eventually, all things merge into one, and a river runs through it."

"어둑해진 계곡에 홀로 있으면, 모든 존재는 희미해져 나의 영혼과 기억에 합쳐진다. 블랙풋 강물 소리와 네 박자 리듬도 합쳐지고, 물고기가 튀어오르리라는 희망도 마찬가지다. 결국,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옛 추억에 젖은 채로 어느 계곡 어귀에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이 영화 속 마지막 대사는, 나만의 것에 빠진 나란 존재가 과연, 사랑하는 사람들과 얼마 만큼 하나 될 수 있을지, 그 바램이 곧 신념이 되고 희망이 되어 우리 삶에 얼마나 고귀한 선물로 남을 수 있을 지를 그저 낮게 흐르는 강물을 통해 차분히 들려주고 있었다.

이 모든 세상이 하나될 수 없는 지금, 작은 시작에서나마 낮게 흐르며 그 바램대로 노래할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그 높낮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진 않을지. 그런 세상을 기다리며, 이번 '명'때리는 대사 만큼은 자연에 대한 경외(敬畏)에 더해 모두를 위한 작은 배려로 각자의 마음에서 거듭날 수 있기를, 그저 흐르는 강물처럼 염원해 볼 뿐이다. [시사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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