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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백의 정치읽기 강재섭과 ‘배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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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백의 정치읽기 강재섭과 ‘배신자’
  • 정수백 기자
  • 승인 2008.06.1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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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을 끝으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지난 2006년 7월 박근혜 전 대표의 전폭적 지지로 당 대표에 당선된 강 대표는 2년간의 임기를 끝으로 오는 7월이면 야인으로 돌아간다.

강 대표는 2년여의 재임기간 중 당내 대선후보 경선을 원만히 치르고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지난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공천파동’이 불거지자 책임을 지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한 것.

하지만 그의 살신성인에도 불구하고 당 내외 안팎에선 그를 보는 시각이 곱지 않다. 그가 늘 ‘배신의 정치’와 ‘해바라기식 온실정치’를 해왔다는 것이다.

강 대표는 검사출신으로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거쳐 만 40세가 되던 지난 88년 13대 국회에 전국구로 첫 금배지를 달았다. 그의 정치입문을 도와준 사람은 경북고 서울대 선배로 당시 LP(Little President)로 불렸던 박철언 전 의원이었다.

때문에 강 대표는 박 전 의원의 사조직이었던 월계수회의 2인자였다. 박 전 의원이 92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자당 대선후보로 선출되자 탈당을 감행했다. 그러나 강 대표는 박 전 의원을 따라가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강재섭이 지는 해인 박철언을 버리고 뜨는 해인 YS를 선택했다”는 말들이 나돌았다.

지난 9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강재섭 강삼재 강창희 등 이른바 ‘3강’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제왕적 당 운영을 비판하며 당 총재경선에 나서겠다며 도전장을 냈다.

강 대표는 이들과 당 소장파의 지원을 업어 이회창으로부터 당권을 찾겠다며 맞섰다. 하지만 대구 경북의 좌장격이었던 김윤환 전 의원이 만류하자 중도에 포기해 버렸다. 때문에 그를 밀어주려했던 당 내 의원들은 비주류로 몰리며 당시 이회창 총재로부터 철저한 견제를 받았다.

2007년 당내 대선후보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강 대표의 처신을 놓고도 ‘배신자’란 말들이 나돌았다.
2005년 원내대표 경선과 2006년 당 대표 경선에서 강 대표를 적극 지원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박근혜 전 대표였다.

박 전 대표의 전폭적 지지 속에 당 대표에 올랐으나 당 내 경선이 이명박 후보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강 대표는 이명박 후보 측에 편향된 듯한 행보를 보였다.

이를 놓고 박 전 대표 측은 강 대표를 “배신자”로 몰아 붙였다.

당시 박 전 대표 측은 “강 대표를 이럴 수 있느냐.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비난했다. 물론 강 대표는 이에 대해 18대 총선이 끝난 후 “겉으론 중립이었지만 실제론 ‘친박’이었는데 이를 박 전 대표가 몰라줘 섭섭했다”고 해명하기도 했지만 이를 믿는 친박 인사들은 없다.

때문에 그가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면 설 자리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강 대표는 친박 인사들로부터는 배척의 대상이자, 친이 그룹에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기 때문이다.

강 대표의 향후 정치적 행보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차기 대권을 노리는 강 대표에게 박 전 대표는 경쟁자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박 전 대표를 확실한 배척의 대상으로 삼고 최대 계파로 부상한 친이계를 후원세력으로 만들어 자신의 지지기반을 넓혀나갈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 총선 등을 통해 만들어 놓은 ‘강재섭 계’도 십분 활용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성공여부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친박 복당이 결정되면서 당 내에 ‘반 강재섭’이 확실히 생겨나게 된다. 친이가 강 대표를 자신들의 차세대 ‘보스’로 생각할 지도 미지수다. 여기에 대표적 강재섭 계보로 평가받는 나경원 의원 등이 이미 정치거물로 성장한 것도 강 대표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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